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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음감] '체포하겠어' 아일릿, 과몰입의 손익분기점

10월 17일 아일릿의 'PRESS START♥︎' 앵콜 콘서트를 찾은 팬들의 관심은 공연 말미 처음으로 선보이는 '체포하겠어' 무대에 쏠려 있었다. 플로어 석에 앉아 있던 나도 그랬다. 이미 짧은 동영상을 통해 곡의 후렴부는 공개된 상황.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수사물 콘셉트, 정말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일까? 이윽고 경찰 제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목에 건 아일릿이 등장했다. 무대가 끝나도 호루라기 소리가 맴돌았고, 체포하겠다는 구호가 귀에 남았다. 복잡했다. 머리로는 흥행을 예상했는데, 노래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색했다.

아일릿을 바라보는 시선도 미묘하다. SNS에 올라온 사진만큼 객석이 비어 있지는 않았지만, 인스파이어 아레나 곳곳에서 빈 좌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 며칠 전 들었던 일본에서의 뜨거운 인기를 전하던 음악 관계자의 이야기가 떠올라 더 의아했다. 지난 9월 30일 '잇츠 미(It's Me)'는 일본 내 누적 스트리밍 횟수 1억 회를 돌파했다.

'체포하겠어'에 대한 반응도 예상대로 좋다. 유튜브 기준 에이투오 라이트(A2O LITE)의 '니온(NEON)'이라는 자연재해 바로 그다음으로 화제가 되는 곡이다. 준비된 숏 폼 동영상이 더 많은 호응을 부르고, 후렴부 가사를 각자의 '최애'에 접목하는 패러디가 등장한다. 엉뚱하고, 귀엽고, 따라 하기도 좋다. 심지어 완성도도 높다. 그런데 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뭘까.


아일릿의 세계는 오밀조밀하다. '슈퍼 리얼 미(Super Real Me)' 데뷔부터 그룹을 상징하는 주제는 '과몰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집중이 아니다. 들쑥날쑥한 사춘기의 감정, 우연한 만남, 혼자 마구 부풀리는 상상의 나래와 같은 미시 서사가 팀의 관심사다. 수많은 감정 가운데 가장 좋은 주제는 사랑이다. 이 세계에서 사랑은 연애가 아니라 짝사랑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와 스쳐 가는 메시지, 헛되게 품어보는 기대의 짝사랑이 아일릿의 중심에 있다.

'마그네틱(Magnetic)'에서 시작된 '슈퍼 이끌림'은 상대의 행동을 관찰하고 호감의 증거를 모으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나가는 청춘의 단편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이 순간만이 가장 소중하다. '하느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라 선언한 '체리시(Cherish)'와 8비트 칩튠 사운드를 활용해 통통 튀는 감정을 튕겨 낸 '틱 택(Tick-Tack)'으로부터 아일릿의 정체성이 선명해졌다. 혼자 다짐하고 망상하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솜사탕같이 폭신한 신스 리프를 희미하게 깐다.

요동치는 속마음은 돌출된 베이스와 우당탕 직진하는 속도의 드럼 비트로 달려 나간다. 윤아, 민주, 모카, 원희, 이로하는 귀여움이라는 개념의 의인화를 무대 위에서 실천한다.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다. 감정은 들쑥날쑥한데 그 감정을 담은 세계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작고 오묘한 세계를 만드는 손은 많다. 아일릿 기획은 음악과 안무, 의상, 콘셉트, 영상을 소녀 한 명의 감정에 맞춰 바쁘게 돌아가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현장을 연상케 한다. 빌리프랩과 모기업 하이브의 제작 역량을 총동원하여 제작한 앨범의 작사, 작곡 크레딧은 웬만한 영화 한 편에 못지않다.

실제로 미셸 공드리의 작품을 연상케 했던 '리틀 몬스터(Little Monster)'의 뮤직비디오나 '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스'의 테마를 샘플링한 '빌려온 고양이' 같은 기획은 대규모 K팝 프로덕션이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한때 아일릿은 이 콘셉트로 본격 '마법소녀'의 세계관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제 그 체계적인 기획은 많이 흐트러졌지만, 아무렇게나 내뱉는 듯한 단어나 일견 경박해 보이는 노래에도 거창한 선언에 쏟을 법한 물량을 투입하는 건 여전하다. 과잉이야말로 아일릿의 재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른 현장의 음악가들이 가세한다. '낫 큐트 애니모어(Not Cute Anymore)'의 기발한 비유는 싱어송라이터 유라와 사샤 알렉스 슬론의 작품이며, 유라는 한국의 하이퍼팝 스타 더 딥(The Deep)과 함께 '잇츠 미(It's Me)'의 작사·작곡에도 참여했다. 수은, 쿠인, 나연으로 구성된 인디펜던트 3인조 Y2K 걸그룹 토마토맛도 이번 '체포하겠어'에 이름을 올렸다.


'브레이크 이븐'은 지금까지 아일릿이 쌓아온 호감의 증거를 펼쳐 이야기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무조건 마음을 쏟던 천진한 시절은 지났다. 관계에 쏟은 마음에 계산기를 두드려볼 때가 됐다. 여러 장르를 펼쳐 보였던 전작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와는 반대로 이번 앨범에서는 소리의 변화와 감정의 진행이 긴밀하게 맞물린다. '수퍼 인 러브(Super In Love)'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관계를 되돌아보다가, 거친 스피드 개러지의 '모어(More)'에 들어서면 마음이 급해진다. 숨 가쁜 리듬 위로 응답 없는 상대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쏟아진다. 폭발 직전이다.

차근 차근 따질 필요 없이 영장을 발부하고 나면 남은 것은 현장 집행이다. 들끓던 감정은 '체포하겠어'에서 명령형의 구호와 반복되는 제목, 호통치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로 이어진다. 'IYKYK'에서 골라준 내 입맛의 아이스티, '젤리어스(jellyous)'했던 기분, 새벽에 받은 DM이 모두 증거다. 죄명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한 괘씸죄, 체포 사유는 확답만 기다리며 멋대로 두근댔던 나에 대한 민망함을 잊어버리기 위한 분풀이다.

미란다 원칙을 비틀어 놓은 말장난, 한국 영화 속 익숙한 수사극의 풍경을 담은 뮤직비디오. 발상은 재치 있다. 그런데 어쩐지 함께 화를 내던 마음이, 화가 난 멤버들이 귀엽다는 감상으로 옮겨간다. 소녀가 왜 화났는지보다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오밀조밀하게 쌓아온 감정 위로 복고풍 수사극의 익살이 성큼 올라선다.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체포하겠어'까지 떠오른다.

아일릿을 바라보는 기획자의 취향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의 불일치와 어색함이야말로 아일릿이 복귀 때마다 갑론을박을 부르는 원인이다. 아일릿의 세계에는 사건이 많다. 사랑에 빠지고, 혼자 착각하고, 짜증을 내다가 상대를 체포하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그 소동을 따라간 뒤에도 우리가 발견하는 모습은 귀여운 아일릿이다. 설렐 때도 귀엽고, 화낼 때도 귀엽고, 수사에 서툰 모습마저 귀엽다. 감정이 달라져도 감상의 자리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인물을 새롭게 이해했다는 느낌은 희미하다. 귀여움이 모든 사건의 결말을 먼저 정해놓은 듯하다.


아이돌의 역할극을 반드시 자기 고백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지금 아일릿이 하고 있는 K팝은 활동마다 다른 역할과 의상을 선보이던 티아라와 AOA, 황당한 설정과 과장된 변신을 즐기던 오렌지 캬라멜과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진지한 표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수행하며 키치를 만드는 거다. 그러나 아일릿의 음악은 그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 구체적인 생활의 단서를 모아 여러 곡에 걸쳐 관계를 쌓고, 감정의 변화를 리듬의 변화로 연결한다. 마음은 세밀하게 그려 놓고 보이는 건 매번 비슷하다. 해석의 여지도 줄어든다. 남는 건 잠복근무하는 요원들이 된 아일릿의 이미지뿐이다. 이런 덜컹거림이 아일릿을 즐길 수는 있어도, '과몰입'은 하지 못하게 한다.

'럭키 걸 신드롬'의 리프를 바일레 펑크 스타일로 비틀어 놓은 '팝(Pop)'에서 아일릿은 새로운 설렘을 맞는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너를 너무 미워하던 시간조차 빠르게 잊히고,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다음 상대가 나타난다. 앨범의 순환은 단 네 곡 11분에 끝이 난다. 과격한 유로 테크노의 '잇츠 미'를 필두로 다채로운 감정을 녹였던 '마밀라티나파타이'와 비교하면 허전함이 크다. 금방 잊힐 짧은 동영상과 캠페인 영상 가운데 소모적인 논쟁과 경찰 콘셉트의 아일릿만이 남아 있다.

기획자의 취향과 유행에 발맞춰 콘셉트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덕목도 K팝에는 중요하다. '아이돌 그 자체'라는 극찬이 그래서 등장한다. 아일릿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런 콘셉추얼한 성격 덕일 수 있다. 단지 손익분기점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남길 뿐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세공한 세계가 체포해 달라는 애교로만 기억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물어볼 게 많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 zener1218@gmail.com

<사진출처=빌리프랩>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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