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 | 부산=정태윤기자] 염규복 감독이 영화 '긴긴밤'을 만드는 과정은 제목 그대로 긴긴밤이었다.
원작 기반 3D 애니메이션이라는 흔하지 않은 시도. 제작사 역시 영화화를 성사시키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제작이 확정되고도 투자가 되지 않아 1년 반을 쉬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4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고,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염규복 감독은 "제작 과정이 정말 긴긴밤이었다. 전날 관객들에게 공개를 하고 처음으로 깊게 잤다"고 소감을 밝혔다.
'긴긴밤' 측이 9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 비프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염규복 감독, 제작사 대표 정경희가 자리했다.
'긴긴밤'은 염규복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삶과 상실, 연대와 가족, 그리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특별한 여정을 그린다. 노든은 인간들의 탐욕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그런 그의 곁에 버려진 알 하나가 있다.
노든은 혼자라는 절망과 고립의 긴긴밤을 보내면서도 알을 지킨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 펭귄 '나'. 이들이 펭귄이 살아갈 바다를 찾아 긴긴밤을 보낸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동명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염 감독은 "딸이 저에게 줬던 책이었다. 사실 다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책을 보고나니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통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그는 "'긴긴밤'은 구원 서사이지만 전형적이지 않다. 강력한 히어로가 아닌, 보통의 소시민을 은유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끌렸다"고 전했다.
이어 "원작도 아이들보다 20~30대가 더 좋아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이런 감정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했고, 꼭 하고 싶다는 꿈과 열망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염 감독은 "많이 싸웠다. 제작사는 무르고, 저는 (일을) 벌이는 '긴긴밤'이었다. 예산에서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감독으로서의 야망과 충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원작은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강하다. 영화는 원작보단 가벼운 유머 코드와 약간의 액션도 추가했다. 어른들만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극장에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머와 액션을 넣었다.
원작에 없던 캐릭터들도 있다. 아프리카 들개를 추가해 빌런을 등장시켰다. "빌런이 추격하는 이야기를 더해야 이 긴 로드무비가 살아날 것 같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등쪼기새도 새롭게 등장한다. 과장된 재잘거림으로 노든이 걸어가는 긴 여정에 작은 환기구가 된다. 여기에 치쿠, 앙가부, 윔보 등도 목소리의 톤을 누르지 않고 마음껏 연기하도록 디렉팅했다.
그는 "노든은 낮게 누르는 굵은 목소리가 나오길 원해 박기우 성우님께 부탁했다. 너무 들뜨지 않고 정중하고 매너 있게 해달라고 했다"며 "다른 조연들은 깨소금 맛 나고 수다스럽게 설정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배우 수지가 내레이션과 OST에 참여했다. CF 감독 때 함께했던 인연으로 지원사격했다. 그는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영화에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그는 "수지와는 화장품 CF 때부터 함께한 오래된 인연이다. 그 인연을 빌미로 엄청 매달렸다"며 "의외로 긴 고민없이 빠르게 콜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지가) 원작의 큰 팬이다. 그래서 디렉션 하는 과정도 오픈 마인드로 자신의 해석을 더해 편안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원작의 힘이 강한 영화이지만, 애니메이션 자체 만으로 탁월하다.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유일한 애니메이션으로 경쟁 후보에 올랐다.
염 감독은 "솔직히 기대를 안하고 제시했는데,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제 귀를 의심했다. 너무 영광스러웠다. 심적 부담도 컸다"고 털어놨다.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는 "토론토에서 한 유학생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낯선 타국에서 외로운데 이 영화를 보고 치유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관에서 나올 때 눈물 닦은 휴지를 이만큼 들고 나오더라. 팝콘인줄 알았다"며 "칭찬해주시는 어떤 말들보다 그 하얀색 휴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염 감독은 CF 감독으로 시작해 동화 작가, 그리고 '긴긴밤'으로 첫 장편 영화를 선보였다. 앞으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는 "로맨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미 (글이) 완성된 작품이 있고, 호러 영화도 있다. 시리즈도 2~3편 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고 싶다"고 바랐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경쟁 부문 최고상인 '부산 어워드 대상' 수상작에는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이 주어진다.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