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아무리 작은 기회가 찾아와도, 100% 해내려고 했습니다." (이재)
이재(EJAE)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이었다. 가수의 꿈이 무너진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12시간씩 비트를 만들며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연습생 시절 좌절과 거절을 거듭 맛봤지만, '기회가 오면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그 과정에서 찾아온 작품이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였다.
"음악이 저를 살렸어요. 가수의 꿈은 끝났지만, 작곡가나 엔지니어처럼 음악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았죠. 늦은 밤 카페에 앉아 비트를 만들면서, 다시 저를 찾아갔습니다."
'케데헌' 측이 15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내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가수 겸 작곡가 이재가 참석했다. 그는 "낯설고 신기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감격했다.
'케데헌'은 현재 넷플릭스 역대 흥행 콘텐츠 1위다. 지난 9월에는 누적 시청 수 3억 뷰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1'(2억 6,520만 회)과 '웬즈데이'(2억 5,210만 회)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이재는 극중 '헌트릭스' 리더 루미 역 보컬을 맡았다. OST '골든', '하우 잇츠 던', '프리', '유어 아이돌' 등의 작곡 및 작사에도 참여했다.
벅찬 소감을 전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작곡가였다"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재는 "그동안 중국과 일본을 다룬 애니메이션은 많았다. 어릴 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았다"며 "'케데헌'을 통해 한국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지금은 K팝뿐만 아니라, 'K'의 모든 것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랑스럽다"며 "해외에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아이 러브 K팝!'을 외친다"고 웃으며 말했다.
K팝을 모티브로 한 만큼, OST는 글로벌 흥행의 핵심이었다. 특히 헌트릭스의 '골든'은 미국 빌보드 '핫 100',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각각 8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재는 "요즘 K팝에는 멜로디컬한 곡이 많지 않다"며 "'골든'의 희망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것 같다"고 흥행 이유를 짚었다.
'골든'의 하이라이트는 폭발적인 고음이다. 이재는 "루미가 '혼문'을 닫는 장면에서 절박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비현실적인 고음으로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작진이 처음부터 한국어 가사를 꼭 넣자고 했다"며 "영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라임을 찾는 데 공을 들였다. 많은 분들이 따라 불러주셔서 뿌듯하다"고 회상했다.
"미국 싱어롱 상영회에 가면, 현지 팬들이 후렴 '영원히 깨질 수 없는' 파트를 떼창합니다. 그걸 볼 때마다 정말 자랑스럽죠."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준비했지만, 결국 데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작곡가로 전향해 레드벨벳 '싸이코', 에스파 '아마겟돈' 등을 만들었다.
12년의 연습생 기간을 음악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성장하려면 상처도 필요하다"며 "떨어져도 괜찮고,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났다. 음악이 나를 살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루미 캐릭터에도 자신을 투영했다. "저도 연습생 시절에는 단점을 가리려고 했다. 루미처럼 '진짜 나'로 서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루미를 연기하면서 공감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연습생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작은 기회라도 찾아왔을 때 100% 쏟아야 한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새로 잡으라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협업하고 싶은 K팝 아티스트로 에스파와 방탄소년단을 꼽았다. 그는 "에스파와 음악적 결이 잘 맞을 것 같다. '방탄소년단' 지민의 노래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케데헌'은 현재 미국 오스카, 그래미 등 각종 시상식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는 "만약 상을 받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한국을 사랑합니다'를 외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이재는 오는 24일 첫 솔로 싱글 '인 어나더 월드'(In Another World)를 발매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골든'과는 다른,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특징이다.
"작곡가로서도, 아티스트로서도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K팝과 미국 팝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