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호기심으로 봤는데, 사랑하게 됐어."(에밀리967166)
"진부한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했는데,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야." (누들_2010)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전, 우려가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K팝은 이미 그 자체로 인기 있는 콘텐츠. 여기에 퇴마를 보탠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편견에 불과했다. K팝, 퇴마, 액션, 그리고 성장사까지. 조화롭고 맛깔나게 버무렸다. K팝 무한 확장의 서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K팝 인기에 편승하거나 K팝 팬들만 겨냥하지도 않았다. 한국적인 것에 창의력을 불어넣어 과감한 세계관을 형성했다.
넷플릭스가 새롭게 선보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 이 세계관은 진짜다
세계관은 한때 아이돌의 필수 요소 중 하나였다. 음악을 단순히 귀로 즐기는 데 그치게 하지 않게 한 것. 서사를 더해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엑소의 초능력, 방탄소년단의 BU(BTS Universe), 에스파의 광야 등.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세계관으로 각 그룹의 차별화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관은 영화적 현실이다. '헌트릭스'는 걸그룹이자, 세상을 지키는 숨은 영웅. 퇴마는 세계관이 아닌, 실제의 일이다.
'헌트릭스'는 자신들의 노래로 악령을 쫓아낸다. 사람들의 혼을 먹고 사는 악령을 막고, 세상을 지킬 방패인 '혼문'을 만든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검을 들고 악당들과 싸운다. 여기서 루미, 미라, 조이는 검을 활용한 액션을 선보인다. 시원한 전투신으로 쾌감을 더했다.
라이벌 사자보이즈는 이름부터 정체성을 담고 있다.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잡아가는 사자(使者)를 의미한다. 멤버들 모두 악령으로 구성됐다.
'유어 아이돌'(your idol) 무대에서 저승사자 복장에 갓을 쓰고 '저승섹시'를 선보였다. 저승 세계관에서 그치지 않았다. 관객들을 홀리며 혼을 가져갔다.
매기 강 감독은 "어렸을 적부터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싶었다"며 "가장 먼저 초자연적인 세상을 다루는 악마학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멋진 여성 전사 그룹이 비밀리에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K팝의 영향력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관을 완성했습니다." (매기 강)
◆ 디테일한 현실 고증
디테일한 현실 고증도 화제다. 한국 문화를 고스란히 살리며 퀄리티를 높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반가운 것들이 스친다. 한의원, 목욕탕, 라면, 김밥, 남산, 지하철 등.
한국적인 무기를 전면에 사용하기도 했다. 헌트릭스가 퇴마에 사용하는 무기는 실제 무속에서 쓰이던 검이다. 루미의 사인검에는 단청 문양으로 한국적임을 더했다.
미라는 날이 휘어진 곡도를 쥐었다. 조이는 영적인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칼을 모티브로 신칼을 완성했다. 무대 의상에는 노리개 포인트도 더했다.
루미와 '사자보이즈' 진우를 연결하는 령이 등장한다. '더피'는 호랑이를 떠올리게 했고, 까치 '수지'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에서 따왔다.
K팝 문화에 대한 공부도 잘 돼 있다. 컴백과 함께 진행하는 팬 사인회, 한국어로 적힌 슬로건, 릴스 등. 멤버들이 팬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멤버들 역시 K팝 아이돌을 참고했다. 헌트릭스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있지 등을 반영했다. 특히 루미는 제니를 레퍼런스 해 만들어진 캐릭터로 알려진다.
사자보이즈는 더 디테일하다. 먼저 차갑고 단정한 이미지의 리더 진우. 살벌한 복근을 소유한 '애비', 귀여움을 담당하는 래퍼 '베이비', 신비로운 느낌의 '미스터리', 팬을 달콤하게 조련하는 '로맨스'까지. 다양한 매력을 골고루 분포시켰다.
감독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빅뱅, 몬스타엑스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리더 진우는 차은우와 남주혁에서 따왔다.
◆ 퀄리티 높은 K팝
고퀄리티 노래도 킬링 포인트다. 사자보이즈의 데뷔곡 '소다 팝'(Soda Pop)은 청량함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특징. '유어 아이돌'은 저승사자 콘셉트로 반전 매력을 더했다.
헌트릭스의 '골든'(Golden)은 K팝 스타일의 업 템포 댄스 음악이다. '하우 이츠 던'(How It's Done)은 블랙핑크의 느낌이 담겨 있다. 실제 테디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오프닝곡 '테이크다운'(Takedown)은 트랩에 팝 비트를 결합했다. '트와이스' 지효, 정연, 채영이 가창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가사는 영어지만, 중간중간 한국어도 섞여 있다.
전체적으로 중독성 있는 훅과 파워풀한 보컬을 결합했다. K팝 그룹의 히트곡 구성을 따른 것. 안무는 리정과 잼리퍼블릭이 맡아 현실 아이돌급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크리스 애플한스 감독은 "팬데믹 시기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 그때 BTS가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전 세계 수백만 인구가 갑자기 본인의 집에서 '다이너마이트'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떠나는 여정, 그리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BTS가 수년 전 우리에게 선사했던 경험의 일부나마 여러분들이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바랐다.
◆ "단순한 서사, 그럼에도…."
서사는 단순하다. 악귀와 퇴마사, 반반의 피를 가지고 있는 루미. 그는 자신의 몸에 각인된 악귀의 문양을 부끄러워한다. 숨기고, 거짓말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핵심 설정이다. 아리엘(인어공주)은 인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바다 세계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다.
심바(라이온킹)는 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과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충돌했다. 엘사(겨울왕국)도 자신이 가진 힘을 숨겨야 할지, 사용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루미 역시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클리쉐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루미와 진우가 신뢰를 나누는 과정은 설명이 부족하고, 사자보이즈의 쓰임은 1차원적이다.
그럼에도 K팝의 트렌디한 요소를 색다르게 조합해 독창성을 만들어냈다. 글로벌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공개 4일 차(25일 기준), 41개국 1위를 찍었다.
박송아 평론가는 "결국은 노래의 힘이다. 눈과 귀로 즐기는 K팝의 매력을 담아냈다"며 "여기에 한국적인 문화 코드가 이질감 대신 신선함으로 작용했다"고 짚었다.
<사진출처=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