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은 선동열과 최동원이지만, 또한명의 '퍼펙트게임' 주인공이 있다. 1993년 '코리안시리즈의 전설'로 불리는 박충식(42)이다.
19년 전 삼성 라이온즈의 신인 투수였던 박충식은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과 맞붙었다. 15회
무승부. 181개의 공을 홀로 던지며 완투한 것이다. '전설의 경기'는 매년 기자들에게 회고된다
. 올해도 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2012년 박충식은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사무총장으로 야구계에 돌아왔다. 데뷔 첫해 '전설의 경기'를 펼쳤던 박 사무총장은 이제 프로야구선수들의 위해 더 큰 숙제를 풀어야 할 위치에 섰다. 분당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실에서 줌인스포츠와 네이트가 박 사무총장을 만나 야구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박 사무총장은 의욕이 넘치는만큼 고민도 깊어 보였다. 쉴새없이 울리는 휴대폰은 바쁜 그의 격무를 대변하고 있었다. 올 1월3일 박충식은 정식으로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선수협 사무실 이전 계획부터 설명했다.
"27일날 마포로 사무실을 옮긴다. 폐쇄적인 분위기였던 선수협 사무실을 개방화 할 계획이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기자와 팬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면 너무 좋을 것 같
다는 생각이다."
선수협 사무총장이란 직급 때문인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초점이 한곳으로 맞춰졌다. 스포츠와는 거리감 있는 단어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다.
"선수 복지와 2군 선수 처우 개선 문제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 선수협이 만들어진 의미 자
체에 충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외에도 많은 현안이 있는데 조금씩 해결해 나가려고 한
다."
스포츠 선진국들과 단순비교 할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프로야구만 해도 과거에 비해 환경이
좋아진 것만은 사실이라는 것이 박 사무총장의 솔직한 이야기다. 과거엔 도대체 어땠을까.
2군은 자극적인 요소가 필요할 수도 있어 메이저리그도 1군과의 처우가 하늘과 땅차이라고 한다. 박 사무총장은 이 대목에서 자극적인 요소는 인정하지만 인간적인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군도 야구를 위해 존재한다. 운동환경이나 용품 같은 부분까지 미흡해서는 안된다. 옛날엔
계약 때도 그냥 도장 갖고와라, 넌 얼마 받아라 그런 식일 때가 있었다. 요즘엔 이런 일이 거
의 없다."
선수협 사무총장으로서 박충식의 야구이야기는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갔다. FA 대목에 이르러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듯 싶었다. 결론은 FA규정 역시 다소 수정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선수협과 구단과의 관계가 발전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사무총장은 과거엔 무조건 갈등상황이었고 고발이 난무했지만 이제는 대화 중심이라고 말한다. 구단이 선수협을 인정해 주다 보니 서로가 야구발전을 위해 공감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수협 역시 무조건 반대보다는 선수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무게를 둔다고 한다.
'전설의 경기'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선동열과의 승부. 박 사무총장은 선수협 이야기 때와 달리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선동열 15회 무승부 기사가 매년 한두번씩은 꼭 나가는 것 같다. 너무 강하게 인식돼서 그런
가 보다. 무난하게 운동했으면 잘 모를수도 있는데 야구팬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니까. 나를
각인 시켜준 경기인만큼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박 사무총장은 '전설의 경기'와 관련 세간의 오해를 풀고 싶어했다. 19년전 한국시리즈
3차전 때문에 무리를 해서 몸이 망가졌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엔 대부분 그랬지만 고교시절부터 5-6경기 선발을 뛰기도 했다. 내일 던지고 모레 또 던
지고. 선발, 중간, 마무리 투수 개념도 없었다. 유독 삼성에 선수들이 없어서 세가지 역할을
모두 하다 보니까 점점 몸이 안좋아졌다는게 맞는 말이다."
실제로 박충식 사무총장은 '전설의 경기'를 치른 이듬해 선수생활 중 가장 많은 공을 던졌다. 이백이닝을 넘긴 것이다. 결국 크게 보면 시스템의 문제였던 셈이다. '전설의 경기'에 대해 정작 본인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감독이 코치를 통해 '던질 수 있냐'고 계속 물어봤다. 당시 해태는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내려
와도 다음 수순이 있었다. 삼성은 대안이 없었다. 10회를 넘어서도 워낙 구질이 좋았다. 1점만
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갔다. 지금 생각하면 교체 타이밍을 지나친 것 같다. 다음은 없었
다. 무조건 이 경기는 이겨야 한다는 것과 끝까지 던져야 한다는 집념밖에 없었다. 15회 무승
부가 있다는 것도 경기가 끝난 후 알았을 정도였다."
선동열 감독은 OSEN 박선양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구원으로 등판해 7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힘이 많이 들었다. 사실 더 던지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감독님께 다음 경기 대비를 말씀드렸는데 받아들여저서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충식이는 15이닝을 완투(투구수 181개)하는 바람에 다음 경기에 곧바로 출전하기가 힘들었지만 난 큰 문제가 없었다. 이후 경기서 승리를 따내 결국 우승했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무조건 우승이라고 생각했던 꿈도 좌절됐다. 박 사무총장이 선동열 감독과 당시 경기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이순철(KIA 수석코치) 전감독과는 그때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승부욕이 워낙 강했던 이순철은 당시에 방망이가 잘 안맞으니까 심리전도 폈다고 한다. 심판한테 항의도 하고 타석에 늦게 들어서고. 신인 투수니까 리듬을 뺏고 타이밍을 맞춰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박 사무총장은 광주출신으로 고교 때까지 그곳에서 야구를 했다. 1번에서 9번까지 해태의 라인업 중 모르는 선수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경기는 중계방송을 끊지 않고 역대 최초로 뉴스도 미루고 계속됐다. 때문에 광주에서는 친구와 지인들이 해태가 아니라 삼성 투수 박충식을 응원하다 위기를 겪을뻔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만만치 않을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2012 프로야구는 박찬호, 이승엽, 김병현 등 해외파 출신 합류라는 역대 최고의 흥행카드로 기대감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박 사무총장 역시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더불어 프로야구 인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털어놨다.
"프로야구 출범서부터 원로선배들이 기반을 잘 다져왔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힘든 여
건을 잘 이겨왔다. 오랜 팬들이 자기 아이들까지 데리고 야구장을 찾아주고 여성팬이 갈수록
늘고 있다. 월드시리즈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도 인기의 기폭제가 된 것이 사실이다."
야구가 인기스포츠인 만큼 구장 시설 개선에 대한 문제도 진지하게 거론됐다. 선수와 팬을 위
한 야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돔구장이 야구의 꿈이긴 하지만 워낙 예산과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한계도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
"선수들을 위해서는 구장 락커가 잘 돼 있어야 한다. 한국 락커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홈팀
락커는 있는데 원정팀 락커는 없다. 가장 큰 문제다. 원정팀 락커도 생긴 곳이 있지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프로야구팀의 전지훈련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박찬호를 비롯한 국내로 복귀한 해외파 선수들이 '전지훈련 기간이 한국은 너무 긴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전하자, 박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장단점을 정리했다.
"박찬호 처럼 외국에서 오래 뛴 선수들은 훈련량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은 2월 중순
쯤 모인다. 비교하면 한국 선수들이 쉬는 시간도 짧고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적다.
하지만 개인이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외국에 비해 구단이나 코치가 관리하고 성적을 내는
팀워크 위주의 한국식 운동문화도 일장일단이 있다."
박 사무총장은 삼성에서 투수코치 제의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8년 간의 호주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마자 삼성에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삼성
이미지가 워낙 강하니까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는 시간이 촉박했다. 안팎으로 여유가 없
었다. 타이밍이 안맞았던 것이다."
야구에 속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박 사무총장은 고백한다. 때문에 앞으로 구단에서 다시한번 제의가 온다면 결코 마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프로구단에서 지도하는 일을 맡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는 것이다. 박 사무총장은 조심스럽게 다짐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선수협 사무총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최대한 야구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야구인들이 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도를 잘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줌인스포츠 / 글=이명구, 사진=강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