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누군가는 단번에 찾아온 행운을 누린다.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게 바로 꿈이다. 

박은빈은 어떨까. 언뜻 보기에, 그는 행운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998년, 만 5세의 나이로 배우라는 꿈을 가졌다. 

송혜교(수호천사), 이유리(명성황후), 김하늘(유리화), 한지민(부활), 문소리(태왕사신기)…. 쟁쟁한 성인 배우들의 아역을 거쳤다. 

성인이 되어서도 도전을 계속했다. '비밀의 문', '청춘시대', '오늘의 탐정'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올해 나이 29세, 그렇게 25년 차 배우로 열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꿈'에 대해 말한다. 

"실은, 때론 확신이 없었어요. 제 장래 희망란은 늘 바뀌어왔거든요. 다른 직종으로 전환도 꿈꿨죠. 화가, 정신과 의사, 교수, 상담가…." (이하 박은빈)

그리고, '계속해도 될까' 고민하던 시점에서 SBS-TV '스토브리그'를 만났다. '스토브리그'의 이세영을 통해, 배우를 계속 꿈꿀 수 있게 됐다.

'디스패치'가 최근 박은빈을 만났다. 아역 출신 연기자로서의 고민에 대해 물었다. 또, 그녀의 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 "연기 경력 25년? 부끄럽죠"

박은빈의 아역 시절은,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여느 학생들처럼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평범하고 또 다양하게 꿈을 꿨다. 

"그동안 했던 연기들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아요.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그러다 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하는 자괴감도 느껴지곤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부담감도 늘어갔다. "성인 연기자로 성장하며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졌다"며 "작품 선정을 지나치게 망설였고, 어려워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때론 다른 직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시기를 거쳐, 어느 순간 정답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배우는 제게 잘 맞는 직업이었어요. 전, 꿈이 참 많았거든요. 의사, 판사, 운영팀장…. 그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게 바로 배우잖아요. 이 점이 확 와닿더라고요."

◆ "생각을 비웠더니, 스토브리그가 찾아왔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웠다. 그저 연기만으로도 즐겁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 마음으로 택한 작품이 바로 '스토브리그'다. 

"큰 고민 없이 쉽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스토브리그'는 바로 그 첫걸음이죠. 이유는 간단했어요. 극이 가진 힘, 흡입력이 압도적이었거든요. 저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만장일치였습니다."  

박은빈은 야구팀 '드림즈'의 운영팀장 이세영을 연기했다. 세영은 능력 좋고, 성격 화끈한 직장인이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따지고 고함치는 사이다 캐릭터다. 

"저는 이세영을 강인한 캐릭터라고 봤어요. 남자들이 많은 세계에서 운영팀장이 되기까진 많은 역경을 거쳤을 것 같았습니다. 거칠지만 무례하게 보이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아이러니하게도, 고민을 버리니 열정에 훨씬 불이 붙었다. "여성 야구팀 운영팀장은 실제 프로야구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선례가 없죠. 캐릭터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야 했습니다." 

◆ "그냥 여직원이 아니라, 최연소 운영팀장" 

이세영을 위한 첫 스텝. 우선, 직접 발로 뛰었다. 프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 특히 SK와이번스 운영팀장과 1:1 대화를 나눴다. 이는 이세영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야구 팬들의 감정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박은빈은 "대본을 보니 성적이 안 좋은 팀을 응원하더라. 그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며 "야구 팬들의 영상을 보며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동윤PD·이신화 작가를 만나 대화도 나눴다. 특히 박은빈이 중시한 건, 클리셰 깨기였다. 이를테면, 이해 못 할 행동으로 백승수(남궁민 분) 발목 잡기? 

"드라마에선 보통 남자들이 해결사적 면모를 보여요. 남자가 뭔가를 추진하면, 여자 캐릭터는 전개를 위해 쓰이곤 하죠. 오히려 당위성 떨어지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박은빈의 이야기는, 대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래서 이세영에겐 일명 '고구마' 같은 대사가 없다. 성별을 떠나, 백승수와 진정한 동료애를 그려낼 수 있었다. 

◆ "이세영은, 그래서 제게 터닝 포인트" 

박은빈이 만든 '이세영'은, 또 다른 '이세영'을 만들었다. 앞서 박은빈은 제작발표회 당시 "이 작품을 통해 여성 운영팀장을 꿈꾸는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한 시청자는 박은빈의 SNS로 "이세영을 꿈꿀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 다른 시청자도 "덕분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인사했다. 

박은빈이 연기한 이세영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됐다. 그는 "일일이 답변하진 못했지만, 메시지들을 보고서 정말 뿌듯했다"고 미소 지었다. 

내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사라졌다. 대신,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 강해졌다. 이세영으로 살아온 6개월은, 그렇게 성장의 양분이 됐다. 

"세영이에게서 많은 걸 배웠어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까지 얻게 됐죠. 저도 계속 꿈꾸려고요. 또 한 번 좋은 (연기) 판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진제공=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