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진도(전남)=이명구·임근호기자] A고등학교에 불이 났다. 교내방송이 나온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세요."
학생들은 자리를 지켰다. 그 사이 불은 2층과 3층을 집어 삼켰다.
소방차는 늦게 도착했다. 아니 신고도 늦었고, 출동도 늦었다.
문제는 장비다. 소방관은 소화기만 소지하고 있다. 용량도 문제다. 불을 잡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20~30분 정도 분사가 가능하다. 게다가 학생들은 교실 안에 있다. 소방호스를 들고 복도에 진입해야 한다.
방법이 없을까.
소방서는 호스를 구비한 민간업체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민과 관의 화재 진압팀이 결성됐다. 먼저 민간 소방수가 호스를 이용해 복도에 진입했다. 이후 소방관이 소화기로 뒤따랐다.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최악의 작업환경이다. 우선 바람이 너무 거셌다. 연기도 심했다. 한 발을 내딪기 힘든 상황. 바람이 잔잔해지기만 기다려야 했다.
화재 소식을 듣고, 마을모임 사람들이 달려왔다. 소방 공무원 출신도 있었다. 반대로 물총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왔다. 풍향에 상관없이 불을 끌 수 있다는 '파이어벨'도 등장했다.
소방서는 비협조적이었다. 불 잡으러 왔다가 불 붙이고 간다는 것. 그 사이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3층과 4층, 옥상까지 번졌다.
학부모의 속은 타들어간다. 진작에 불을 껐다면, 그리고….
사실, 우리에게 바다 속은 낯설다. 유속을 경험할 수도 없다. 시계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화재는 익숙하다. 산소통보다 소화기를 자주 봤다. 머구리보다 소방호스가 친숙하다. 거센 불길도 알고, 자욱한 연기도 느껴봤다.
그래서 화재에 비유했다. 지금 이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상식적일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부터 잘못된걸까. 우리가 이 고등학교 화재에서 느끼는 비상식, 바로 세월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① 출동, 그 1분의 아쉬움
상식 밖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선 불이 났는데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교내방송이 가장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이것만 탓하기엔 무기력하다. 골든 타임, 학생의 생명을 구할 황금같은 시간은 있었다.
만약, 소방차가 좀 더 일찍 출동했다면?
다시, 세월호 침몰현장이다. 최초 신고 시각은 16일 오전 8시 52분이다. 단원고 학생이 전남소방본부에 처음으로 신고했다. 해경이 출동한 시각은 9시 10분. 해군은 9시 30분에 출동했다.
출발부터 늦었다. 오히려 민간 어선이 먼저 도착했다. '디스패치'는 '대마도'에 사는 김진수, 김대열, 김문욱 씨를 만났다. 그들은 진도 바다에서 미역농사를 짓고 있다. 사고 초기 가장 먼저 도착해 10여 명을 구해냈다.
김대열 씨는 "(청년회에서)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출발했다"면서 "사고해역에 도착했을 때 해경은 없었다. 민간 어선들이 먼저 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관과 군은 언제 왔을까.
전남도청 어업 지도선이 가장 빨랐다. 다음이 해경, 그리고 해군 순이다. 그러나 모두 해난 활동에 익숙치 않은 배였다. 지도선인 전남 201호와 207호는 진도해상에서 단속 업무를 하고 있다. 목표해경 123함(110t)은 경비정, 해군의 한문식함(450t)은 유도탄 고속함이다.
물론 지도선과 경비정, 고속함 등도 최선을 다했다. 다만, 한계는 분명했다. 선체 밖 승객을 구하기에 바빴다. 신체 내부, 즉 선실에 갇힌 학생의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방법을 몰랐다. 메뉴얼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경과 해군은 구조 전문요원을 갖고 있다. 특수구조단과 해난구조대(SSU)다. 이들은 언제 투입됐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특공대 투입지시가 떨어진 이후였다. 그 시각이 오전 11시 5분.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 앉은 뒤였다.
지휘체계의 문제는 두고 두고 아쉽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막강한 일원화를 이루고 있다. 미국에는 '연안경비대'(USCG)가 해상을 책임진다. 국토안보부 산하로 해안경비 및 구조 구난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 조직이다.
영국은 해양사고만 전담해 관리하는 '해사연안경비청'(MCA)이 있다. 영해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해와 재난을 관리한다. 대형사고로 번지면 '선박구난관리대표부'(SOSREP)가 모든 상황을 지휘 통솔한다. 정부도 이들의 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
② 소화기와 스쿠버, 호스와 머구리
소방관이 소화기만 들고 화재 현장에 왔다. 작은 불은 잡을 수 있다. 좁은 곳 진입에 용이하다. 반면 큰 불은 잡을 수 없다. 강력한 살수 호스가 필요하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스쿠버 장비는 민첩성 부분에서 탁월하다. 그러나 호흡의 한계가 있다. 이 때는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받는 '머구리'가 유용하다.
진도실내체육관. 해양경찰 특수구조단 관계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30분 밖에 잠수를 못합니까? 산소통의 용량(80큐빅피트)이 그렇다고요? 2개를 붙여서 사용하면 안되나요? 해경은 왜 '머구리'(표면공급) 방식은 못하나요?" 등이다.
해경 특구단 책임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80큐빅피트는 가장 대중화된 장비입니다. 활동성이 좋습니다. 2개를 붙여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류가 강하면 쉽지 않습니다. 머구리요? 구식장비입니다. 이미 해경과 해군에서는 쓰지 않는 장비입니다."
두 번째 비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해경과 해군은 오직 스쿠버에 의존해 수중 작업을 한다. 한데 이 스쿠버에 한계가 있다. 유속이 거친 바다, 숨이 가쁠 수 밖에 없다. 수중에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30여 분.
실제로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16일 오후 4시, 특구단과 SSU, UDT 등이 투입됐지만 유속을 견디지 못했다. 오후 8시 다시 수색에 나섰지만 실패. 17일 오전 6시와 오후 2시, 재차 물 속에 들어갔지만 가이드 라인 조차 설치하지 못했다.
해경은 민관에서 답을 찾았다. 일명 '머구리', 표면공급 방식이 효과적일거라 판단한 것. 무엇보다 가이드 라인 설치가 시급한 상황, 오랜 시간 물 속에서 작업할 수 있는 잠수사가 필요했다.
해경은 해양구난업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에 등록된 구난업체는 '언딘', '오대양', '유성수중', '금호수중', '동방해운' 등. 동시다발적으로 필요한 장비 및 인력 확보에 나섰다.
'동방해운' 관계자는 '디스패치'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국내 최대규모의 구난기능 선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작업중이라 참여할 수 없었다"면서 "해경에서 장비 지원 요청을 받았지만 국내에 없어서 지원을 못했다"고 전했다.
해경은 '언딘'과 손을 잡았다. 이미 '언딘'은 선주인 청해진해운과 약식 인양계약을 맺은 상태. 여기에 해경이 구조작업을 추가로 요청했다.
③ 해경은 왜 '언딘'을 선택했나?
잠시 시계추를 1988년 2월로 돌리자.
'경신호'가 포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벙커C유를 싣고 항해하던 중 기상악화로 좌초됐다. 사고 초기 구난 작업이 이루어졌고, 임시적으로 기름 유출을 막았다.
문제는 잔존유였다. 경신호에서 꾸준히 기름이 새어 나온 것. 2010년 5월, 결국 네덜란드에 있는 구난회사 '스미트'사가 선정됐다. 그리고 1년 뒤인 2011년 6월, 잔존유 회수작업에 들어갔다.
ISU(International Salvage Union), 국제구난협회다. 전 세계 61개 업체가 등록돼 있다. 세계적인 회사도 많다. 네덜란드의 스미트사, 마못사, 일본의 니폰셀비지 등이 속해있다. 국내에서는 '언딘'이 유일한 회원사(2012년 가입)다.
여기서 잠깐, 구난업체의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하자. 교통사고와 비교했다.
사고가 나면 보험사에 연락한다. 이 때 렉카가 출동한다. 가벼운 접촉사고의 경우 먼저 달려오는 렉카가 임자다. 하지만 대형사고는 다르다. 보험사와 상의하는 게 관례다.
해양구난업체 역시 렉카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사고배를 끌어올려야 된다. 중소형 사고의 경우 먼저 도착한 업체가 구난활동을 시작한다. 반면 대형사고의 경우 IMO(국제해사기구) 규정에 따라 ISU 회원사만 입찰에 나설 수 있다.
그렇게 따졌을 때, '언딘'과의 계약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국내 유일의 ISU 회원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딘'은 2009~2012년까지 장죽수도에서 조류발전기 설치, 운영, 보수 작업을 했다. 사고해역에 정통한 편이다.
주관사인 '메리츠' 담당자는 '디스패치'와의 통화에서 "보험자가 보험사에 사고 연락을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청해진이 언딘과 17일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도 나중에 계약서를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보험사 입장에선 보험금 범위 내에서 비용을 지급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구난보다 구조가 먼저라 그렇게 진행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해경의 태생적 한계가 아쉽다. 해경의 경우 스쿠버 장비만 갖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처럼 자체 해결 능력이 있다면, '언딘'에겐 구난만 맡기고, 관과 군이 구조를 하면 된다.
소화기 밖에 없는 소방관, 어떻게 그 큰 불을 끌 수 있을까. '언딘'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④ 다다익선? 민간 봉사자의 딜레마
다시 A고등학교 이야기다.
화재 소식에 마을 동호회 사람들이 달려왔다. 전직 소방 공무원 출신도 있었다. 반대로 물총놀이만 하던 사람도 있었다. 어찌됐든 화재 진압에 힘을 보태려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다.
세월호 사고에도 수많은 자원 봉사자가 찾아왔다. 약 32~33개 잠수 단체가 모였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도 있었다. 반면 레크레이션 수준의 다이버도 있었다. 심지어 경력을 뻥튀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해경 입장에선 옥석을 가려야 했다. 실제로 입수와 동시에 조류에 휘말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구하기위해 정해진 시간과 체력을 허비할 수 없었다.
해경 특구단 관계자는 "민간에서 자원으로 지원하는 건 감사하다. 그러나 생사의 현장에서 검증도 안된 봉사자를 투입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지금 구조를 해야한다. 그들에게 (구조)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 vs 관, 이들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됐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자원 봉사자의 불만이 촉매제가 됐다. 그리고 이를 막는 게 해경, 해경을 조종하는 게 언딘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니, 기정사실화 됐다.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불만이며, 어디까지 트집일까.
'디스패치'는 '언딘' 소속이 아닌, 순수 자원봉사자 4명을 만났다. 특수임무유공자회 이정구 총재, 김귀섭 전남지부장, 한국수중협회 백상훈 경북본부장, 한국해양구조협회 황대식 본부장 등이다.
백상훈 씨는 18일에 '앙카'를 설치한 일등공신이다. 16,17일에도 현장에 있었지만 유속 때문에 수중 진입에는 실패했다. 이정구 씨와 김귀섭 씨는 22일까지 머물렀다. 유도라인에 낚시용 전자찌를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실제로 선체에 진입해 시신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들은 '언딘'과 전혀 상관없이 물 속에 들어갔고,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물론 최소 10시간, 최대 2일을 기다리기도 했다. 또한 들어간다고 해도 허탕을 치는 날이 더 많았다.
"많은 단체에서 지원했습니다. 서로들 의욕이 앞섰죠. 물 속으로 보내달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이드 라인이 부족했고요. 정조를 공략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소외된 민간이 늘고, 불만이 터졌습니다." (황대식 본부장)
정확히 22일, 갈등이 폭발했다.
⑤ 해경 vs 민간 vs 언딘, 갈등의 원인?
해경과 민간이 대립한 건 22일 오후 1시 30분이다. 3012호 함장이 민간인 철수 명령을 내리면서다. 그는 "실종자 가족이 민간의 철수를 원한다"며 그 민간 잠수사의 투입을 금지시켰다.
민간 잠수사 두 사람이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을 만났다. "정말 철수를 원하냐"고 물었다. 실종자 가족은 "아니다. 일부 잠수사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꼭 빼달라"고 답했다.
사연은 이랬다.
실종자 가족은 일부 민간 잠수자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방송이 목적인 잠수사도 있었다. 한 잠수사는 스쿠버 장비도 없이 물 속에 뛰어 들었다. 방송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1분 1초가 급한 가족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또한 이런 '언플'은 실제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들에게 상처였다. 22일 이후, 민간 잠수사들이 팽목항을 떠난 것도 이런 상실감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해경은, 일부 민간 잠수사의 '카더라' 인터뷰에 희생된걸까.
그건 절대 아니다.
'디스패치' 취재 결과 해경과 민간의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해경은 '언딘'만 민간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해경', '해군', '언딘', 그리고 '순수 민간'의 각개전투가 이번 구조작업의 '4대' 축이었다.
특수임무유공자회 이정구 총재에 따르면 해경 지도부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민간 잠수부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래서 인원을 추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작 중요한 작업 상황에 대한 공유는 없었다.
"'A팀이 들어가서 어디까지 작업했다'는 식의 인수 인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런 회의가 없었습니다. 민간 팀이 너무 많으니 팀별 인원을 선별해달라는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하긴 실제로 홍가혜같은 사람이 왔을 정도니…." (이정구 총재)
"유도라인을 설치할 때 '전자찌'를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하나에 6,000원~8,000원 하는 찌를 40개 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듣지를 않더군요. 결국 나중에 설치를 했지만…. 서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김귀섭 지부장)
대신 민간 투입에 관한 한, '언딘'에 상당히 의존한 느낌이다.
이정구 총재는 "정조 시간이 4번이다. 그 때는 SSU, 특구단, 머구리(언딘) 등이 순차적으로 투입됐다"면서 "선택과 집중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순수요원이 들어갈 기회는 거의 없었다. 우리도 정조 시간을 피해 들어갔다"고 전했다.
⑥. 해경의 신뢰도, 그리고 다이빙벨
해경은 왜 '언딘'을 맹신했을까. 굳이 고용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특수부대 출신도 이런 해난 사고를 자주 경험하진 못한다. 반면 언딘 소속 잠수사는 오랜 기간 '산업 잠수사'로 활동했다. 그런 면에서 신뢰를 샀다.
수중협회 백상훈 본부장은 "해군과 해경, 언딘이 주축인 것은 맞다. 사실 언딘에 실력있는 잠수사가 많다. 또 현장에서 스카웃되기도 한다"면서 "물론 그들의 방침을 탓하진 않는다. 누가됐든 구조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해경의 신뢰도다. 과연 그들의 작전이 최선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진짜 실력있는 민간 잠수원을 배제했다면? 반대로 언딘 출신을 무조건 맹신했다면? 해경의 추락한 신뢰도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잠수사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다이빙벨 논란도 마찬가지다.
다이빙벨,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다이빙벨은 쉽게 말해 바다 속의 휴식공간이다. '종'의 상단부에 에어포켓이 형성된다는 것. 이종인 대표의 20시간 연속 작업론도 여기서 나왔다.
"선체를 수색하고, 벨에서 호흡하고, 다시 선체를 수색하고, 벨에서 감압하고…."
해경은 반대 논리를 내세웠다. 맹골수도처럼 험한 바다에선 힘들다는 것. 크레인을 이용하기에 유속에 따라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흔들리는 종 안에 사람을 가둬 놓는 식이라고 반박했다.
해경 특구단 관계자는 "조용한 심해라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수심은 37m다. 수면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무용론을 말했다.
하지만 해경은 또 다시 입장을 바꾸었다. 총책임자가 이종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투입을 요청했다. 그들은 왜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는 걸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가족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질책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렇게 해경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이빙벨을 받아들였다.
비록 실종자 가족의 요청이 바다 속 현실과 어긋날 수 있다. 또 다른 혼란을 불러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해경과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 실종자 가족이 말했다.
"우리도 뉴스를 보고 진행상황을 알아요. 그런데 믿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이러고, 누구는 저러고. 진실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판단할 이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사실만 알려주세요. 안그럼 우리가 더 흔들리니까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실일까. 변함없는 건, 구조가 최우선이다. 실종자 가족 입장에선 해군이든, 해경이든, 용역이든, 자원봉사든, 빨리 구해내기만을 바란다.
누가 불신을 만들고, 누가 갈등을 조장했을까. 해경과 해군, 나아가 정부, 덧붙여 민간과 언론까지, 모두가 '이기적'이었다. 이것이 실종자 가족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그들의 눈에 색안경을 씌웠다.
세월호, 침몰하는 순간 모든 것이 꼬였다.
<사진=김용덕·서이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