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미옥은 원래 맥만 짚고 사라지는 인물이었대요." (채서린)
불과 몇 줄짜리 역할이었다. 이름도, 제대로 된 서사도 없었다. 신인 배우 채서린은 장기간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됐다. 그 과정에서 '미옥'이라는 인물도 함께 자랐다.
정지우 감독은 이 신인에게 "뭘 하든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용기를 불어 넣었다. 실제 배우를 보고, 캐릭터에 살을 붙였다. 채서린 역시 자신만의 해석으로 미옥을 채워나갔다.
"감독님께서 저를 보고 서사를 만들어주셨어요. 제가 분석한 내용을 말씀드리면 '자유롭게 해보라'며 믿어주셨죠. 그래서인지, 미옥에게서 제 모습이 보여요."
그 한 역할을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채서린은 꾸준히 오디션장 문을 두드렸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디스패치'가 지난 1일 채서린을 만났다. '스캔들'의 미옥이 되기까지, 그리고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신인 배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 미옥의 확장
'스캔들'은 채서린의 첫 작품이다. 캐스팅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오디션만 3개월간 이어졌다. 처음부터 특정 배역을 놓고 경쟁한 것도 아니었다.
채서린은 "자유연기부터 노래, 무용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드렸다"며 "2차 오디션에는 어린 시절부터 연주해온 첼로까지 들고 갔다. 그만큼 간절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미옥'을 얻었다. 당초 미옥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작은 역할이었다. 게다가 원작 영화에도 없는 인물이었다. 참고할 만한 전사도 없었다.
정지우 감독은 채서린을 여러 차례 만나며 미옥의 이야기를 확장했다. 동시에 '해석의 자유'를 줬다. "산으로 가도 된다. 다시 내려오면 된다"며 마음껏 상상하도록 했다.
극 중 미옥은 소실 소옥(신윤하 분)의 언니다. 소옥을 향해 질투와 경쟁심을 드러낸다. 채서린은 그 감정을 단순한 미움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이면의 외로움과 결핍을 들여다봤다.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버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옥을 질투하고, 새어머니를 미워하는 모습도 단순히 밉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죠. 그 안의 서글픔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 살아있는 연기 수업
채서린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사극 연기도 낯설었다. 특히 말투가 고민이었다. 사극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보며 감을 익혔다.
현장에서는 선배 손예진(조씨부인 역)이 손을 내밀었다. 대본을 직접 봐주고, 사극 연기의 강약을 짚어줬다. 자신의 신인 시절 경험도 들려줬다.
"선배님이 대본을 가져와 보라고 하셨어요. 함께하지 않는 장면까지 봐주셨죠. '이 장면에서는 사극 말투가 덜 나와도 된다.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나씩 알려주셨어요."
첫 작품부터 베테랑 배우들과 호흡했다. 채서린에게 현장은 그 자체로 연기 수업이었다. 특히, 선배들이 촬영에 임하는 자세를 눈여겨봤다.
"잠깐 쉬는 시간에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어요. 계속 대사를 읊고 장면을 준비하셨죠. 이미 너무 잘하는 선배님들인데도, 끊임없이 노력하시더라고요."
채서린은 "현장에서 배우들과 부딪히면서, 연기는 결국 사람과 함께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며 "이후로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돌아봤다.
◆ 배우의 꿈
채서린은 8살 때부터 첼로를 연주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예술고 영재원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배웠다.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다, 결국 배우의 길을 택했다.
"어느 순간 '악기가 아닌 나 자신으로 무대에 설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는 누군가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분야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기회는 대학 공연 때 찾아왔다. 담당 연출 교수의 추천으로 지금의 소속사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교수는 채서린의 연기 실력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곧바로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채서린은 "약 3년간 레슨을 받고, 연기 스터디를 이어갔다. 혼자 독백 영상을 찍어 피드백도 받았다"고 회상했다.
채서린은 수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셨다. 최종 단계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좌절했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다시 대본을 펼치고, 다음 오디션을 준비했다.
"당연히 속상했죠. 다행히 오래 매몰되는 편은 아니에요. '두고 봐. 나와 맞지 않는 역할이었던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시 준비했습니다."
◆ 새로운 발자국
첫 작품을 마친 채서린은 다시 오디션장을 찾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도 한층 선명해졌다. 단순히 밝은 역할보다,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캐릭터에 끌린다.
특히 기억에 남는 오디션이 있다. 채서린은 "해리성 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을 준비했을 때였다. 최종 캐스팅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고 떠올렸다.
"준비하는 동안 그 인물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작품을 하게 된다면 배우로서도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차원적이지 않은 인물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첼로도 언젠가 연기에 녹여내고 싶다. 음악을 다룬 작품에서 그 경험을 꺼내는 것이 목표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에도 욕심을 내비쳤다.
롤모델은 '대배우' 윤여정이다. 채서린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색깔로 연기를 이어가시는 모습이 멋있다.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모습도 닮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채서린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되는 것. 그 과정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도 있다. 그는 "배우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신인상을 꼭 받아보고 싶다"며 웃었다.
<사진=정영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