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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력 무너져도, 품위는 남는다"…정성일, '메인코2'의 무게

[Dispatch=이아진기자] "연기는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정성일이 지금까지 이름을 올린 영화와 드라마만 39편. 이제는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작품마다 묵직한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우민호 감독도 그 강점에 주목했다. '화를 내거나 감정을 터뜨리지 않아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배우'라는 이유로 정성일을 캐스팅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 정부 권력자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본 것.

그럼에도 정성일은 자신의 강점에만 기대지 않았다. 인물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파고들었다. 그 태도는 2개의 시즌에 걸쳐 '천석중'을 입체적으로 완성하는 힘이 됐다.

'디스패치'가 최근 배우 정성일을 만났다.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2'의 천석중을 완성한 과정부터 배우로서의 가치관까지 들었다.

◆ 권력자의 무게

'메이드 인 코리아2'는 전작으로부터 9년 뒤의 이야기를 그린다. 권력의 정점에 선 백기태(현빈 분), 반격을 준비해 온 장건영(정우성 분), 또 다른 권력의 꼭대기를 향하는 백기현(우도환 분)의 욕망이 충돌하며 거대한 균열을 만든다.

정성일이 맡은 천석중은 그 권력의 한복판에 있는 인물. 육사 수석 출신으로 여러 요직을 거친 엘리트이자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권력의 2인자라고 불릴 만큼 힘이 세고, 욕망이 강하다.

극 중 캐릭터 대부분이 당대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천석중 역시 직위와 이력에서 특정 인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실제 인물의 삶과 성격을 그대로 옮긴 캐릭터는 아니다.

작품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에 가깝다. 그래서 시즌1부터 천석중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과 결을 지녔는지를 세밀하게 쌓아가는 작업이 중요했다.

정성일은 "감독님이 가장 강조하신 게 '극 중 가장 허구적인 인물이 천석중'이라는 점이었다"며 "역사적인 사건 안에서 이런 인물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존재하게 할지를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권력자의 무게에 집중했다. 다만 힘을 과시하기보다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주변 인물들의 반응으로 천석중의 위상을 드러내는 한편, 무력을 통해 권력을 쥔 인물일수록 품위를 원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대상을 반영해 당시 권력이 있던 지역인 경상도의 사투리를 쓰고 싶다고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사투리는 짧은 말 안에도 여러 뉘앙스를 담을 수 있어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무게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개도 위로 향하게 함으로써 모든 걸 발 밑에 거느리는 권력자의 모습도 더하려고 했습니다."

◆ 무너지는 권력

시즌1에서 권력자의 아우라를 쌓았다면, 시즌2에서는 그 권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야 했다. 권력의 판도가 뒤집히면서, 천석중은 하루아침에 취조실로 끌려간다.

정성일은 "시즌1에서 만든 무게감을 지키면서 무너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난이도는 훨씬 높았지만 배우로서는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서 더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취조실에서의 장면들에 힘을 줬다.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간. 남아 있던 권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 속에서도, 천석중은 품위를 놓지 않으려 한다.

"천석중은 고개를 숙일 일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취조를 받다 보니 저도 모르게 고개가 떨어지더라고요. 계속 고개를 들어야한다는 마음을 되새기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일부러 품위를 깨뜨린 순간도 있었다. 황대식이 총을 겨눌 때 몸을 움찔한다. 대본에는 없던 설정. 하지만 정성일은 그 순간만큼은 천석중의 인간적인 얼굴을 꺼내고자 했다.

"과하게 움찔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이라 놓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반응까지 섬세하게 봐주시면 천석중이라는 인물을 더욱 흥미롭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달라진 관계, 깊어진 연기

천석중의 변화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배우들이 주고받는 연기의 밀도도 높아졌다. 특히 천석중과 백기태는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사이가 됐다.

정성일은 "시즌1의 천석중에게 백기태는 완벽히 필요에 의해 곁에 둔 인물이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가장 먼저 찾고 의지할 만큼 가까워졌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친밀함과 경계가 공존하는 관계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현빈의 연기는 자극제가 됐다. 정성일은 "첫 신부터 현빈 씨가 저를 부르는 호칭이나 앉아 있는 자세가 건방져진 게 느껴졌다"며 "얼마나 백기태가 천석중의 자리 가까이까지 올라왔는지 체감이 됐다"고 떠올렸다.

"현빈 씨가 그 9년간의 변화를 너무 잘 만들어와서 단숨에 몰입됐어요. 그래서 더 다채로운 연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극 중에서는 미묘한 관계지만, 현실에서는 고마운 조력자이자 동반자였던 셈이죠."

취조실 장면들에서도 새로운 호흡을 경험했다. 백기현(우도환 분), 황대식(허정도 분) 등 시즌1에서 만나지 않았던 인물들과 연이어 맞붙었다. 이미 각자의 캐릭터로 완성된 배우들을 상대하자, 준비했던 계산보다 순간적인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때는 연기라는 생각이 잘 안 들었어요. 상대 배우들이 이미 그 인물이 되어 있으니까 저도 천석중으로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황대식이 '빵야, 빵야' 할 때는 순간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웃음) 촬영이 끝나고 바로 (허)정도 형님께 연기가 너무 좋았다며 안겼죠."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실, 상대 배우들과 부딪치며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천석중에게 깊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성일은 허구성이 큰 인물 안에서 권력을 쥐었을 때의 오만부터 불안과 생존 본능까지 짚어냈다.

"머리로만 이해해서 연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온전히 그 인물로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느끼려고 하죠. 그리고 시청자들이 제 연기를 보며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연기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도 생겼다. 지난해 공연 '카포네 트릴로지'를 하며 긴 시간 한 인물로 살아야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정성일은 "작품 속 인물로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정작 정성일로 사는 시간이 없어지더라"며 "그래서 요즘은 끝나는 시점에는 빨리 털어내려고 한다. 그래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 경력 끝에 남은 기준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채우는 것. 정성일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시간을 쌓아왔고,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시간만 보낸다고 되는 건 아니죠. 그 시간을 얼마나 열심히,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노력하며 보냈느냐에 따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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