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암살자(들)'은 극영화다.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극영화다. 물론, 극영화가 상상의 치트키는 아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허진호 감독은 손을 내저었다. "영화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며 "박정희 배후설은 내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벗어난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허진호 감독의 실패다. 일부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와 달리) 박정희 대통령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라고 해석하고 있다.
관객이 색안경을 쓴 것일까. 감독이 색안경을 씌운 것일까. '암살자(들)'의 비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영화의 제작 의도가 그렇게 읽힌다는 것. 아쉽다.
'암살자(들)'은 131분 동안 배후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 의심은 경호실, 중정, 윗선으로 뻗어간다. 그리고, 이 (말 못 할) 윗선은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한 회장(정우성)과 재환(박해일)의 대담을 보자. 재환은 "중정 윗선이 일본 우익과 결탁해 소동극을 벌이려 했는데 비극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가설을 꺼낸다.
한 회장은 제동을 건다. "각하 목숨이 달린 일"이라며 과대망상을 지적한다. 그러다 "권력이 목숨보다 중하다면 어떻겠냐"고 반문한다.
영화는 분명 배후를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객은 읽을 수 있다. 영화가 '중정'과 '윗선'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괄호의 '들'은 그들로 해석된다.
선악 구도 역시 비교적 명확하다.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와 형사들이 서사의 중심에 선다. 관객은 이들이 발견하는 단서와 추론을 따라가며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반대로 중정 기관원과 경호계장 등은 잔혹하다. 별다른 내부 갈등은 없다. 철저히 은폐에만 집중한다. 진실을 추적하는 주인공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한다.
이 영화에서 구분해야 할 2개의 명제가 있다. '피격 사건에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와 '중앙정보부 혹은 박정희 정권이 피격 사건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두 문장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역사적 의문이다. 반면 후자는 음모론에 가깝다. 전자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후자는 별도의 증거를 필요로 한다.
영화는 두 명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역사작 의문을 너무 쉽게 압축, 그저 '윗선'이라는 말로 퉁쳤다. 의문과 의혹, 의심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다.
'그렇게 만들 의도가 없었다'와 '그렇게 읽을 가능성이 없다'는 전혀 다른 문제다. 허진호 감독은 의혹과 팩트의 경계를 더욱 정교하게 조율했어야 한다. 영화를 읽는 사람을 탓할 순 없다.
<사진출처='암살자(들)'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