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아진기자] "AI 시대의 딜레마를 담았습니다."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이 한층 깊어진 세계관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AI를 소재로 삼았다. 기술이 현실을 대신할 낙원이 될 수 있는 설정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그려갔다.
완벽하게 보존된 기억에 머무를 것인가, 고통스럽더라도 불완전한 현실로 나아갈 것인가. 그 갈림길에 선 인간의 심연을 좇았다.
묵직한 화두를 던지지만, 분명 일상에 발을 딛고 있는 영화다. 연 감독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들을 다뤘다"고 설명했다.
'실낙원' 측이 18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제작보고회를 열었다. 연 감독, 김현주, 배현성 등이 참석했다.
'실낙원'은 SF 스릴러 장르다. 실종됐던 아들이 9년 만에 돌아오면서 어머니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이야기는 연 감독 어머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어머니가 공책에 써놓은 3줄짜리 줄거리에서 시작했다"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파헤쳤다. 여기에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대비다. 연 감독은 "완전한 낙원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완전한 기억과 불완전한 현실을 대비시켰다"며 "결국 불완전한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전작 '얼굴'에 이어 이번에도 저예산 제작 방식을 택했다. 연 감독은 "투자를 받지 않으니 책무감에서 조금 자유로웠다"며 "내가 정말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는 엄마 '류소영'을 연기한다.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인 AI 아들과 9년 만에 현실로 돌아온 아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지옥' 시리즈에 이어 연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김현주는 "감독님은 많은 요구를 하기보다 배우의 연기를 존중해주신다. 그 신뢰의 눈빛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고 작품 선택 계기를 밝혔다.
두 아들을 대하는 온도 차에 집중했다. 그는 "AI 아들은 이미 소영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존재"라며 "익숙하고 현실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공허하게 보이도록 했다"고 짚었다.
반대로 돌아온 아들에게는 거리감을 느끼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 이를 위해 촬영 현장에서도 아들 역의 배현성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했다.
김현주는 "눈빛을 자주 주고받고 교감하면 낯선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았다"며 "촬영 전에도 대화를 최대한 자제했다"고 회상했다.
배현성은 아들 '류선우' 역을 맡았다. 실종된 9년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거칠고 파괴적인 성격을 보인다.
그는 "어두운 이야기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며 "이전에 보여드리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털어놨다.
선우가 품은 복합적인 감정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AI 아들과 잘 지낸 것처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를 향한 서운함과 원망부터 선우가 감추고 있는 미스터리하고 어두운 감정까지 함께 드러내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실낙원'은 지난 10일 개막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처음 공개됐다. 감독과 배우들도 현장에 참여했다. 뜨거운 반응을 온몸으로 느꼈다.
연 감독은 "제 역대 작품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이 녹아있어서 그런지 많이 공감해주신 것 같다"고 돌이켰다.
관전 포인트로는 배우들의 연기를 꼽았다. 그는 "김현주는 30년 동안 쌓아온 '김현주표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다"며 "배현성은 초사이언처럼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현주는 "저희 영화를 의도대로 보시려면 류소영의 고민을 따라가야 한다"며 "소영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그 심연을 제대로 느껴보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진=정영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