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배우 변요한의 필모그래피에는 어느 하나 쉬운 역할이 없다. 매번 자신을 갈아넣어야 완성할 수 있는 인물을 택했다. 그에게 고통은, 연기의 일부다.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 4')도 마찬가지였다. 촬영을 앞두고 약 5개월 동안 몸을 만들었다. 강박에 가까울 만큼 자신을 몰아붙였다. 결국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까지 향했다.
"배우가 고통스러워야 그 향기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을까요? 배우로서 고뇌와 고독,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고통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번 작품의 고통은 육체에만 있지 않았다. 변요한은 '타짜'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어떻게 잘 끝낼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마지막 편만의 색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디스패치'가 지난 14일 변요한을 만났다. '타짜'의 마지막 승부에 모든 것을 건 과정, 그리고 장태영을 완성하기까지의 고민을 들었다.
◆ "마지막 타짜, 부담 던졌다"
'타짜 4'는 '타짜' 시리즈의 외전이다. 온라인 카지노 사업으로 불법적인 부를 축적한 장태영(변요한 분)과 그의 절친 박태영(노재원 분)의 이야기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장태영이 자신을 배신한 박태영을 상대로 복수에 나서는 과정을 담았다.
변요한은 부담이 앞섰다. 20년을 이어온 '타짜' 시리즈의 피날레. 앞선 작품들이 저마다 강렬한 색을 남긴 만큼, 그 이름을 이어받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변요한은 "두렵다는 이유로 다른 배우에게 넘긴다면,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목표는 명확했다. 전작을 흉내내지 않는 것. 기존 시리즈의 색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타짜'라는 타이틀을 납득시켜야 했다. 변요한은 '우리만의 색깔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해답은 장태영과 박태영의 관계에 있었다. 변요한은 카드 기술보다 두 친구의 감정에 집중했다. 우정에서 출발해 질투와 야망, 배신과 추락으로 뒤엉키는 관계를 이번 작품의 중심에 뒀다.
"손기술에만 집중하면 앞선 작품들과 연결성은 있겠지만, 우리만의 '타짜'는 아닐 것 같았어요.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결국 우정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지나간 패는 보지 않는다"
변요한이 해석한 장태영의 핵심은 침착함이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분노를 곧장 터뜨리지 않는다. 속은 들끓지만, 상대를 바라보며 다음 수를 기다린다.
처음부터 정해둔 방향은 아니었다. 변요한은 배신당한 인물을 분노로 끌고 갈지, 광기로 밀어붙일지 고민했다. 캐릭터를 파고들수록, 오히려 감정을 누르는 편이 장태영답다고 판단했다.
"제가 분석한 장태영은 침착한 사람이었어요. 내면에는 분노가 있지만, 상대를 계속 지켜보죠. 홀덤과 비슷해요. 테이블에 앉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니까요."
변요한은 수개월 동안 홀덤을 익혔다. 홍진호를 비롯한 실제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거듭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심리를 읽기 시작했다.
홀덤의 원칙은 장태영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지나간 패에 매달리면 다음 승부로 나아갈 수 없다. 힘들게 자랐지만 구김이 없는 장태영 역시,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운이 좋다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지나간 과거를 인정하고, 그때의 나를 용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 "배우들은, 타짜의 키"
변요한은 상대 배우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 노재원과 교복을 입고, 조우진과 사제 관계를 맺고, 윤경호·문지훈·미요시 아야카 등과 부딪치며 장태영을 채워갔다.
"제 색깔이 뭔지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배우들을 만나면서 답을 찾았어요. 그들이 주는 에너지를 통해 장태영을 만들어갔죠. 예상치 못했던 감정도 많이 나왔고요."
특히 노재원과 긴밀하게 호흡했다. 변요한은 그를 "학구적이고 집요한 배우"라고 표현했다. 촬영장 밖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전화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함께 고민했다.
"연기할 때는 서로의 공간을 내줬어요. 제가 기세 있게 들어가면 재원이가 구석으로 가고, 재원이가 활개를 치면 제가 힘을 뺐죠. 보이지 않는 선에서 서로 양보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결국 변요한이 찾던 '우리만의 색'은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배우들이 각자의 해석을 꺼내고, 상대에 맞춰 자신의 에너지를 조절했다. 그 충돌과 양보가 마지막 '타짜'를 완성했다.
◆ "고통이 나를 채운다"
변요한은 장태영의 시간까지 몸으로 표현했다. 단기간에 약 10kg을 감량했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다시 한국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잘하든 못하든 다 쏟으려고 해요. 그래도 늘 부족하죠. 배우에게는 감정을 정확하게 집어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관객이) 보고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피부로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고통은 단순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인물을 치열하게 완성하는 과정에서, 비어있던 자신도 채워간다.
최근 '경주기행'과 '아버지의 집밥'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배울 수 있는 현장이라면 무조건 달려가고 싶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타짜'라는 이름이 그를 고민하게 했다. 몸의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카드판에서 장태영의 삶을 배웠다. 변요한에게 연기는 그렇게 자신을 쏟아낸 뒤, 다시 채우는 일이다.
"피하고 싶은 걸 피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찍었습니다. 그 마음이 관객분들께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