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아진기자]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의 과거를 직접 파헤쳤다. 나치 전범 추적 기관에 조사도 의뢰했다. 하지만 부친이 직접 전쟁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과거에 면죄부를 주진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가족사를 꺼냈다. “나치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아버지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망가졌다"며 같은 길을 걷지 말라고 호소했다.
오드리 헵번도 가족의 과오와 선을 그었다. 부모는 1930년대 파시즘을 지지했지만, 헵번은 이를 비판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노예 12년’ 등에 출연하며 노예 노동으로 부를 축적한 가족사를 반성했다.
이 배우들이 조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건 아니다. 그러나 숨기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조상의 잘못을 정면으로 응시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판했다. 진실을 알게 된 뒤의 행동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하영의 선택은 어땠을까. 그가 가족사를 대하는 방식은 안일했다. 그는 증조부와 조부를 수저 바이럴에 이용했다.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했다”면서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오히려) 자랑했다.
하영은 그 훌륭한(?) 증조부을 스스로 알아보지 않았을까. 안상호라는 이름를 검색하면, 그의 친일 행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지 ”무지했다“는 변명으로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안상호의 삶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그는 대한제국의 엘리트 의사였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황실 촉탁의로 활동, 의친왕을 보필했다.
하영의 부친은 이 부분을 강조했다. “조부가 의친왕을 늘 가까이 모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친일 논란에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항일 의지가 강한 사람을 모셨기에 의심하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안상호는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순응한다. 이완용 치료를 도왔고, 이토 국민추도회 준비위원·경성부협의회 초대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정친목회 평의원도 맡았다. 일본여성과 결혼, 일선동화의 모범 사례로 선전됐다.
하영에게 실망하는 건, 친일파의 후손이라서가 아니다. 대중은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지 않는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즉, 조상의 친일은 하영의 의지와 무관한 일이다.
문제는, 하영의 안일한 태도다. 가족사를 대중 앞에 자랑하려면, 적어도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다. “나는 몰랐다”는 무지가 검증의 책임까지 지워주지는 않는다.
하영은 사과문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독립에 힘쓴 분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겠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행동하면 된다. 그의 다짐이 부지런하길 기대한다.
<사진=디스패치DB, 인스타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