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데뷔일은 2002년 6월 3일. 2년 만에 모든 음악방송 1위를 찍었고, 의문의 사건에 휘말려 해체됐다. 혼성그룹 '트라이앵글'의 이야기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룹이다. 그러나 '와일드씽'(감독 손재곤)은 배우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을 스크린 밖에서 먼저 데뷔시켰다.
음원을 내고, 포토카드를 찍고, 응원법을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낯설지 않다. K팝 아이돌의 데뷔 공식과 정확히 닮아있다.
영화 홍보가 아닌, 아이돌 문법을 선택했다. 관객은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팬이 돼 있었다. 다음은, '와일드 씽'의 홍보 타임라인이다.

◆ 와일드 컴백
D-97 출발은 나무위키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월 26일 문서를 열었다. 설정을 먼저 공개하며 존재하지 않던 그룹에 과거를 부여했다. 팬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열어뒀다.

D-80 그 다음은 현실 플랫폼으로 끌어냈다. 인스타그램을 개설하며 본격 컴백을 준비했다. 가상 그룹이, 피드 위에서 호흡하기 시작했다.

D-58 컴백 빌드업을 차례차례 쌓아올렸다. 트라이앵글은 4월 6일 인스타그램에 '커밍순'(COMING SOON) 이미지를 공개했다. 제목은 '트라이앵글 이즈 백'(TRIANGLE is Back).

스포일러 알림(spoiler alert), 티저 포스터, 앨범 타임테이블, 응원법, CD 구성, 포토카드 등 익숙한 순서로 콘텐츠를 풀어냈다. 여느 아이돌과 같은 컴백 예고였다.

D-47 관계도 설계했다. 라이벌 최성곤(오정세 분)을 등장시키며 세계관을 확장했다. 단일 그룹이 아닌, 경쟁 구도를 만들며 서사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그의 등장은 트라이앵글을 응원하던 팬들마저 흔들었다.

D-43 화룡점정은 음악이었다. 4월 21일 싱글 '러브 이즈'(Love is)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영화보다 먼저 음원 플랫폼에 정식 발매했다.

D-12 5월 22일 다음 타자로 최성곤이 나섰다. 정규 2집 타이틀곡 '니가 좋아'를 발표했다. '최성곤- 니가 좋아 1시간 반복 재생' 영상도 공식 유튜브에 올렸다.
노래의 특성을 정확히 읽은 전략이었다. 짧고 단순한 멜로디, 귀에서 떠나지 않는 훅. 1시간 영상히 자연스럽게 소비됐다.

D-day 6월 3일, 영화가 개봉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된 뒤였다. '와일드씽'은 영화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팬을 만들었다. 그리고 팬들은 이미 세계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은 '디스패치'에 "영화에 대한 설명을 앞세우기보다 대중의 호기심을 먼저 이끌어내면,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러브 이즈' M/V는 300만 뷰를 넘겼다. 팬들은 트라이앵글 나무위키 페이지에 직접 정보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설계는 정교했다. 멤버 현우(강동원 분)의 연습실 셀카를 올리고, 개봉도 전에 역조공 카페를 열기도 했다. 자체 콘텐츠도 쏟아졌다. 배우들의 준비도 홍보 못지 않았다. 강동원은 5개월 동안 춤 연습에 매진했다.
고난도 브레이크댄스와 헤드 스핀을 직접 소화해냈다. 엄태구는 래퍼가 되기 위해 JYP 연습실을 5개월간 드나들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홍보팀은 "대중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배우들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실제 아이돌 데뷔 프로모션 마케팅 문법을 세심하게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트라이앵글은 배우가 연기하는 그룹이 아닌 실재하는 존재가 됐다. 관객들은 영화 홍보물을 보는 게 아닌, 실제 아이돌 그룹의 컴백 소식을 접하는 것처럼 소비하기 시작했다.

◆ 와일드 반란
D+1 뚜껑을 열고 나니, 예상 밖의 주인공은 최성곤이었다. 오정세는 한쪽 눈을 가린 헤어스타일, 과도하게 감성에 몰입한 표정, 반복되는 '러브 유 ☞^^)☞~♥︎♡' 포즈까지.
촌스러움과 그리움을 절묘하게 오가는 진지한 열연으로 완성했다. 숫자로 반응을 증명했다. '니가 좋아'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100만 뷰를 돌파했다.

음원은 개봉일인 6월 3일 하루 만에 멜론 이용자 수가 86% 폭증했다. 지난 6일 466위, 9일엔 391위로 치솟았다. 인스타그램, 틱톡, X까지 장악했다.
배우 류승룡, '에스파' 윈터, '피프티 피프티' 문샤넬, '보이넥스트도어' 태산 등 가수와 배우를 가리지 않고 챌린지에 탑승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D+10 개봉 후에도 세계관은 계속된다. 오정세는 오는 13일 본캐가 아닌 최성곤으로 무대인사에 나서며 세계관을 이어갈 예정이다.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이 마냥 후한 것만은 아니다. 탄탄한 서사보다는 캐릭터와 웃음으로 승부하는 영화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오정세는 남았다. 영화 밖까지 이어지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밈이 되고, 챌린지가 되고, 결국 하나의 캐릭터로 독립했다.

◆ 와일드 입덕
과몰입 마케팅은 영화계 전반의 흐름이 됐다. 영화 '군체'(감독 연상호)는 영화 속 좀비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공연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기리고'는 극 중 설정을 위한 앱을 실제 앱마켓에 올렸고, 100만 명 넘게 다운로드하기도 했다.
이제 관객의 역할은 바뀌었다. 예전에는 포스터를 보고 예고편을 확인하고 극장을 찾았다. 이제는 다르다. 음원을 먼저 듣고 챌린지 영상을 찍는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 이미 그 세계 안에 있다.
배급사들도 이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쇼박스 관계자는 "영화를 보고 이 캐릭터, 이 배우, 이런 포인트가 터질 것 같다는 걸 미리 다 계획한다. 살목지의 경우 데시벨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CGV 데이터에 따르면, '살목지' 관객 중 3인 이상 단체 관람 비율은 14%로, 일반 멜로 영화(5%)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함께 체험하러 가는 영화로 소비된 것.
티켓 값이 오르고, OTT가 일상화된 시대. 관객이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필요해졌다. 영화 홍보는 이제 공지가 아닌, 세계관으로 승부한다. 영화 보다 먼저 시작되고,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