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저도 착한 역할 하고 싶은데…”(이희준)
이희준은 ‘악인 콜렉터’다. 독재자에 충성하는 경호실장(남산의 부장들)부터 광기 어린 살인마(살인자ㅇ난감), 부친 살해를 사주하는 인간 말종(악연)까지 각양각색 악인들을 구현해왔다.
이번에도, 또 악인이다. ENA ‘허수아비’에서 검사 차시영으로 분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위계도, 조작도, 은폐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을 그렸다.
“헬스장 직원분이 ‘허수아비’를 보셨나 봐요. ‘드라마 잘 보고 있긴 한데 너무 못되게 나와서 괜찮아?’ 걱정하시더라고요(웃음).”
‘디스패치’가 최근 이희준을 만났다. 전작들과는 또 다른, 악인의 과정을 들려줬다. 연기를 향한 진심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진범 찾기 아닌 30년 서사
‘허수아비’는 1980년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가상의 마을 강성을 배경으로 학폭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형사, 검사가 돼 공조 관계를 맺는 데서 출발한다.
실재했던 비극이 주요 소재다. 사건 기록에서 따왔을 에피소드들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게다가, 봉준호 감독이 같은 소재를 다룬 ‘살인의 추억’으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희준은 이 작품을 택한 까닭을 묻자 “‘허수아비’는 (‘살인의 추억’과 달리 진범이 잡힌) 이후 시점까지 다룬다”며 “(이제는) 모두 범인을 알게 됐지 않나. 그 지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꼭 범인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같이 고통을 받았잖아요. 억울한 누명을 쓴 분들도 있었고요. 이들이 30년간 버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스토리의 힘이 컸다. “대본을 보고 너무 놀랐다. 강태주(박해수 분)와 감동적으로 공조하는 줄 알았는데 이후 이야기가 충격이었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자신의 과오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갈등한다는 설정을 듣고 ‘꼭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의 (도전 정신 같은) 그런 걸 자극했죠.”

◆ 되물림되는 폭력의 굴레
이희준이 연기한 차시영은 무원지방검찰청 강성지청 검사다. 막강한 뒷배를 가진 유력 정치인 아들이자 권력욕이 큰 인물로 묘사된다.
하나의 얼굴로 특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캐릭터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겪은 가정폭력을 학교폭력으로, 더 나아가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되물림한다.
이희준은 “시영은 현실의 괴물”이라면서 “우리 주변에도 애정 결핍과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 있지 않나. 그게 극대화되면 ‘저런 괴물이 될 수 있겠다’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현실의 괴물은, 희생을 키웠다. 죄 없는 사람들을 살인마로 몰고 손가락질 받게 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감옥에 가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시영에겐 진범을 잡는 일보다 빠른 사건 해결이 더 중요했던 것.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 드러난 대목이다. 세밀한 서사가 더해지며 연기에 설득력이 부여됐다.
“감독님한테 ‘얘는 진범 잡는 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거죠?’ 물어봤어요. 저번 주에 ‘범인 잡았다’ 하고 사과 없이 다른 용의자 놓고 ‘이번엔 확실하다’ 하잖아요. (가정환경이라는) 레이어를 심어주니 연기하기 더 수월했습니다.”

◆ 연기 내공이 폭발했다
가장 돋보이는 건 이희준과 박해수의 연기 합이다. 두 사람은 우정에서 시작해 ‘혐관’으로, 공조 관계에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렸다.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성이 도움이 됐다. 이희준은 “박해수와는 연극 때부터 함께한 사이”라며 “리허설 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언제든 ‘그 대사 해보자’ 연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수아비’가 (박해수와 동반 출연하는) 4번째 작품이거든요.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같이 늙어가자’는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실제 케미가) 드라마에도 묻어난 것 같습니다.”
아역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시영의 소년 시절을 연기한 문우진은 이희준과 상반된 분위기의 외모임에도 연기로 동일 인물임을 표현해냈다.
특히 1회 말미, 성인 시영과 어린 시영이 교차되는 신이 압권이다. 특유의 웃음소리가 이어지며 태주를 얼어붙게 만든 장면이다. 이희준의 내공으로 완성됐다.
“마지막에 ‘태주야. 오랜만이다’ 하는 신이 있거든요. 우진이에게 ‘웃음소리를 비슷하게 하면 좋겠다’ 했죠. 그렇게 (똑같이) 웃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

◆ ‘허수아비’ 그리고
‘허수아비’는 무거운 소재와 채널의 한계에도 승승장구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 작품은 1회 시청률 2.9%(전국 평균)로 출발해 매회 상승 곡선을 그렸다. 최종회는 8.1%로 마무리됐다.
ENA 역대 시청률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17.5%)에 이어 2번째로 가장 많이 본 콘텐츠에 이름을 올렸다.
이희준은 “시청률을 신경 썼던 게 ‘유나의 거리’ 이후 10년 만”이라며 웃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 감독과 박해수의 힘 아닐까 싶다”고 했다.
“‘허수아비’가 다른 드라마처럼 멋지게 범인 잡는 스토리가 아니잖아요. 잘 될 거라 생각 못 했어요. 진지하게 열심히 하자, 척하는 연기하지 말자 했는데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는 여러 편의 차기작과 공연을 동시 준비 중이다. 확정된 프로젝트만 총 4건. ‘무빙 2’와 ‘코리언즈’는 촬영에 돌입했다. 연극, 뮤지컬도 연습하고 있다.
이희준은 “욕심히 많다. (작품을 보고) 심장이 뛰면 무조건 하고 싶다. ‘나는 왜 무리를 할까’ 싶기도 한데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와도 그럴 것 같다”고 고백했다.
꾸준히 무대를 찾는 이유도 전했다. “너무 재밌다. ‘이 자리에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할 정도”라며 “연기에 대한 초심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소중하다”고 미소 지었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