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무거운 이야기여서 걱정이 많았거든요."(박준우 감독)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그 태생부터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허수아비' 제작진이 품은 건, 1980~9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다수 채널에 편성을 제안했는데) 거절을 많이 당했어요. 무겁고 우울하다는 피드백을 받았죠."
그도 그럴 게, 필연적으로 '고구마 서사'다. 경찰은 30년 넘게 진범을 잡지 못했다. 뒤늦게 이춘재의 짓임이 드러났지만 이미 늦었다.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다.
진범뿐 아니다. 숨은 가해자들 역시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박준우 감독은 "공권력이 피해자들에 이중의 피해를 입혔다. (그럼에도) 충분한 반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드라마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회고발'로 결론을 정해놨어요. 근데 너무 무겁잖아요. '시청자들이 우리 작품을 좋아할까?'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디스패치'가 27일 서울 종로구에서 ENA '허수아비' 측과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가 제작진을 대표해 자리했다.

◆ 숨어 있는, 가해자들
'허수아비'는 이춘재 사건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가상의 마을 강성을 배경으로 학폭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형사, 검사가 돼 공조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대중에 잘 알려진 진범에 관한 이야기 대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주목했다. 박 감독은 "윤성여 씨와 故 김용복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예상 밖의 일들을 들었다"고 떠올렸다.
윤 씨는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진범이 밝혀진 뒤에야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 씨는 경찰이 사체를 은닉한 피해자 김현정 양의 아버지다.
"이춘재 사건을 잘 몰랐는데 두 분을 만나고 예상 밖의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들이 겪었던 비극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뿐 아니라 공권력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한 폭력의 양상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 윤 씨와 김 양의 사연은 각각 석만, 혜진이의 서사가 됐다.
"피해자들이 이중의 폭력을 당했어요. 특히 (범행과 관계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피해자의 시신을 은폐하는 등) 공권력의 문제가 너무 컸어요."

◆ '허수아비'의 과정
다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허수아비'를 기획해 ENA에서 방송하기까지 약 5년이 걸렸다. 편성이 계속 어그러지면서 캐릭터 관계성을 다시금 설계하고 대본 곳곳을 수정, 또 수정했다.
이 작가는 "실제 사건을 가상과 어우러지게 하는 게 어려웠다.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기) 껄끄러울 수 있지 않나"라고 회상했다.
"(실제로도 경찰이) 억울한 일로 감옥 가게 만들고, 아이의 시신을 땅에 묻기도 했잖아요. 어디까지 설득력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고증에 매달렸다. 피해자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 1호 여성 프로 파일러' 이진숙 경위와 만나 사건에 대해 물었다.
인맥도 동원했다. 박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다' PD 출신이다. 관련 특집을 다뤘던 후배 PD에게 자료를 받아 꼼꼼하게 살폈다.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했는데 이춘재를 취재한 적은 없었거든요. 미스터리한 사건 정도로 알고 있었죠. (담당했던) 후배한테 받은 자료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애도의 방식
'허수아비'의 결말은 드라마적 허용보다 현실이 녹아 있다. 악인들이 벌을 받는 '사이다 판타지' 대신, 리얼리티를 부여한 것.
꼭 그래야만 했다. 박 감독은 "(KT스튜디오 지니 측에서) 권선징악 결말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그럴 마음이 없었다. (현실에선) 죗값을 받은 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윤 씨는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 가난하다는 이유로 범인이 됐습니다. 30년을 힘들게 사셨어요. 이춘재가 자백하지 않았으면 (사실관계가) 바로잡히지 못했을 테니까…비극적인 아이러니죠."
그럼에도, 일부 판타지는 남겨뒀다. 강태주(박해수 분)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피해자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작가는 "현실의 누군가도 태주처럼 용서를 구하면 좋겠다"고 했다.
제작진은 태주의 꿈을 통해 희생된 이들을 향한 추모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태주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그렸다.
"(사건 때문에) 너무 많은 피해가 발생했어요. 일상이 무너진 분들도 계시고요. 비극이 없었다면 그분들이 우리처럼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요. (이 작품을 통해)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
한편 '허수아비'는 지난 26일 종영했다. 역대 ENA 드라마 시청률 2위(8.1%)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사진제공=스튜디오 안자일렌, KT스튜디오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