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1등만 하려고 애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쳤죠. 사실 3등만 해도 괜찮은데…." (오정세)
박경세(오정세 분)는 이미 장편영화 5편을 개봉시킨 감독이다. 남들 눈에는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늘 불안과 열등감으로 뒤엉켜 있었다. 1등만 바라보며 달릴수록, 결핍은 더욱 커져만 갔다.
배우 오정세가 인간의 불완전한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지독한 질투에 휩싸여 상대를 깎아내리면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사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을 실감나게 구현해냈다.
'디스패치'가 지난 26일 오정세를 만났다.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를 통해 경세를 완성한 과정을 들었다.

◆ 경세의 위로
'모자무싸'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뒤처진 채,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는 인간이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현대인의 보편적 감정인 '불안'을 소재로 했다.
경세는 성공만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인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감정들을 놓친 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동만(구교환 분)과 부딪히고 상처받으며 성장해 나간다.
사실, 두 사람은 라이벌이자 서로의 뮤즈였다. 경세의 영화는 결국 동만의 이야기였고, 동만의 영화에는 경세의 삶이 녹아 있었다. 상대방의 인생을 작품으로 삼아온 것.
오정세는 "동만과는 매번 티격태격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끊어낼 수 없는 진한 우정이 깔려 있었다"며 "(구교환은) 드라마 안에서도, 밖에서도 제게 늘 영감을 주는 든든한 존재였다"고 떠올렸다.
드라마는 뻔한 성공담을 그리지 않았다. 통쾌한 사이다 전개도 없었다. 대신 각자의 불안과 무가치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
"작품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시청자분들도 (대사처럼) 아프지 말고, 병들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경세의 모티브
차영훈 감독과는 '동백꽃 필 무렵' 이후 2번째 만남이다. 오정세는 이번 작품에서 경세를 연기할 때, 차 감독에게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 종영 파티 현장을 떠올렸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행복해하고 있는데, 감독님 혼자 엉엉 우셨다"며 "큰 프로젝트를 끝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벅찬 감정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오정세는 그 인간적인 모습에서 경세의 결을 발견했다. 성공한 감독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아이 같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실제로, 오정세는 캐릭터를 만들 때 '투명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를 만들 때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며 "경세 역시 용기 있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짚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대사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순간의 상황과 감정을 만나면, 유난히 깊게 꽂히는 말들이 있거든요. '나 딱 3등만 할게'라는 대사 역시, 경세가 처음으로 자신의 불안을 인정한 용기 있는 고백이었죠."

◆ 오정세의 고백
그렇다면 오정세 역시 경세처럼 스스로의 무가치함과 싸운 적이 있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 수없이 오디션에서 낙방했던 무명 시절조차 '내가 무가치한 존재라서'라고 자책하기보다, '그럼에도 나는 올라갈 수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는 시기나 질투가 큰 편은 아니에요. 좌절하더라도 깊은 동굴까지 내려가진 않죠. 반면 경세는 성공에 크게 기뻐하고, 실패에 크게 흔들리는 인물이에요. 저와는 교집합이 크진 않습니다."
다만, 캐릭터를 만들 때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해진다. 대본 안에 감정을 덧입히고, 작은 디테일을 추가하다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극 후반부 장례식 장면이다. 그는 "상가집에서 모두가 절을 할 때, 경세 혼자만 기도하는 설정을 직접 제안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 다음 주에 또 고사를 지내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종교적인 의미로 시작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판이 커지는 것 같아 당황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저 역시 제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오정세의 원동력
오정세는 공백기가 거의 없는 배우다. 올해 상반기 작품만 4개다. 드라마 '클라이맥스', '모자무싸', '오십프로', 영화 '와일드 씽'까지. 그에게 연기는 곧 인생과도 같다.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요? 저는 일 안에서 쉬는 타입입니다. '이 작품 끝나면 쉬어야지'가 아니라, 현장에 가고, 배우들을 만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쉼을 찾아요."
다음 달 3일에는 '와일드 씽'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오정세는 과거 인터뷰에서 "코미디 장르가 제일 어렵다"며 기피했지만, 공교롭게도 웃긴 캐릭터에 도전했다.
"예전에는 (코미디가)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뒷걸음질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매를 맞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의 우려와 달리, 영화는 개봉 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극 중 발라드곡 '니가 좋아'는 SNS에서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발라드 왕자'로 역대급 부캐 탄생도 예고했다.
"경세와 제순, 성곤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에게 치열하게 달려가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넘기기보다, 끝까지 깊이 파고드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제공=프레인TPC, 스튜디오 피닉스, SLL, 스튜디오 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