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칸(프랑스)=정태윤기자] "영화를 가지고 왔는데 설레지 않을 수 없죠." (구교환)
칸의 새벽,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영화 '군체'(감독 연상호)의 월드 프리미어가 끝난 직후였다. 그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다음 날, '디스패치'가 배우 구교환, 신현빈과 마주앉았다.
구교환은 "오프닝 때부터 관객들이 박수쳐 주시고 서로 공연하는 기분이었다"며 "같이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 같기도 했다. 저도 박수 치면서 봤다"고 전했다.
신현빈 역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공유한 것들을 가지고 한국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기대감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 칸의 미드나잇
영화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으로 초청돼 전날 월드 프리미어 상영됐다. 상영이 끝나고, 배우들은 극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신현빈은 "영광스러운 자리라는 게 느껴졌다. 레드카펫에서 내려와 저희들끼리 사진도 되게 많이 찍었다. 정리하고 가셔야 된다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자는 요쳥에도 성실히 응했다. 그는 "사진 찍자는 요청 자체가 관객들의 코멘트 같았다. 셔터를 누르면서 감상도 바로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
"그때 관객의 반응을 생생하게 듣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더 찍었어요. 영화라는 편지를 보냈으니 답장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말 걸어주시길 기다리며 굉장히 느린 걸음으로 걸어다녔죠." (구교환)

# 구교환 | 나오지 않아도 출연하고 있다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은 천재 생물학자이자, 이 감염 사태의 설계자다.자신을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라고 선언하며 생존자들의 타킷이 된다.
그는 이 캐릭터를 영화 감독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서영철은 자기 시나리오가 있다. 이 세계관을 만든 사람이지 않나. 권세정(전지현 분) 일행이 문을 열 때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긴다"고 말했다.
"서영철은 자기 콘티대로 영화를 잘 찍고 있었는데 권세정이라는 대배우에게 휘말린 거죠. 못되고 보기 싫지만, 창조적인 아티스트인 거예요." (구교환)
서영철은 빌딩 안에 있는 좀비들과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서영철이 방에 갇혀 화면에 나오지 않아도, 출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장면보다 다른 장면들을 더 공부했다.

"저는 묶여 있어도 우리 아이들은 움직이고 있잖아요. 나의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제 장면보다 다른 신들을 더 공부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진화하니까 저도 같이 진화하려 했죠."
캐릭터에서 가장 신경 쓴 건 예측 불가능성이었다. 그의 패턴이 파악되는 순간, 관객들은 무섭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 논리 대신, 질서 없이 표현했다.
"서영철의 논리보다 에너지에 주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논리가 안 들렸거든요. 말이 안 통하는 놈이에요. 자기가 계획한 미션은 수행해버리고 마는 놈이라서 무서운 거거든요."
서영철은 영화 내내 여유로운 몸짓으로 움직인다. 그도 그럴 것이, 봉쇄된 빌딩 안의 수백마리를 수족처럼 움직이며 컨트롤한다. 하지만 구교환이 생각한 이면은 달랐다.
"그 사람이 불안하다고도 생각했어요. 불안을 숨기기 위한 본인만의 방어인 거죠. '실험이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면서도 절대 안 무너지려고 하는 거니까. 그게 오히려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해요."

# 신현빈 | 괴로움도 즐기는 자세
신현빈이 연기한 '공설희'는 반대편에 있다. 감염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유일하게 빌딩 밖에서 고군분투한다. 빌딩에 간 남편 한규성(고수 분)과 연락이 끊기고, 사건 조사에 뛰어든다.
그는 "현장의 상황을 거리를 두고 관망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감정을 많이 표현하면 관객들이 답답할 수 있고, 전문가적인 모습만 보이면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감정의 밸런스를 잡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었다. 신현빈은 "연상호 감독님이 빌딩 안의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해주시고, 디테일하게 디렉팅하면서 밸런스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고 털어놨다.
촬영 내내 혼자이기도 했다. 그 외로움이 오히려 캐릭터와 맞닿기도 했다. 그는 "내 말을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애를 쓰고 있는 이 상황이 지금의 저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전했다.
"사실은 엄청 어려웠죠. '얘는 감정을 터뜨리지 못하게 만들어 놨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하면서 괴로워했죠. 그런데 결국엔 괴로움을 즐기고 있으니까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연니버스 | 다음 타자는?
구교환과 신현빈은 연상호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이다. 구교환은 영화 '반도'(2020년)으로 처음 연을 맺은 뒤, '괴이', '기생수: 더 그레이'를 거쳐 '군체'까지.
신현빈은 '괴이'(2022년)를 시작으로 '계시록', '얼굴', 그리고 이번에 4편째다. 구교환은 그 관계를 운동팀에 비유했다.
그는 "야구라면 '이번 선발은 왼손 타자인 네가 나가', 농구라면, '상대가 공격에 강한 팀이니까 수비가 좋은 교환이가 나가라' 이런 느낌이다. 적재적소에 로테이션으로 쓰이는 플레이어"라고 설명했다.
"그 쾌감이 있죠. '오늘은 내가 공격하는 날이구나' 하는. 그리고 저는 질문하지 않아요. 물어봐서 뭐해요. 할 수 있는 걸 주시니까 할 수 있나 보다 하는 거죠. 저는 그저 나의 어떤 무기를 꺼낼까, 그 생각만 해요." (구교환)
신현빈은 매번 달라지는 결을 이야기 했다. 그는 "묘하게 같은 결은 안 주시는 것 같다. 크리처 작품은 저에게 처음 주셨다. 익숙한 사람들과 새로운 걸 만드는 힘이 있더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칸의 경험이 이들에게 어떻게 남게 될까. 구교환은 "저희 영화를 보기 위해 칸에 오셔서 티켓팅하고 줄을 서주시고 함께 호응하며 관람한 이 경험이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이호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