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Oi, Brasil!"
엔믹스가 포르투갈어로 인사를 건넸다. K팝 그룹 최초로 브라질 상파울루 카니발 무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200만 명의 관중은 뜨거운 함성으로 화답했다.
다음은 칠레였다. 60여 년의 역사의 '비냐델 마르 페스티벌'에서 또 한 번 K팝 최초 타이틀을 달았다. 샤키라, 리키 마틴, 루이스 미겔이 섰던 무대에 올랐다.
브라질과 남미에서 이어진 이 장면들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K팝은 왜 지금, 이곳에서 폭발하고 있는가.

◆ 2년간 빌드업
시작은 지난 2024년이다. 엔믹스는 디지털 싱글 '쏘냐르'(Soñar) 스페인어 버전을 선보이며 남미 시장에 시그널을 보냈다. 멤버들은 낯선 언어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현지 팬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어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라틴 뮤직 위크'에 참여했다. 지난해 8월에는 한 번 더 거리를 좁혔다. 브라질 대표 아티스트 파블로 비타와 협업한 '메쉬'(MEXE)를 발표했다.
파블로 비타는 브라질 팝을 대표하는 드래그 퀸 아티스트다. 엔믹스의 협업 의사를 접한 뒤, 직접 JYP엔터테인먼트에 연락하며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메쉬'는 K팝과 브라질 펑크 비트가 결합된 곡이다.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함께 사용했다. 엔믹스의 음악적 정체성은 이미 남미 시장에 최적화돼 있었다.
데뷔 때부터 2가지 이상의 장르를 한 곡에 녹이는 '믹스팝'을 내세웠다. 힙합과 재즈, 라틴과 일렉트로닉 등 상반된 장르를 결합했다. 이는 리듬과 에너지를 중시하는 라틴 팬덤의 취향을 저격했다.

◆ 무대로 증명했다
현지 팬들과의 접점도 단계적으로 넓혔다. 엔믹스는 지난해 팬콘서트 투어 '엔믹스 체인지 업 : 믹스 랩'로 현지 팬들과 만났다. 멕시코 시티, 산티아고, 상파울루 3개 도시를 찾았다.
같은 해 '비냐 델 마르 페스티벌'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객석에서 관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 아티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라이브 퍼포먼스도 남미 인기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비냐 델 마르'는 라이브 실력이 부족하면 야유가 쏟아지는 무대로 유명하다. 엔믹스는 15곡을 전곡 라이브로 소화화며 흔들림 없는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 내내 현지어로 소통을 이어갔다.
스페인어 버전 '쏘냐르', "Vamos amigos!"(가보자 친구들)를 외치는 '다이스', 라틴 팝 사운드에 스페인어 가사를 더한 '리코'까지. 언어와 사운드를 동시에 공략하며 현지 팬들을 저격했다.
'상파울루 카니발'에선 파블로 비타와의 합동 무대까지 선보였다. 파블로 비타와 함께한 새로운 협업곡 '틱 틱'(TIC TIC) 역시 중독적인 후렴구가 돋보이는 믹스 팝으로 시너지를 이어갔다.

◆ 공략 아닌 확장
엔믹스의 남미 행보는 분명한 준비 과정을 거쳤지만, 이를 단순한 시장 공략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김도헌 평론가는 '디스패치'에 "새로운 시장 진출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수요를 뒤늦게 마주한 결과"라고 짚었다.
실제 남미는 오래전부터 K팝을 지탱해온 핵심 팬덤이다. 다만, 그동안 산업이 영미권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이들 시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최근 변화는 타깃 변경이 아닌 시야 확장에 가깝다. 특정 지역을 겨냥하기보다, 각 지역의 수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으로 K팝이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이제는 굳이 영미권을 기준으로 음악을 만들 필요가 없는 시대"라며 "K팝 이미 전 세계가 소비하는 장르가 됐다"고 분석했다.
결국 엔믹스의 행보는 남미 특화 전략이라기보다, 글로벌 음악 시장 구조 변화 속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 가깝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노렸는가가 아닌 '어디와 연결되었는가'다.

◆ 글로벌 믹스의 힘
그렇다면 왜 하필 남미일까. 단순히 팬덤이 뜨겁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시장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지난 18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음악 시장이다.
수익은 전년 대비 17.1% 증가하며 16년 연속 성장세를 기록했다. 또한 이 시장은 미국으로 연결된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약 6,520만 명으로 전체의 19.5%를 차지한다.
이들은 음악과 미디어 소비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레게톤이 팝의 주류 문법이 된 것도 이 인구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배드 버니와 카롤 G는 스페인어 중심 음악으로도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로살리아 역시 영어에 의존하지 않는 음악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라틴 시장에서 접점을 만들면, 남미와 미국 히스패닉 시장을 동시에 열 수 있는 구조다. 하이브가 라틴 현지 그룹 결성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엔믹스가 파블로 비타르와 2번째 협업을 이어가는 것도 이 흐름에 있다.
결국 엔믹스의 행보는 한 그룹의 성과를 넘어, K팝이 글로벌 음악 시장과 연결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출처=JYP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