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혜진기자] "1,000만이 될 리도 없지만, 만약에 된다면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성형할 겁니다. 다른 나라로 귀화할까도 생각 중이에요. 하하하"(장항준 감독)
행복한 상상이었던 그의 공약은, 현실이 됐다. 아니, 그 이상을 기록 중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지난 11일 기준 1,200만 고지를 점령했다.
1,200만을 모은 힘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힘, 인물들의 서사, 비극의 역사가 밀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처절하고도 기품 있는 연기가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그 뒤에는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의 기획이 있었다. 민초 사극에 매료돼 7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발전시켰고, 거절의 거절 끝에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를 만나 '왕사남'의 시작과 다음을 들었다.
◆ 왕사남의 시작
'왕사남'의 시작은 꽤 오래됐다. 황성구 작가와 지난 2019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2020년에 초고가 나왔다. 하지만 회사의 최종 판단은 '중단하라'였다.
임 대표는 "황 작가님이 그럼에도 저랑 이 작품을 하겠다고 믿고 기다려주셨다"며 "그래서 제가 그때 회사 안이든 밖이든 5년 안에 반드시 (영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임 대표는 결국 2023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이후 황 작가와 다시 시나리오를 다듬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2가지였다.
첫 번째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약속과 책임이었다. "진짜 의미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다"며 "2번째는 기획자로서 이 사극이 새로웠다. 궁궐의 정치 암투가 아닌, 민초 사극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사극에서는 없던 이야기라 생각했죠. 잘된 사극에서 (이야기를) 더 확장할 수 있다고 봤어요. 사극은 타겟이 한정되어있다는 생각도 깨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단종과 엄흥도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자체의 힘이 컸죠."(임은정 대표)
사실 처음엔 단종이 아닌, 엄흥도를 더 주목했다. "영화 '타인의 삶'을 좋아한다. 역사에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경찰 이야기다. 엄흥도도 그런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그 책임의 주체를 생각하게 됐다. "단종은 어른들이 지켜줘야 했던 어린 왕이자 미래였고, 우리가 지키지 못한 가치관 등에 대해 더 풍부하게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다"고 전했다.

◆ 이야기의 확장
하지만 거절의 연속이었다. 장항준 감독마저 연출을 사양했었다. 그도 그럴 게, 장 감독은 '리바운드' 이후 성공이 절실했다. 게다가 '왕사남'은 사극에 비극. 환영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 대표는 끝까지 장 감독에 '베팅'했다. 장 감독의 첫 사극이다. 그는 투자팀에 있던 시절부터, '각본가' 장항준을 눈여겨봤다. 무엇보다, 실존 인물을 대하는 그의 마음과 방식이 좋았다는 것.
두 사람은 숙고를 거쳐 캐릭터들을 확장해 나갔다. 유해진이 큰 기반이 되어줬다. "선배가 중심을 잡아주시니 신선한 배우를 도전해 볼 수 있겠더라"고 말했다.
단종 역에는 박지훈을 추천했다. "이미지와 눈빛이 너무 중요한 배역이었다. '약한영웅' 제작진에게 칭찬을 많이 들어서 성실한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지훈과 전미도를 만난 뒤 더 큰 확신을 가졌다. "(장 감독님이)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한 마음, 작품에 대한 자세 등을 보고 꼭 같이 만들고 싶어 하셨다. 열정을 품고 시나리오를 수정하셨다"고 설명했다.
엄흥도는 초반에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한다. 단종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제작진이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고자 한 부분이다.
단종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엄흥도가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죽음을 도와주지만, 그것이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며 "그 은유와 상징을 관객들이 잘 알아주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술 시사에도 영월 엄씨 종친회를 모셨어요. 코믹함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영화의 의도와 중심 아이디어와 감정이 엄흥도를 기리기도 하거든요. 그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 1,200만의 기적
결과는 그의 예상을 뒤엎었다. 처음 제작한 영화로 1,2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영화계는 얼어붙어 있었고, 젊은 층 유입이 어려운 사극 영화였다. 개봉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조마조마하다.
그는 장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포용력이 정말 좋으시다. 최초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배우든 촬영감독이든 스태프든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잘 수용해 주신다. 유연한 창작자"라고 칭찬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로 오랜만에 1,000만을 달성한 것에 기뻐했다. "'다음에도 천만 영화가 나올 수 있어'라는 모두의 희망이 된 것 같아 그 부분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웃었다.
'왕사남'의 제작비는 약 100억 원으로 알려진다. 사극 영화를 만들기에는 부족한 예산이다. 그도 그럴 게, 주요 배경인 광천골을 직접 지었다.
당대 기와 공법을 이용해 황토로 기왓장을 만들고, 너와집을 세팅했다. 의상, 미술 등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 탓일까.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임 대표는 "촬영팀, 미술팀, 의상팀, 부서별로 최소한의 욕심이라는 게 있을 텐데 다 못 해 드렸다"며 "어려운 기회를 얻은 만큼,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누리자는 것에 뜻을 모아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논란(?)을 낳았던 호랑이 CG는 다시 작업한다. "CG팀이 아쉬울 거 같았다. 관객이 만들어준 기회라 생각한다"며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교체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 다음 세대의 희망
촬영 장소인 강원도 영월은 요즘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 대비 관광객이 7배 이상 급증했다. 극장가에 이어, 지역 경제까지 살리고 있다.
그는 "영월에서 받은 게 많아서 흥하길 바랐다.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었기 때문"이라며 "관객들이 함께 즐겨주시는 것 같아 '영화의 좋은 영향력이 이런 거였지'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 성지순례도 뜨겁다. 단종이 잠든 영월장릉을 향해 '단종 오빠'를 외치고, 한명회 묘와 세조의 능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임 대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한다는 걸 느낀다"며 "영화가 직접 가서 즐기는 문화(전시회 등)와 경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종합적으로 문화를 누리는데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왕사남' 이후 작품도 시대물이다. 황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이 연출한다. "주제가 확실하고 장르적인 재미가 있는 사극 액션물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죄 많은 소녀'를 연출한 김의석 감독과 함께 장르물도 선보일 예정이다. "경성을 배경으로, 열차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를 보탰다. "'왕사남'의 주제는 결국 다정함이라 생각한다. 미래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는) 미래 세대가 나올 수 있는 산업이어야 합니다. 새 창작자, 새 배우가 기회를 얻고 도전해야 나아갈 수 있어요. '왕사남'이 그런 점에서 일조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더 많이 나올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진제공=(주)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