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착각 아닐까요?"
데뷔 15년 차에 '대세'로 떠올랐다. 1분 남짓한 '청룡영화상' 듀엣 무대. 박정민이 '화사의 남자'로 등장한 순간, '박정민 앓이'가 시작됐다.
말 그대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다. 국내 음원 차트도, 유튜브 알고리즘도 온통 '굿 굿바이'(Good Goodbye) 그리고 박정민이었다.
박정민은 정작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인기를) 의도한 적이 없다. 그냥 (인기 있다는) 착각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따금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이상한 선물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냥 그런 거겠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있어요. (웃음)"
'디스패치'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박정민을 만났다. '멜로 기대주'의 눈빛을 감상하고, 작품을 대하는 진심을 들었다.

◆ 외피는 액션, 골자는 멜로
그가 주연한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외피는 액션 장르이지만, 싸움보단 멜로에 방점을 뒀다.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분)과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분)의 로맨스가 중심 서사로 작용한다.
박정민은 "(멜로 요소가 있는 건) 촬영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며 "한 인간이 감정적으로 무너지면서 생기는 선택과 그로 인한 비극만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고문 신을 찍는데 조명이나 톤 앤 매너가 그냥 액션이 아니더라고요? 선화를 향한 마음이 엄청 크지 않으면 (결말 같은) 선택 못 하니까 내 안에서 (멜로 무드를) 만들어 가려고 했죠."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선화를 향한 로맨스 감정이) 직접적이지 않게 튀어나와야 했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
"류승완 감독도 멜로 영화 감독이 아니잖아요. (많이 걱정됐는지) 조인성에게 '와 달라'고 SOS를 치셨어요. (조인성은) 저녁 촬영 일정도 있었는데……."

◆ 첫 멜로 위한 고민들
믿을 건 연습뿐이었다. 일례로, 박건이 북한 식당 '아리랑'에서 채선화를 우연히 맞닥뜨리는 장면.
관객에겐 이들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고조시키는 신이기도 하다. 박정민은 찰나의 순간, 박건의 온갖 감정들을 넌지시 꺼내야 했다.
박정민은 "진짜 어려웠다"면서 "자칫 '저 여자 예쁜데?'로 보일 수도 있지 않나. (두 사람 관계를 암시하는 적정한) 선을 지켜야 했다"고 설명했다.
"선화를 그토록 찾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얼마나 심장이 덜컹했겠어요. (그래도 요원이니)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으면 했죠."
두 사람이 독대하는 장면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박건은 어렵사리 다시 만난 채선화를 향해 "잘 지냈느냐"고 말을 건넨다.
"첫 대사를 어떤 식으로 뱉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잘 지냈소?'였는데 편하게 했죠. 오히려 (어렵게 꺼내는 말 같아서) 더 가슴 아픈 느낌이 나오더라고요."

◆ 캐릭터의 디테일
박건이라는 캐릭터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먼저, 다이어트를 실천했다.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 위해 몸무게를 20kg 가까이 감량했다.
운동 역시 병행했다. 라트비아 로케이션 촬영 내내 뛰고 또 뛰었다. "힘들지만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을 만들어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잘 찍고 싶어도 배우가 이상한 모습이면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다이어트로) 고생한 티가 나니까 스태프들도 신나서 촬영해 주는 게 느껴졌어요. 기분 좋았죠."
외양뿐 아니다. 인물에 관한 디테일까지 챙겼다. 어디서든 사방을 경계하는 남자,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보위성 간부를 상상했다.
박정민은 "박건은 계속 감시당하는 사람일 것"이라며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인물이라고 해석했다"고 첨언했다.
"박건에겐 채선화라는 서브 미션도 있으니까요. 좀 더 예민할 거라고 봤어요. (어디서든) 사주경계를 하는데 억압돼 있고 원리 원칙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 류승완표 액션의 과정
류승완표 액션 또한 허투루하지 않았다. 박정민은 첫 등장인 어둠 속 다트 신부터 최후의 격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류승완 감독이 (나한테) 더 신경 써주셨던 것 같다. 직접 액션 시범을 보이는 동영상을 계속 보내셨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감독님이 '나랑 해보자' 하면서 손을 꺾으시고…. (웃음) 숙소에서도, 현장에서도 액션적 요소들을 몸에 붙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특히 후반부 총격신은 '휴민트'의 관전 포인트다. 극적으로 치닫는 격발 속 두 사람이 주고받는 밀도 높은 감정선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류승완 감독의 의도를 그대로 따랐다. "선화를 계속 바라봐 달라고 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고 했다.
"(과거에) 실수를 저질렀던, (여전히) 사랑하는 전 연인을 죽기 전까지 눈에 담고 싶어 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 꼭 해야 하는, 이야기
박정민에겐 당분간 차기작이 없다. 지난 한 해 모든 작품 출연을 고사한 덕분이다. 그는 당시 '연기 패턴의 고착화를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자신의 출판사 '무제' 운영에 집중한 것.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통해 소설 '첫 여름, 완주'를 발간했다.
그렇다고 연기 욕심을 내려놓은 건 아니다. 멜로 장르도 오케이. "좋은 작품이 있다면 안 할 이유는 없다. 공감되고 절절하다 싶으면 당연히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만 그만의 기준을 정해뒀다. "예전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을 선택했다면 요즘에는 해볼 만한,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반갑다"고 밝혔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2025)이 대표적이다.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제안받은 시나리오도 그렇다. 박정민이 하면 만들 수 있다 하는 작품들을 선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하면서 연기 도움도 많이 받아요. 시야가 넓어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졌죠. 꼭 세상에 내놨으면 하는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진제공=샘컴퍼니,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