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영화 '콘크리트 마켓'(감독 홍기원)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와 세계관을 같이 한다. 같은 설정을 다른 결로 풀어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인간 군상의 어두운 민낯을 파고들었다면, '콘크리트 마켓'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또 다른 면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아파트를 거래 장소로 탈바꿈시킨 것.
성공한 프렌차이즈를 변주하고 뻗어나간다는 점 자체는 분명 흥미롭다. 다만, 완성된 인상은 '아포칼립스의 순한맛'에 가깝다.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콘크리트 마켓'은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곳에 무엇이든 사고 파는 '황궁 마켓'이 들어선다.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업종이 층별로 운영된다. 실제 마켓을 연상케 한다. 생존이 최우선이 된 이곳의 화폐는, 돈이 아닌 통조림이다.
재난 속에서도 판을 움직이는 이는 따로 있다. 바로 10대 소녀 최희로(이재인 분).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읽고, 부족한 자원을 흥정하며 '황궁 마켓'의 실질적 중심축이 된다.
재난 장르 특유의 긴장감은 가져가면서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세계관의 확장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특히 배우들은 몰입감 있는 연기로 극을 끌고 갔다.

희로의 목적은 거래가 아니다. 친구의 죽음의 진실에 닿는 것, 그리고 친구의 동생을 지키는 것.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대범하게 시장을 흔든다.
'황궁마켓'의 절대 권력자 박상용(정만식 분)과 그의 오른팔 박철민(유수빈 분) 앞에서도 기 죽는 법이 없다. 문제는 그 지점이 서사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역할이 희로에게 몰리며, 악역은 힘이 빠지며 서사적 전투력 역시 약화됐다. 악역은 위협 대신 장치로 몰락했고, 위기 상황은 예상 가능한 선에서 머물렀다.
박상용과 박철민의 죽음은 모두가 예상했던 방향이었다. 그러나 악이 허무한 죽음으로 끝을 내리며 전체적 톤은 안온함으로 기울었다.
홍경(김태진 역)의 하드캐리를 기대했다면, 이번에는 양보하는 편이 낫다. 한발 물러서 그의 연기를 (잠시) 확인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이 영화는 4년 전에 촬영한 작품. 홍경은 당시 라이징 스타였다. 극의 중심보다는 흐름을 보완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콘크리트 마겟'은 원래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영화 포맷을 택했다. 400분 상당의 촬영 분량을 대폭 덜어냈지만, 그에 따른 어색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장면 사이마다 핵심 키워드를 담은 타이틀 카드를 배치해 서사의 리듬을 조절했다. 관객의 몰입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은 유효하게 작동했다.
'콘크리트 마켓'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다. 기발한 세계관 위에 새로운 결, 새로운 캐릭터를 재조합하며 또 다른 무한 확장 가능성을 던졌다.
성공한 세계관의 외연을 넓힌 건 흥미롭지만, 아포칼립스 본연의 맛은 덜어낸 작품 같다. 새로운 가능성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콘크리트 마켓'은 오는 3일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한다.
"확장은 성공했지만, 맛은 순하다"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