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유하늘기자] "배우라는 건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도전입니다. 연구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어떻게 창조가 되겠습니까."
이순재 선생의 평생을 관통하던 말이다. 70년 가까운 시간을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끝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마지막 작품까지 신인의 자세로 임했다. 첫 무대에 섰던 20대 청년의 열정은, 90세가 넘은 노년까지 단 한 번도 식지 않았다.
다음은, 이순재의 연기 발자취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는 최고 시청률 64.9%로 역대 드라마 2위에 올랐다. 이순재는 '대발이 아버지'로 연기 인생의 첫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드라마 '동의보감'(1991), '허준'(1999), '상도'(2001), '장희빈'(2002), '야인시대'(2002), '이산'(2007) 등을 통해 사극·시대극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는 절정에서 머물지 않았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거침없이 하이킥'(2006)과 '지붕 뚫고 하이킥'(2009)으로 과감하게 코믹 연기에 뛰어들었다.
이순재는 당시 "처음엔 체면 때문에 '야동순재' 캐릭터를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주더라.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후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 '대물'(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로맨틱 헤븐'(2011) 등에서는 다시 깊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과 예능 '꽃보다 할배'(2013), 드라마 '꽃할배 수사대'(2014)에서도 활약했다. 나이를 잊은 열정과 체력으로 '직진순재', '순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순재는 당시 "나이 먹었다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는 거다. 반면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된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쭉 가야 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머문 곳은 무대였다. 그는 생전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극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순재는 '장수상회'(2016), '앙리 할아버지와 나'(2017), '리어왕'(2021) 등에서 변함없는 존재감을 증명했다. 특히 '리어왕'에서는 약 200분의 공연을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완주하며 극찬을 받았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연기자였다. 지난해 드라마 '개소리',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했다. '2024 KBS 연기대상'에서는 역대 최고령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늘 준비했다.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졌다.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순재는 '2024 백상예술대상'에서도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다. 몸살로 누워있다가도 '레디, 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고 말했다.
초심을 놓지 않았다. "평생 했는데도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이 나오면 참고한다"고 털어놨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당시에도 "연기는 쉽지 않다. 지금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있다"며 "예술은 완성이 없다. 완성이 없다는 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현장에 항상 일찍 가요. 들어가기 직전까지 대본을 봅니다. 나를 보러 온 관객들을 위한 책임이고 의무거든요."
고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배우로 살고자 했다. "가장 행복한 건 공연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무대에서 쓰러져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2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는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 증세를 겪었다. 공연 중이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중도하차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차려진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 20분 엄수된다. 장지는 경기 이천시 에덴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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