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1980년대 여배우를 씹어삼켰다"
배우 이하늬의 열연에 쏟아지는 찬사다.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감독 이해영)의 정희란 역으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다. 진짜 1980년대 톱스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장미희처럼 우아한 말투는 이하늬와 찰떡이었다. 이하늬가 화사한 미소로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말하는 순간, 그가 왜 이 작품의 정희란인지 실감하게 됐다.
분노를 터뜨릴 땐 과격했고, 욕설도 시원했다. 신성영화사 사장 구중호(진선규 분)와의 육탄전도 쫄깃했다. 신주애(방효린 분)와 쌓아가는 여성 투쟁의 서사는 먹먹한 감동으로 남았다.
'디스패치'가 최근 온라인 인터뷰로 이하늬를 만났다. 당시 그는 임신 막달로, 출산을 앞둬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 그럼에도 '애마', 그리고 연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애마가 2025년에 나온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뜻깊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여배우로서, 세상이 많이 변한 걸 느껴요. 부당함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 "우리가 아는 '애마'가 아니다"
대중이 아는 '애마부인'은, 에로영화다. 육감적인 여인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장면이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2025년판 '애마'도, 19금이다. 타이틀만 봐선 도전하기 쉽지 않았을 법하다.
이하늬는 "저도 처음 감독님께서 '애마'라고 이야기하셨을 때, 감히 덥석 '제가 하겠다'는 말은 안 나왔다. 일단 '대본을 주시면 보겠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그는 '애마'를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애마'는 야한 게 중요한 작품이 아니었다. 그보다 '야함'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의 아픔, 그 시대 영화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게 포인트였다.
"애마부인을 2025년에 어떻게 이렇게 리메이크했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습니다. 자극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어요. 무해하고, 건강했고, 캐주얼했죠."
베드신 역시, ('애마' 식 표현을 빌자면) '꼴리게' 만들지 않았다. "앵글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며 "여성을 소비적으로 보여지게 베드신을 사용했다면, 구주의 전적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 세상은 달라졌으나 여전히 여배우들은 접대에 불려갔다. 노련한 제작자의 계약에 묶였고, 원치 않는 노출을 해야 했으며,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애마'는 한 마디로, 그런 여배우들의 투쟁기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어디서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을 침묵하고 끝내지 않는 거죠. 다소 판타지긴 하지만, 희란도 과감한 선택을 하잖아요? '애마'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 "배우 정희란이 되는 법"
이하늬의 비주얼과 말투가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1980년대 여배우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우아한 자태와 표정, 그 시대 특유의 과장된 말투 등이 특징이다.
"희란은 197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여배우로서 1980년대를 맞이하는 인물이에요. 집 밖에서도 항상 꼿꼿하고 우아한 자태를 보여줘요. 정말 '여배우'라고 불릴 만한 애티튜드를 가진 사람이죠."
이하늬는 "예전 제 몸에 없었던 호흡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전엔 워낙 터프한 역을 많이 했다"면서 "희란은 진짜 고양이처럼 하려 했다. 예를 들면, 고양이가 걸어가며 탁 낚아채는 듯한 걸음걸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록시'를 했었는데, 당시 모티브로 잡았던 게 고양이의 걸음이었어요. 그걸 연습하고, 몸에 탑재하려 노력했어요.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살짝 포인트를 주는 거죠. 많이 상상하고 연습했어요."
그는 "1980년대 작품들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많이 봤다"며 "연기 톤, 인터뷰 말투, 서울 사투리라 불리는 것들을 어느 정도로 녹여내야 할지 등도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다"고 밝혔다.
여러 대배우들의 영상도 무한 반복했다. "장미희 선배님은 당대 최고의 배우였다. (당연히) 찾아봤다"며 "그 뿐 아니라 여러 선배님들의 톤을 참고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시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찾아보니, 그 때의 제스처와 말투, 의상 등이 하나도 촌스럽지 않았어요. 그저 우아하고 멋있더라고요. 장미희 선배님은 지금 타입슬립하신다고 해도 글로벌 슈퍼스타가 되실 것 같아요."
◆ "진선규, 그리고 방효린"
'애마'의 안타고니스트는 구중호다. 노출을 거부하는 희란에게, 본격 성애영화 '애마부인'의 주연을 강요한다. 은밀한 성접대도 마찬가지. 희란의 반응은? 쌍욕, 주먹질, 트로피 던지기, 엽총 쏘기….
"엽총 액션과 수영장 신은 3일 밤을 새며 찍었어요. 크리스마스 아침에 끝났던 기억이 나요. 그 때 진선규 배우님이 B형 독감에 걸리셨을 땐데, 아픈 와중에도 열연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저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죠."
이하늬와 진선규, 두 배우의 케미는 명불허전이었다. 둘은 이미 영화 '극한직업'(2019년)에서 연기 호흡을 확인했다. 이하늬는 "너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고 극찬했다.
그는 "진선규가 캐스팅됐다는 것만으로도 제 삶의 30% 정도의 복지가, 빛이 채워졌다"며 "뭘 해도 서로 받아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낚시할 때 찌를 던졌다가 (찌가) 흔들리는 딱 그 느낌이었다"며 감탄했다.
신인 여배우 주애와는 묘한 관계다. 희란은 처음엔 주애에게 일명 '쌍X' 짓을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선배로서 길을 닦아주려 한다. 4회, 연회장 신에서 성상납을 막아주는 장면이 전환점이다.
"희란은 점점 주애에게서 비슷한 부분을 찾아가요. 자신이 처음 연기했을 때의 감정을 주애가 느꼈을 테니까요. 주애를 보며, 그 시절의 인간이자 여자배우로서 동질감과 연민을 가져요. 그러면서 연대하게 되죠."
방효린과의 호흡도 최상이었다. "배우들은 합이 '탕' 맞았을 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 정말 연기에 진심이구나' 하는 순간이 생긴다. 서로가 혼연일체되는 그 느낌을, 효린 씨와도 주고 받으며 연기했다"고 했다.
◆ "배우 이하늬로 사는 법"
이하늬는 워킹맘이다. 이미 첫째 아이를 키우고 있고, 인터뷰 당시 둘째 출산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애마' 공개(8월 22일) 이후 이틀 만에 출산의 기쁨을 만끽했다.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어떨까. "여배우들이 아이 낳았다고 은퇴하는 시대는 지나긴 했다"면서도 "그래도 전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다"고 말했다.
"아이라는 소중한 걸 두고 촬영장에 가야 하는 입장이 되잖아요. 이 소중한 존재를 놓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으면 하고, 그런 시간을 온전히 쓰고 싶죠. 그 때부턴 전투 모드인 거에요."
그는 "반대로, 촬영장에 나가면 진짜 치열하게 몰두하게 된다. 나가 있는 시간 동안 몸이 부수어져라 해 보리라는 생각이다"고 미소지었다. '애마'에 쏟은 순도 100%의 열정도, 같은 맥락이었다.
"와! 효린 씨도 그렇고, 정말 요즘 후배님들 너무 연기 잘 해요. 제가 김남길·진선규 배우님과 단톡이 있거든요? '트리거' 보면서도 '우리 큰일났다. 다 이렇게 잘 하면, 우리 설 곳이 없다' 얘기했어요."
이하늬는 "그래도 제가 진짜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냐"며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고백했다.
"저는 취미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직 연기보다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사실 전, 연기가 너무 좋거든요. 낚시에 미쳐사는 분들처럼, 찌가 흔들릴 때의 맛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