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수연기자] "오직, 눈빛으로만 연기했습니다."(류승룡)
디즈니+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없었다. 건달로 변신한 정윤호처럼, 인물 한 명 한 명 허투루 쓰지 않았다.
반면 오관석은 주인공이지만 튈 만한 장치가 없었다. 사투리를 쓰지도, 물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말수가 적고 행동도 신중하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류승룡이 연기하니, 연기가 됐다. 그는 표정 하나, 눈빛 하나로 차별화를 만들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때면, 여지없이 나타나 극의 중심을 붙들었다.
류승룡은 '파인' 촬영을 끝내며, 강한 확신을 가졌다. 대작 탄생을 예감한 것. "배우로서 촬영을 마치고 감이 왔다. '이건 잘 되겠구나' 싶더라"고 웃었다.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류승룡이 출연하면 시즌2까지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저도 그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디스패치'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류승룡을 만났다. 그는 어떻게 오관석을 만들었을까. 눈빛 하나만으로 캐릭터를 완성한 비결을 들어봤다.
◆ 눈빛은, 류승룡의 필살기
오관석은 조카 오희동(양세종 분)과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인물이다. 그러다 우연히 바다 속 보물을 도굴하는 데 가담하게 된다. 도굴단의 리더로 활약한다.
류승룡은 '파인'의 욕망, 그 자체에 매료됐다. "(도굴단은) 속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욕망을 꺼내려 한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다. 그 허무함 자체가 작품의 매력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관석을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다른 촌뜨기들과 달리 관석은 설정이 다소 밋밋했다. "옆에서는 펄떡펄떡 뛰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승룡은 회차가 쌓일수록 서서히 악인의 얼굴을 드러냈다. 조용히, 그러나 거침없이 폭주했다. 인간미를 하나 둘 내려놓더니,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도 가차 없었다.
그를 완성한 건 눈빛이었다.
"관석을 완성하는 데 있어, 눈빛과 리액션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수(手)를 읽어내는 걸 눈빛으로 표현하려 했죠. 관객이 눈빛만 보고도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오관석은, 생계형 악인
'파인'의 촌뜨기들은 각자의 욕망을 쫓는다. 돈에 눈이 멀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움직인다. 한데, 그렇다고 큰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소박하지만 처절한 욕망을 보여준다.
관석도 그랬다. 작은 욕망으로 출발하지만, 끝내 무너지고 만다. "관석은 상징적인 캐릭터다. 욕망이 복리처럼 겹겹이 쌓이는 인물"이라며 "나중에는 그 욕망과 함께 추락한다"고 설명했다.
류승룡은 관석을 '생계형 악인'으로 정의했다. 관석은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타인의 죽음을 방관하고, 때론 이용한다. "옳게 사는 것은, 돈을 벌고 나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촌뜨기들은 누구나 될 수 있는, 어쩌면 (삶에) 서툰 인간들이었을 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시청자 입장에서도, 관석이나 다른 캐릭터들이 절대 악이나 사이코패스로 느껴지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그럼에도, 관석은 악인이 맞다"며 "당시에는 뭐든 돈이면 가능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처음에는 가족의 생계를 지키려던 마음이 돈을 좇으며 점점 변질된 것"이라 짚었다.
◆ 오관석은, 살아남았다
'파인' 최종회, 보물을 실은 트럭이 절벽으로 추락한다. 오관석의 사망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쿠키 영상에서 컴백한다. 네티즌들은 "쌍둥이 형 아니냐"며 상상에 상상을 거듭했다.
류승룡은 "오관석은 살아남은 게 맞다"고 답했다. "그의 최후는 감독님과 충분히 논의한 후 추가로 찍었다.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이었고, 생명력이 길어서 떨어졌을 때 튀어나왔다는 설정이었다"고 알렸다.
결말에 대한 해석도 덧붙였다. "악인은 죽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관석의 욕망은 '가족을 위해 뭐든 한다'는 데 있다. 그 욕망을 해결하지 못하는 게 그의 형벌"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가 살아남아도 가족이 모두 죽는다면, 그보다 더 큰 형벌이 있을까요. 반대로 가족이 살았다면, 시즌2에서는 관석이 더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즌2에 대한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음 시즌을 기획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반응이 좋아서 시즌2가 제작된다면 배우와 제작진에게 정말 큰 영광일 것"이라 말했다.
이어 "일본을 배경으로 도굴 이야기가 펼쳐지면, 시청자들이 우리를 더 응원하지 않을까. 면죄부가 되지 않겠나'고 배우들과 농담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 '파인', 그 자체가 보물
류승룡은 '파인' 촬영 현장을 보물에 비유했다. "내가 찾은 보물이라면, 이 모든 과정들이다. 촬영 과정이 진심으로 행복했다.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더라. 그래서 더욱 누리고, 느끼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배우들과의 교감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렇게까지 배우들과 정이 들 줄은 몰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고, 같은 배를 탔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미소 지었다.
동료들의 연기를 보는 과정도 즐거웠다. "원석이 보석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좋은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를 라이브로 보는 건 호사였다. 잠깐 등장하는 배우들까지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고 극찬했다.
강윤성 감독에 대한 존경심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은 '기승전 강윤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같은 환경이 주어졌더라도, 강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 퀄리티, 이 정도 팀워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시청자들이 '시즌2 언제 나오냐, 벌써 끝났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는 말이죠. 정말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류승룡은 "내가 보물을 찾은 것처럼, 시청자들도 이 작품에서 인생의 보물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류승룡의 차기작은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잘 살아보고 싶은 중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또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