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요즘 내가 보는 작품마다 박윤호 계속 나온다." (네티즌A)
드라마 '스터디그룹',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미지의 서울', 그리고 넷플릭스 '트리거' 등. 올해 흥행한 작품마다 박윤호가 있었다.
겨우 데뷔 2년 차이지만, 벌써 낯익다. 살벌한 악역부터 폭력 속에서 살아내려는 절박함까지.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품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는 작품마다 그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올해 확신의 슈퍼 루키다. '트리거'에서 중심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또 한 번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아직 체감이 안 되는 것 같다. 오디션 보고 붙은 것들이 타이밍 좋게 차례차례 나오게 됐다"며 "잊히지 않고 얼굴을 확실히 보여줄 기회가 된 것 같아 좋다"고 털어놨다.
'디스패치'가 최근 박윤호를 만났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 "같은 교복, 다른 얼굴"
박윤호의 첫 이미지는 날카로웠다. 매서운 눈매에 반항아 기질이 느껴지는 이미지. 티빙 '스터디그룹'의 '이현우'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그럴 것.
현우는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살벌한 악역이다. 그러나 '트리거'에선 반전됐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위태로운 고등학생 '박규진' 역을 맡았다.
또 다시 교복을 입었어도, 또 다른 얼굴을 꺼냈다. 매서운 인상을 상처 입은 얼굴로 치환했다. 무기력하지만, 절박한 내면을 안정적으로 풀어냈다.
사실 규진은 오디션을 보면서 완성해 나갔다. 그는 "오디션만 5번 봤다. 볼 때마다 규진과 싱크로율 퍼센테이지를 100%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이번엔 60% 비슷해졌다', 그 다음에 갔을 땐 '80%까지 왔다'고 하시면서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덕분에 촬영 들어갈 때부터 많이 준비된 상태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연달아 교복을 입어야 했기에, 외적인 변화를 주려 했다. 안경을 쓴 너드한 이미지로 규진을 만들었다. 캐릭터를 다듬는 과정에서 내적 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감독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 많이 한 부분이 엄마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피해자의 이미지보다는, 엄마와의 관계에 무게를 실었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관계의 소중함이 클수록 규진이 하는 선택이나 말들에 무게가 실릴 것 같았습니다. 안경이나 다른 외적 장치가 아닌, 말에 무게를 줘서 다르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 규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트리거'는 그의 짧은 연기 인생에 최대의 난제였다. 규진에게 사제 총이 갈 것이냐, 그가 결국은 방아쇠를 당길 것이냐, 아닐 것이냐. 그 모호함의 긴장감을 쥐고 가야 하는 인물이다.
박윤호는 "총이라는 걸 잡았을 때의 마음이 상상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그걸 쏘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오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해결 방법은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그는 "'진짜 총이라고 상상했다. 이게 발사된다면 내 앞에서 끔찍하게 죽을 것이고, 잘 못 나가면 어떻게 될 거고. 그 뒤 상상을 디테일하게 상상하려 했다"고 밝혔다.
규진의 지친 얼굴은 문백(김영광 분)을 만나면서 달라진다. 문백은 규진 앞에서 총 쏘는 걸 보여준다. 그때부터 규진의 눈빛이 반짝이며 돌변한다.
"규진은 문백의 모습이 나쁜 애들을 물리치는 정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규진에게 총이 배달되고, 그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습니다."
함께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 서영동(손보승 분)은 총을 쐈다. 하지만 규진은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동기는 충분했지만, 선택은 달랐다.
박윤호는 "저는 안 쏘는 게 더 좋았다.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며 "규진의 선택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 현장에서 배웠다
'트리거'를 끌어가는 건, 김남길과 김영광이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실질적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중 규진의 역할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박윤호는 "부담이 컸다. 이렇게 많은 사연과 비중을 가진 역할은 처음이었다. 너무 잘하고 싶어서 긴장도 많이 했다.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특히 이도(김남길 분)가 규진의 총을 내려놓게 하는 장면은 긴장 폭발이었다. 학폭 추종자를 쏘고 싶다는 분노와, 쏘면 안 된다는 정의 사이에서 첨예하게 갈등했다.
"남길 선배님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눈 보고 연기하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테이크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때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김영광과 함께 만든 장면도 있다. 규진이 총을 쏘러 가기 전, 문백과 잠깐 마주치는 순간이다. 문백의 정체가 드러나고, 규진이 총을 쏘기를 은밀히 종용하는 신이다.
박윤호는 "영광 선배님이 '둘이 이미 본 사이고 미묘한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원래는 그냥 지나치는 신인데, 문백을 힐끗 쳐다보는 걸로 바꿨다. 좋다고 해주셔서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현장은 그에게 시청각 자료실이었다. "(감독님이) 쉬고 와도 된다고 해도 현장에 계속 있었다. 어떻게 찍는지, 감독님 모니터 뒤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배우들이 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었다"고 전했다.
◆ "천천히, 꾸준히, 오래도록"
자타공인 올해 슈퍼 루키다. 물론, 실패의 시간도 있었다. 그는 "오디션에서 '아쉽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두 개씩 붙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다"고 털어놨다.
"예술고를 나와서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잘 한다는 생각은 못 해본 것 같아요.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서 부러워하고, 그걸 원동력으로 열심히 노력했죠."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박윤호가 오디션에서 합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큰 건 아닌데, 연기적인 고민을 즐겨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역할을 준비할 때 일상에서 생각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서 '스터디그룹' 현우라면 엘리베이터 문을 어떻게 닫을까. 닫힘 버튼을 엄청나게 빨리 누르겠지. 그런 디테일한 생각을 많이 하고 캐릭터에 적용합니다."
올해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많이 성장하기도 했다. 그는 "부담과 욕심에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미있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기는 해보니까, 알면 알 수록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역할은 늘 새로운 거잖아요.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정말 큽니다."
박윤호에게 연기 목표를 물었다. 거창한 포부 대신,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을 전했다. 그는 "천천히 꾸준히 비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것을 바라고 배우가 된 건 아니에요. 소소한 욕심이 있다면, 신인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길게 가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만날 작품들이 기대돼요."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