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연기의 기본은 걷기다. 배우 지망생들은 걷는 법부터 배운다. 어떻게 발을 디딜지, 어깨 힘은 얼마나 뺄지 등을 복잡하게 고민한다. 그도 그럴 게, 걸음은 성격과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 수단이다.
'방송인' 덱스가 최근 배우로 데뷔했다. ENA 새 월화드라마 '아이쇼핑'에 출연 중이다. 염정아, 원진아, 최영준의 뒤를 잇는 4번째 배역이다. 김수로, 손종학 등 베테랑 배우들보다도 비중이 크다.
그러나, 그의 첫 연기는 혹평으로 가득하다. 배우들의 숨 막히는 연기 앙상블 사이 흐름을 깬다는 것. 시청자들은 아역 배우의 열연에 빠졌다가도, 덱스의 어색함 때문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덱스는 걷는 것부터 이상하다. 몰입도를 다 깬다." (시청자 반응)
단순 연기 초보의 실수, '발' 연기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진짜' 배우들에겐 생계가 걸렸다. 작은 배역이라도 얻기 위해, 프로필을 돌리고 또 돌린다. 하지만, 기회는 유명인에게만 쉽게 주어졌다.
"인플루언서의 풋풋한 연기 도전이요? 배우들은 오디션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단역 배우들)
'아이쇼핑'은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를 사고파는 불법 입양 카르텔 이야기다. 파격적인 소재인 만큼, 시작부터 강렬했다. 반품된 아이들을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를 부어 처리한다.
입양, 파양, 폐기(살인)까지 굵직한 에피소드가 쉴 틈 없이 몰아친다. 염정아는 섬뜩한 두 얼굴을 초 단위로 쪼개 표현한다. 김수로, 최영준도 아슬아슬한 연기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화 중반부 그 흐름이 깨졌다. 한 기자가 신생아 거래 실체를 취재하다 발각된 상황. 폐건물에 결박된 상태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눈에는 두려움을 가득 담았다.
그 앞에 덱스(정현 역)가 마주 앉았다. 그는 극중 불법 입양 조직의 실질적인 운영자다. 잔혹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염정아가 키워낸 인간 병기로,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인물이다.
덱스는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어떻게 없던 일이 되나요. 기자님"이라고 대사를 친다. 하지만 흔히 보던 스릴러 속 악역과는 달랐다. 그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굳은 표정으로 입술만 움직인다.
다음 장면은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기',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조차 어색하다. 얼어붙은 표정에 어깨는 한 쪽만 고정된 듯 삐걱댔다. 연기의 기초, '걷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 다급히 그에게 다가간다. "(사망했어야 할 아이가) 살아있다"고 보고한다. 덱스의 반응은? 큰 변화가 없다. 부하 직원의 표정으로 심각한 상황임을 짐작해야만 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덱스는 변절자 최영준을 처단하기 위해 공장을 찾았다. 또 다시 삐걱대며 내부로 걸어갔다. 시종일관 한 가지 표정이었다. 총을 격발한 후에도 같았다.
"열어", "꺼내"
덱스의 대사는 단 4글자. 이조차 실소를 자아낸다. 누가 또 죽어나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긴장감이 사라졌다. 덱스는 당황스러운 발성으로 아슬아슬하던 감정선을 깼다.
'아이쇼핑'은 자동차 추격전, 총격신, 폭발 등 신을 쉴 틈 없이 몰아부쳤다. CG도 화려하다. 그럼에도 덱스는 컨트롤 C, 컨트롤 V 수준이다. 같은 표정, 같은 자세, 소심한 발성, 모든 것이 한결같다.
연기 경험이 없는 덱스에게는 무리였다. 연기하는 내내 경직되어 있었고, 눈엔 초점이 없다. 악인의 포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게감을 줘야 하는 부분까지 가볍게 만들었다.
물론 장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특수부대 UDT 출신인 만큼, 액션 볼 맛은 있었다. 그는 링 위에 올라 홀로 여러 명을 쓰러뜨린다. 능숙하게 총기를 다루며 시원시원한 액션도 펼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미숙한 감정 표현과 어색한 대사 전달이 작품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오기환 감독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캐스팅했다"는 해명에 물음표가 남는다.
배우가 된 순간, 지망생과는 달라야 한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는 프로들의 세계다. 기본조차 되지 않은 방송인을 굳이 주연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실제 신인 배우와 지망생들은 공식 오디션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덱스처럼, 작품 기획 단계에서 캐스팅이 마무리되면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다.
배우 A씨는 '디스패치'에 "상업 드라마는 오디션 공고 자체가 안 뜨는 편이다. 자체 캐스팅이 많다. 이번 덱스 같은 사례를 보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지도만으로 캐스팅하면, 작품 완성도가 내려간다"면서 "연기를 준비하며 액션 트레이닝을 병행하는 배우들도 많다. 그들에겐 기회가 없지 않냐"고 안타까워했다.
"오디션 기회는 노력, 실력과는 관계없이 주어지더라고요. 씁쓸합니다." (배우 B씨)
B씨는 연기를 시작한 지 5년 됐다. 그러나, 오디션을 본 건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기회는 없다. 작품에는 인플루언서, 아이돌만 보인다"고 털어놨다.
'디스패치'는 배우 관련 사이트에서 실제 경험담과 후기도 확인했다.
"오디션이 너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어디냐 싶지만, (연기) 기회조차 없는 것이 착잡합니다." (C씨)
"대사 없는 단역으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최선을 다해 임했죠. 올해는 그마저도 없네요. 오디션이 더 줄었어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까지 들고요." (D씨)
"배우의 생계는 (직종인) 연기가 아닌 아르바이트예요. 배우 지망생 중에도 이렇게 버티면서 사는 분들이 많죠. 생계유지가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한 분들도 있나요?" (E씨)
'아이쇼핑'은 파격적인 소재에 빠른 전개로 호평을 얻었다. 주·조연, 아역배우까지 제 역할에 충실하다. 오 감독의 말처럼, 덱스만 성장하면 된다. 그러나 그 성장을, 시청자가 왜 지켜봐야 할까.
<사진출처=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