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내가 아름다운 거 추한 거 구분 못 할 것 같아?" (임영규)
임영규(권해효 분)는 앞을 못 보지 못한다. 그의 생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이는 것에 달려 있다. 누가 봐도 예쁜 필체로 전각 분야의 장인이 됐다.
볼 수 없지만, 아름다움을 만든다. 그의 미적 기준은 타인의 평가나 묘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더, 다른 사람의 기준이 중요했을 것.
영화는 그 지점을 파고든다. 연상호 감독은 앞선 시사회에서 "성취와 성과에 집착하는 나는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 '얼굴'은 무겁다. 음울하고 우울하다. 그러면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불편한 진실을 정확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임영규의 외침이 유독 날카롭게 꽂힌다.
연상호 감독이 잘하는 씁쓸한 맛으로 돌아왔다.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은 임영규를 보필하며 공방 '청풍전각'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40년 전 사망한 어머니 정영희(신현빈 분)의 백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동환은 평생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남아있는 건 실루엣만 흐릿하게 남은 주민등록증이 전부. 동환은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프로듀서 김수진(한지현 분)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친다.
영화는 5개의 인터뷰로 전개된다. 정영희의 동네 사람들, 그가 일한 '청풍피복'의 동료들, '청풍피복'에서 영희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한 정숙, 사장 백주상(임성재 분), 마지막 임영규까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같이 "못생겼다"였다. 그 피상적인 평가가 영희라는 사람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동환은 영희가 살면서 들어왔을 품평을 들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영희의 얼굴은 회상에서조차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의 평가만으로 영희를 그려보게 된다. 사람들이 수군거릴 정도로 추한 그 무언가를.
영희의 동료 정숙만이 영희의 내면에 대해 말한다. 정숙에 따르면, 영희는 정숙이 사장 백주상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움직인 유일한 인물이다.
글로 사장의 만행을 폭로하고, 부당한 해고에도 맞섰다. 못생겼다는 누군가의 주관적 판단은 그의 삶에 중요하지 않았다. 영희는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소시민이었을 뿐이었다.
임영규와 영희는 닮았다. 영규 역시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며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에게 영희의 얼굴에 대해 일러주는 순간, 둘의 결과는 달라진다.
임영규는 보이지 않던 것을 마주했고, 내면 깊숙이 박혀 있던 자격지심이 폭발한다. 영희의 정의로운 행동조차 그에겐 불편함으로 느껴진다.
마지막 임영규의 얼굴에서 사장 백주상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백주상은 월급 한번 밀린 적 없는 다정한 사장, 그러나 뒤에선 불법 사진을 찍으며 더러운 음욕을 채워왔다.
임영규 역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파내는 전각 장인이지만, 가장 추한 행동을 저질렀다. 영화는 처음과 끝, 임영규의 업적과 성공을 비춘다.
그럴수록 사라진 존재, 영희가 드러난다. 임영규 손의 상처는 그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정의로웠던 영희의 존재처럼 말이다.
'얼굴' 제작비는 2억 원이다. 소수 정예 스태프와 단 13회차 촬영으로 영화 제작 규모를 파격적으로 줄였다. 그럼에도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1970대의 모습과 현재를 오가며 군더더기 없이 흘러간다. 배경은 한정되어 있지만, 1970년대 분위기를 리얼하게 살리며 몰입감을 높였다.
좀비나 화려한 VFX 없이, 이야기의 힘으로만 103분을 채웠다. 사실 영화의 반전은 쉽게 예측된다. 그러나 배우들은 긴장감 있게 호흡을 주고받으며 반전에만 연연하지 않게 했다.
권해효는 대사 한마디, 표정 하나만으로도 임영규의 고되고 후회 많은 삶을 전달했다. 박정민은 임영규의 과거와 아들 임동환, 1인 2역을 소화했다. 큰 장치 없이 디테일 만으로 두 사람을 다르게 표현했다.
특히 신현빈은 얼굴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흩어지는 어미, 위축된 어깨 등.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영희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됐다.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 11일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해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출처=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