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아진기자] "녀석이 우릴 찾아온 거죠."
거대한 공룡이 스크린을 덮치고, 강렬한 울음소리가 고막을 강타한다. 숨 돌릴 틈은 없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피 터지는 살육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크리처 공포 영화 '고질라'와 '몬스터즈'를 연출했다. 본인의 특기를 살려 '쥬라기 월드'를 더욱 무섭게 재탄생시켰다.
그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포는 인간의 본능이다. 괴수 영화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장담대로, 공룡 세계가 앞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하 '쥬라기 월드 4') 측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열었다.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육해공 종합세트
영화는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위해 특수팀을 꾸리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약에는 지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 3종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특수팀은 육지, 바다, 하늘을 대표하는 공룡들을 잡기 위해 세인트 휴버트 섬으로 향한다. 쥬라기 공원에 가두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공룡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첫 번째 목표는 바다 공룡 모사사우루스. 이 공룡은 몸 길이가 15~20m에 달한다. 등장만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특수팀을 위협한다.
스피노사우루스와 합공을 펼치는 장면에선 특수팀 구성원들이 순식간에 희생된다. 초반부터 클라이맥스를 본 듯한 강렬한 충격과 공포를 안긴다.
우여곡절 섬에 도착한 특수팀은 티타노사우루스를 찾아 나선다. 눈앞에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다.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경이로운 광경이다.
마지막 목표는 하늘을 나는 케찰코아틀루스. 특수팀 '조라 바넷' (스칼렛 요한슨 분)이 맨몸으로 맞대결을 펼친다. 박력 있는 발차기로 공룡을 따돌린다.
◆ 역시, 티라노사우루스
가렛 감독이 ‘쥬라기 월드 4’에서 가장 강조한 정서는 단연 공포다. 그 공포의 정점을 찍는 존재는 기존의 ‘렉시’가 아닌, 본능에 충실한 새로운 티라노사우루스다.
이번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간과의 유대 없이 움직인다. 전 시리즈 내내 유지되던 인간과 공룡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예상치 못한 특성에 스릴감은 한층 더 고조된다.
특수팀이 섬으로 향하던 도중 구조한 가족은 무장도, 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티라노사우루스와 마주치는 순간, 공포 장르의 문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티라노사우루스는 가족들을 기습 공격한다. 수중에서도 사냥을 멈추지 않는다. 도주 경로를 예측하고, 끝에서 기다리는 방식은 잔혹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쥬라기 월드 4'는 공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다시 한번 아포칼립토 식 추격 구조를 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영화 전반의 리듬이 단조로워지는 한계도 발생한다.
영화 내용이 '공룡'이란 존재에 대한 다각도의 시각보다는, 그들에게 쫓기는 인간의 생존기에 가깝다. 리부트의 색다른 시도인 동시에, 후반부의 서사까지 예측할 수 있게 한다.
◆ 허무한 최종 보스
앞부분이 워낙 강렬해서일까. 영화 후반부는 다소 맥이 빠진다. 리부트의 핵심이자 클라이맥스를 책임져야 할 돌연변이 공룡들의 존재감이 기대에 못 미친다.
임무를 마친 특수팀과 살아남은 가족은 탈출을 위해 헬기장으로 향한다. 이때 뮤타돈이 습격한다. 뮤타돈은 전작에서 세계관 최강자로 묘사됐던 랩터의 변종이다.
뮤타돈은 랩터의 후손답게 높은 지능을 자랑한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하수도 뚜껑을 열고, 지하까지 사람들을 추격한다. 그러나 조라의 총 몇 발에 그대로 쓰러진다.
이후 최종 보스인 디스토르투스 렉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헬기를 통째로 물어뜯고, 빌런인 제약 회사 대리인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 분)를 먹어 치운다.
하지만 강렬함도 잠시. '덩컨 킨케이드'(마허샬라 알리 분)가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먹잇감을 자처하지만, 디스토르투스 렉스는 그를 되새김질하다 놓쳐버린다. 허무하게 퇴장한다.
무엇보다 비주얼이 가장 아쉽다. 익숙한 괴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공룡보다는 에일리언을 떠올리게 했다. 공룡의 고유성이 흐려졌다는 팬들의 우려도 예상된다.
◆ "그래도 스릴은 넘친다"
'쥬라기 월드 4'는 전작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는 기존 시리즈의 답습에 그쳤다. 추후 시리즈의 내용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는 부분이다.
공포에 치중한 나머지, 기존의 재미 요소도 일부 빠졌다. 공룡 간 전투 장면이 거의 없다. 인간이 공룡에게 쫓기는 구조만 반복되다 보니 서사도 깊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거리는 분명히 있다. 우선,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오마주가 눈에 띈다. 뮤타돈의 주유소 습격, 물결에 비친 모사사우루스의 눈 등이 향수를 자극한다.
생동감 넘치는 연출도 장점이다. 가렛 감독은 CG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태국과 몰타에서 실촬영을 진행했다. 배우들은 늪에 빠지고, 수로 위에서 열연을 펼쳤다.
감독은 배우들의 생생한 시선 처리를 위해 공룡의 머리, 발, 발톱 등 일부 부위도 실제로 제작했다. 덕분에 관객들 역시 높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쥬라기 월드 4'는 여름철 무더위를 식혀줄 블록버스터로서의 조건은 갖췄다. 아쉬운 부분도 존재하지만, 압도적인 공룡 비주얼과 포효 소리는 극장용으로 제격이긴 하다.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