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차분한데 강렬한 카리스마, 그 뒤에 느껴지는 여운. 배우 소지섭이 그간 보여준 이미지다. 넷플릭스 '광장'(감독 최성은)의 '남기준'도 비슷한 분위기다.
생즉사 사즉생 액션을 선보인다. 흡사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느린데 정확하고, 혼자서도 압도적이다. 감정을 누르니 잔인함은 올라갔다.
소지섭 특유의 분위기로 묵직한 남성미를 뿜어냈다. 전략적인 두뇌나 마동석처럼 압도적인 몸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복수심에 불타 전진할 뿐이다.
그런데도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소지섭이 가진 독보적 아우라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원작 팬들의 호불호는 갈렸지만, 그의 연기는 호평이다.
무자비하고 냉철한 액션 연기에 'K-존윅'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 역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게 기준은 새로운 얼굴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욕심이 났어요. 오랜만에 치트키를 꺼낸 느낌이에요. 저에게 잘 어울리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은 K존윅의 탄생기다.
◆ 13년 만의 액션
'광장'은 액션 누아르다. 기준은 스스로 아킬레스를 끊고 조폭세계를 떠났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으로 11년만에 광장에 돌아온다. 혈혈단신 복수를 시작한다.
소지섭은 웹툰 원작 팬들의 캐스팅 1순위였다. 소지섭은 "누아르를 원래 좋아한다. 감독님이 대본을 저에게 가장 먼저 주셨다더라. 감사한 마음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액션은 극의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했다. 기준은 복수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강한 상대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게임 스테이지를 깨부수듯 산을 넘고 또 넘는다.
영화 '회사원' 이후 13년 만의 액션이다. 소지섭은 먼저 몸을 만들었다. "95kg으로 시작해서 70대 초반까지 감량했다. 이제는 체중 감량이 쉽지 않더라"며 웃었다.
"기준의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감량하기도 했습니다. 기준이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느껴지길 바랐어요. 불쌍하고 처절해 보였으면 했죠.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야위어 보이실 거예요."
◆ K-존윅의 탄생
절뚝절뚝, 악의 중심을 향해 걸어 나간다. 차갑고 무자비하게. 절제되고 묵직한 '광장'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한마디로 소지섭의 원맨쇼였다. K-존윅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는 "많이 강하고 세 보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멈출 순 있어도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직진만 하는 액션이었다. 또, 일대 다수의 액션이기 때문에 공간을 잘 활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존윅과 비교해 주시는 것 자체가 민망하네요. 하하. 저는 완전히 다른 액션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근접전이 많습니다. 투박하지만, 강하고 임팩트 있고 시원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포인트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액션이다. 기준은 죽은 동료의 화장터 앞에서 "곧 보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모두를 죽여야 끝나는 게 아닌, 스스로가 끝나야 끝날 수 있는 느낌으로 연기한 것.
소지섭은 "죽음을 위해 달려가는 느낌을 염두에 두고 밀고 나갔다"며 "중간에 치료를 받거나 하는 신도 나중에는 다 생략하게 됐다. 그래서 더 불사신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서사의 아쉬움?
다만, 서사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 7회 내내 그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피는 터지는데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지섭은 "있는 대사도 더 심플하게 정리했다. 글로벌 플랫폼이다 보니 많이 단순화시킨 것 같다"며 "원작도 사사라는 게 거의 없다. 동생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설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액션에 대한 부분은, 원작 팬들의 호불호가 갈렸다. 기준의 액션 개성을 죽였다는 것. 원작의 기준은, 가장 먼저 싸운 사람을 제압해 나머지에게 공포감을 안기고 주도권을 가져왔다.
그러나 시리즈에선 먼치킨처럼 비친다. 칼에 찔리고 총을 맞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선다. 소지섭은 "그런 반응은 예상했다"고 털어놨다.
"원작의 액션 스타일을 따라가기엔 다음 액션이 진행이 안 되더군요. 점점 센 사람이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강한 상대들이 이상하게 보일 것 같기도 했고요. 기준에게 더 큰 힘을 줘서 사람들이 접근 못 하는 느낌으로 대신하게 됐습니다."
◆ 꿈의 캐스팅
'광장'은 꿈의 캐스팅을 완성했다. 소지섭 외에도 핫한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이준혁(남기석 역), 공명(구준모 역), 추영우(이금손 역), 허준호(이주운 역), 차승원(차영도 역) 등.
든든한 선배들부터 라이징 후배들까지. 소지섭은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다. 소지섭은 "선배님들에게는 에너지를 많이 받았고, 후배들의 연기를 보는 건 재미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허)준호 선배님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내가 받아줄게'라고 하시더라.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고수만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정말 멋있었다'고 말했다.
후배들에 대해선 "공명은 지금까지와 다른 캐릭터를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즐겁더라. 추영우는 감독님이 요청하시는 걸 바로 자기화시키더라. 굉장히 열려 있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소지섭은 주요 출연진들뿐 아니라 엑스트라들까지도 세심히 챙겼다. 그는 "액션신이 많다 보니 다들 다치면 안 되지 않나. 계속 동선 체크하고 연습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 "새로운 얼굴의 갈증"
'광장'은 공개 3일 만에 글로벌(비영어) 2위에 올랐다. 성공적인 출발이다. 소지섭에게 소감을 묻자 "잘 된 거냐. 넷플릭스는 처음이라 아직 체감이 안 된다"며 웃었다.
그는 "성적을 떠나 '광장'을 하면서 얻은 게 많다"며 "오랜만에 누아르를 하면서 촬영할 땐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연기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그간 새로운 얼굴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소지섭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뚜렷한 배우다. 과장하지 않고, 최소한의 표정과 말투로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한다.
"기준은 새로운 얼굴은 아니지만, 저에게 어울리는 걸 해본 거죠. 오랜만에 치트키를 꺼낸 느낌입니다. '광장'이 잘 된다면 당분간은 '잘하는 것'을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MZ 사이에서 불고 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 열풍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좋다. 그런 작품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가 그때의 감성을 이해하고 좋아해 주시는 게 신기해요. 저도 제 작품을 가끔 봅니다. 어릴 때의 연기를 보면 에너지가 느껴지거든요. 그때의 저를 보면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새로움을 떠나, 잘 맞는 옷을 입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다. '광장'은 온전히 소지섭의 무대였다. 대사 없이 눈빛으로 모든 걸 설명했다. 내년이면 데뷔 30주년, 그는 또 어떤 얼굴을 꿈꿀까.
"연기는 답을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힘든데, 하게 돼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지금처럼만 해'라고요. 그런데 더 잘해야죠."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