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배우의 욕심이다. 안재홍은 그 욕망을 늘 채웠다. 은퇴작이 의심될 정도의 파격적인 열연을 펼쳐왔다.
이번엔 새로움 대신 웃기고 싶다는 열망으로 임했다. 단발머리를 하고 장풍을 쏜다. 초능력자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안재홍은 허구의 벽을 무너뜨리고 관객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켰다.
"코미디를 특히 선호하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마다할 이유도 없고요. 코미디는 캐릭터를 잘 만들고 연기를 잘하는 것, 그 이상의 미션이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잘 해내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안재홍은 어떤 자세로 영화 '하이파이브'(감독 강형철)에 뛰어들었을까.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 캐릭터의 자세
'하이파이브'는 코믹 액션 활극이다. 주인공 5명이 장기 이식으로 각기 다른 초능력을 얻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안재홍은 '박지성'을 맡았다. 지성은 폐를 이식받고 엄청난 폐활량을 지니게 된다.
안재홍은 "지성은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이다. '친구가 왜 필요한데'라고 말할 정도다. 나중에는 함께 손을 잡고 팀을 이룬다. 그 과정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증량과 탈모 등 충격적인 외모 변신을 해왔다. 이번엔 단발머리다. 바람을 쏘는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는 "무엇보다 웃기고 싶었다. 재미있는 비주얼이 어울릴 것 같았다"며 "히어로물이다 보니, 하나의 피규어처럼 특징이 있으면 좋겠어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어마어마한 운동 능력의 완서(이재인 분), 간접적인 슈퍼 파워를 가진 선녀(라미란 분), 전자기파를 조종하는 기동(유아인 분), 상처를 치유하는 약선(김희원 분), 타인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영춘(신구·박진영 분).
지성의 초능력은, 이들에 비하면 다소 하찮아 보인다. 안재홍은 "지성이 이 작품의 하찮지만 멋있는 정서라고 생각했다. 그 덕에 웃음을 담당하고 관객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 초능력자의 자세
지성의 초능력은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를 단련하기 위해 완서와 특훈에 들어간다. 장풍을 쏴서 멀리 있는 리코더를 연주한다. 강풍기와 싱크를 맞추기 위해 폐활량을 늘렸다.
그는 "만화적이지만, 말이 되어야 재미가 통할 것 같았다"며 "유산소 위주로 운동을 했다. 숨을 길게 쉬는 연습을 했다. 내 몸에서 바람이 나가는 게 느껴질 수 있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강풍기가 한 번에 강한 압력을 보내기도 하지만, 길게 멀리 나가기도 합니다. 숨을 분배해서 길게 숨을 쉬는 속도를 맞춰야 했어요. 완성본을 보니까 바람이 진짜 닿은 것처럼 싱크가 정확히 맞더라고요. (웃음)"
요구르트 카체이싱 장면 역시 직접 소화했다. 실제 입으로 요구르트 포를 발사했다. 그는 "진지하게 임했다. CG로 속도감을 더해 실감 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그 한 시퀀스를 위해 많은 컷을 달렸다"며 "단순한 쾌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하이파이브 각자가 초능력으로 역할을 해내는 장면이라 더 의미 있었다"고 밝혔다.
"완서가 전력 질주하며 엔진 역할을 하고, 선녀가 운전대를 잡고, 지성이 야쿠르트를 발사하고, 기동이 전파를 만들어내 신호등을 조작했죠. 목적과 목표가 있는 액션이라 더 신나게 느껴졌습니다."
◆ 코미디의 자세
안재홍의 코미디하면, 믿고 보게 된다. 그는 "코미디 작품만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며 "연기자로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원한다. 반대로 코미디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도 없다"고 털어놨다.
"코미디는,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를 잘하는 것 이상의 미션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2개의 끈을 잘 잡고 잘 해내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큽니다."
'하이파이브' 코미디의 비결은 오직 대본이었다. 강형철 감독 특유의 말맛나는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티키타카 코미디가 저절로 완성됐다는 것.
안재홍은 "대본 자체에 리듬감이 정밀하게 짜여 있어서 툭툭 뱉었다. 애드리브도 없었다. 특히 선녀와 지성의 호흡은, 대사에 답을 잘하기만 해도 풍성하게 살아났다"고 말했다.
"코미디를 자아내는 방식도 웃긴 개인기가 아닙니다. 인물들은 진지한데 관객이 보기엔 하찮은 순간들이 관객을 웃기게 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는 심각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희극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그중 하나가 유아인을 인공호흡으로 구하는 신 아니었을까. 그는 "이기적인 지성이 팀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나누는 장면이다. 영화관에서 함성이 나오더라.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 반응이 더 뜨거웠던 것 같다"며 웃었다.
◆ 팀플레이의 자세
"너 장기 기증 6개 할 수 있는 거 알지" ('하이파이프' 中 / 지성)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팀플레이다. 각각의 초능력을 가진 5명이 하나의 팀으로 결성되는 과정. 6개의 장기가 6개의 능력이 되어, 팀이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한다.
개성 강한 배우들을 한 화면 안에 조화롭게 담기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오합지졸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하이파이브'는 그럴싸한 팀을 그려냈다.
안재홍은 "뚜렷한 캐릭터들이 자기 할 말만 하면서 대화가 쌓여간다. 삐걱대는데, 앙상블 코미디처럼 느껴지더라. 이질적이고 독특한 매력이 컬러풀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만,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지성의 분량이 후반부에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지성이 초반 영화의 톤앤매너를 담당합니다. 재미로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역할이었죠. 계주에서 바톤을 터치하듯 다음 인물에게 넘겨주는 순간들이 계속됐어요. 그 과정에서 모든 캐릭터가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정세(종민 역)의 연기에 대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선배님이 나오실 때마다 너무 재미있었다. 유일하게 초능력이 없는데 등장하실 때마다 모든 장면을 휘어잡으시더라. 감탄하면서 봤다"고 덧붙였다.
◆ 배우의 자세
안재홍은 작품마다 본명을 잃는다. 한때는 정봉이('응답하라 1988'), 한때는 주오남('마스크걸')이었다. '하이파이브' 지성으로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될까.
안재홍은 "많은 분께 사랑받아서 속편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지성의 이야기도 더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밑으로 바람을 쏴서 공중 부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망토를 두르고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궁무진하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작품 같아요."
개봉 소감도 전했다. 그는 "예매율 1위를 했더라. 이 재미있는 영화가 많은 분과 하이파이브 했으면 좋겠다"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게 이렇게 신나는 거구나 체험시켜 드리고 싶다"고 바랐다.
그의 다음 얼굴이 벌써 궁금해진다.
"연기자로서의 욕망은 새로운 얼굴을 보여드리는 거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온전하게 몰두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음엔 어떤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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