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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누가 '심해'의 주인입니까"…시나리오 논란의 전말

[Dispatch=김지호·구민지기자] S#2. 감압실 _ 탱크 안 (1)

잠에 취해 무거운 눈을 뜨자, 온통 하얀 철제 벽면이 보인다. 작은 잠수함 형태의 철제 탱크 감압실.

천섭 : (비몽사몽, 잠에 들지 않으려는 듯)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S#2. 병원, 감압실 _ 탱크 안 (2)

번쩍 뜨는 두 눈. 충혈된 탁한 공막이 움직인다. 하얀 철제 벽면, 잠수함 형태의 탱크 감압실 내부. 

천섭 : (자세를 고쳐 모로 누우며) 삼일은 삼, 삼이 육, 삼삼 구, 삼사 십이…

(1)번과 (2)번을 비교해 보자.

1번은 김기용 작가의 것. 2번은 최윤진 대표가 '따로' 쓴 것.

장면(감압)과 장소(탱크)는 같다. 다른 것은, 구구단. 1번 대본은 2단, 2번 대본은 3단을 사용했다.

김기용 작가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나리오를 빼앗겼다"고 호소했다.

최윤진 대표는 반박했다. "(김기용과)  작가 계약을 맺었지만 -> (집필 능력이 부족해) 해지했고 -> 내가 다시 새로 썼다"고 부인했다.

이것이 바로, '심해' 시나리오 논란이다. 최윤진 대표는 '모럴해저드', '백두산'(볼케이노), '다이어터', '나 어떡해' 등의 작품으로도 비슷한 잡음을 일으켰다.

"제작사 대표(최윤진)가 작가(김기용)의 대본에 수정을 가한 다음, 단독 저작자로 등록한 사건이다. 영화를 편집한 편집자가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 '심해'는 누구의 출발인가

'심해'는 '해인'이라는 작품에서 출발한다.

신인작가 김기용은 지난 2018년, '해인' 트리트먼트(39p 분량, 단편소설에 가깝다)를 공모전에 제출했다. 당시 최윤진은, (공모전) 예심 심사위원이었다.

'해인'은 본선까지 올랐으나, 탈락했다. 그때, 최윤진이 등장했다. 심사위원이 아닌, 영화사(꽃) 대표 자격으로 손을 내민 것. 김기용에게 작가 계약을 제안했다.

김기용은 최윤진 대표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1월 23일, '심해'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다 20일 뒤, '날벼락'이 떨어졌다. 계약 해지 통보였다.

김기용 작가는 '디스패치'에 "(18년) 12월 13일, 계약을 끝내자고 하더라"면서 "원고료 1,500만 원을 받았다. 그게 전부다"고 계약 해지 상황을 설명했다.

"최윤진 대표가 그랬습니다. '너는 능력이 없다', '업계를 떠나는 게 좋겠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나는 안되는구나... 결국, 짐을 쌌습니다." (김기용 작가)

# '심해'가 저작물로 등록됐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다시, 플래시 백(flash back)이다.

2018년 11월 23일 : '심해' 시나리오 초고 완성.

2018년 12월 13일 : 김기용 작가 계약 해지.

그리고,

2018년 12월 28일 : '심해' 저작권협회 단독 등록.

김기용 작가는 사라졌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살아났다. 2주 뒤, '심해'가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것. 김기용 작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최윤진 대표는 2019년, '심해'로 4,000만 원도 지원받았다. <영진위 시나리오 사업화 지원사업>에 당선된 것. (최윤진은 '심해'를 '심연'으로 바꿔 출품했다.)

심지어, 최윤진은 한 인물을 '심해' 각색 작가로 이름 올렸다. 해당 인물은 영화계와 무관한 인물.

# '심해', 영화를 꿈꾸다

'심해'는 영화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제작사 '더램프' (박은경 대표)가 관심을 보인 것. 2020년, 최윤진과 '더램프'는 '심해'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디스패치'는 공동제작 계약서를 입수했다.

제목 : 심해 (가제)

각본 : 최윤진

최윤진은 각본료로 1억 원을 책정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7조 4항.

"영화사 꽃이 본건 영화를 진행하기 위해 집행된 각본 최윤진 외의 원안(각본료) 1,500만 원을 정산받을 수 있다."

정리하면, 최윤진이 김기용 작가에게 지급한 돈은 1,500만 원. 애초 원고료로 3,000만 원을 책정했지만, 1,500만 원만 주고 계약을 (중간에) 끝냈다. 

반면, 최윤진은 '심해'로 영진위에서 4,000만 원을 받았다. 제작사 '더램프'에 각본료로 1억 원을 책정받았다. 여기에, 원안 작가 원고료도 추가시켰다.

# '심해'는 최윤진의 것?

다음은, 최윤진이 제작사 '더램프'에 보낸 서신이다.

"심해는 제가 2018년 공모전 예선 심사 중 발견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작가가 글을 처음 쓰는 친구라 필력은 그닥 좋지 않은 신인이었고, 트리트먼트 문제는 좀 있었습니다. (중략) 초고까지 같이 작업 진행했으나, 그 친구 집필 숙련도 문제로 본인도 힘들어해 잘 이야기하여 계약을 중도해지했습니다."

최윤진 대표에 따르면, (1) 원안 작가가 따로 있다, (2) 그 친구의 필력이 좋지 않다, (3) 트리트먼트에 문제가 있었다, (4)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최윤진은 "(김기용) 트리트먼트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면서 "내가 기획 의도, 주제, 캐릭터, 전개 방향 등을 전면 수정, 다시 쓰도록 지시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게다가, 김기용 작가는 시나리오 집필도 서툴렀다는 것. 최윤진은 "김기용 시나리오를 보니 심각했다"면서 "더이상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내가) 독자적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덧붙였다.

최윤진의 주장을 한 줄 정리하면,

김기용 트리트먼트 부실-> 최윤진 멘토링 작업 및 수정-> 김기용 시나리오 (또) 부실-> 최윤진 독자적으로 집필완료.

즉, 김기용의 '심해'와 최윤진의 '심해'는 (김기용 원안에서 나온) 다른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 '심해'를 펼쳐봤다

김기용의 '심해' vs 최윤진의 '심해'.

'디스패치'는 두 '심해'를 비교했다. 김기용의 시나리오 초고(18년 11월 19일)와 2고(18년 11월 23일), 최윤진의 초고(18년 11월 22일), 최윤진의 3고(22년 10월)를 검토했다.

두 버전 모두, 등장 인물과 스토리 라인이 비슷하다. 중년 머구리와 탈북청년 머구리가 주인공. 북방한계선 인근 심해에서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나는 이야기다.

무대는 동해안 대진항 저도어장(북방한계선과 1km 떨어진 지역). 배가 전복되고, 선장과 선원이 사망하고, 대왕문어를 만나고, 몸싸움을 벌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두 '심해'에서 다른 것도 있다. 우선, 주인공의 이름이 바뀌었다. 천섭->명관(중년 머구리), 해인->해명(탈북 머구리), 정민->선재(머구리 아들) 등으로 변경됐다.

최윤진 3고에만 등장하는 설정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 어선을 불법으로 나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명이 러시아인들의 의뢰로 마약뭉치를 건진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 '심해', 타임라인 복기

'심해'의 시작은, 김기용 작가다. 김 작가가 지난 2018년 3월, 공모전에 제출한 '해인' 트리트먼트가 출발점이다.

최윤진 대표는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다. 그는 김기용의 트리트먼트에서 가능성을 봤다. 2018년 7월 19일, 따로 연락해 작가 계약을 맺었다.

김기용 작가는 8월 15일, '심해' 트리트먼트를 완성했다. 당시, 김기용과 최윤진은 협업 관계였다. 김 작가는 최윤진과 상의하며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예시 : '해인'에서는 탈북청년 머구리가 죽고, 중년 머구리가 홀로 산다. '심해'에서는 둘 다 살아나는 걸로 바뀌었다. '해인'에서는 대왕문어와 범고래 때문에 위기 겪는다. '심해'에선 범고래가 삭제됐다.)

김기용 작가는 9월,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다. 최윤진 대표에게 5차례(9월 20일, 10월 22일, 10월 31일, 11월 19일, 11월 23일)에 걸쳐 파트별 작업물을 전송했다.

최윤진 대표는 동시에, '심해'를 자신의 버전으로 따로 쓰기 시작했다. (김기용 작가는 이 사실을 몰랐다.) 이어, 김 작가보다 하루 먼저 '최윤진 Ver' 초고를 완성했다.

최윤진은 12월 13일, 김기용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집필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12월 28일, 저작권협회에 '심해'를 자신의 이름으로 단독 등록했다.

# '심해', 원작자는 어디에?

'디스패치'가 김기용 작가를 만났다.

"초고까지 쓰고, 해지를 당했습니다. '글을 너무 못쓴다. 다른 일 찾는 게 낫겠다'는 말을 들었죠. 내가 정말 능력이 없는걸까... 상심이 컸습니다. 오랜 시간 방황했어요." (김기용)

(참고로, 최윤진 대표는 "김기용과의 계약 해지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업계를 떠나라고 막말한 적 없다"고 항변했다.)

김기용 작가는 호프집에서 저녁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남는 시간에 글을 썼다. 최근에는 웹툰 스토리를 창작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김기용이 '심해' 영화 제작 소식을 들은 건, 지난해 5월. 

"최윤진 대표가 5년만에 연락을 했더라고요. '심해'가 영화화 된다고요.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축하한다', '잘됐다'는 이야기를 했죠."

김기용 작가는 다음날, '더램프'의 연락도 받았다. 

"그때 최윤진 버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 초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의 윤색 수준이었죠. 내 시나리오가 탈취됐구나… 당황스러웠습니다." (김기용)

'디스패치'는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creenwriters Guild of Korea, 이하 SGK)에 문의했다. SGK는 "두 버전을 비교한 결과, '심해'는 김기용 각본으로 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도합 2,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3명의 작가를 조정위원으로 선발했다. 두 작품을 익명으로 검토했다. 만장일치로 '김기용 작가가 95%를 집필했고, 최윤진이 5% 윤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SGK)

# 경찰의 판단도, '심해'로 갔다

최윤진은 '심해' 시나리오 논란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최윤진은 김기용과 별도로 시나리오 '심해'를 작성해 완성했다. 김기용의 '심해'와 최윤진의 '심해'는 내용과 표현이 다르다. 두 시나리오의 관계는 별개다." (최윤진 답변서)

김기용 작가는 지난해 10월, 최윤진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12월, 최윤진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

"김기용의 '심해'와 최윤진의 '심해'는 사건 전개 과정, 등장인물 등에 있어 전반적 유사성은 인정된다. 이는 두 시나리오가 모두 동일한 트리트먼트를 토대로 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 문장, 각 캐릭터의 성격과 대사 및 구체적 사건의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선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김기용이 '심해'의 단독 저작자라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두 사람은 트리트먼트 '심해'를 토대로 각자의 완결된 저작물을 완성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었을 뿐, 상호간 공동창작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단정하긴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 종로경찰서)

# 최윤진에게 묻고 싶은 것

저작권위원회에 저작물을 등록하려면, '원칙'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저작물을 위한 아이디어나 힌트를 제공한 사람, 저작물 창작을 의뢰한 사람, 제작비용을 지불한 사람은 저작자가 아님.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사람이 저작자." (저작물 등록원칙 中)

'심해'의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인가? 명백히, 김기용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최윤진이 힌트를 제공했을 수 있다. 방향을 제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작자의 역할이다. 저작자의 이름이 바뀔 명분이 될 수 없다.

다음은, 시나리오작가조합의 의견이다.

"경찰(종로서)의 접근 방법은 애초부터 잘못됐다. 작가가 집필 계약을 체결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제작사 대표가 그 시나리오 위에 수정을 가해 자신의 이름으로 저작자 등록을 했다. 최윤진의 행위를 제지할 수 없다면, 누구든 원본 시나리오를 고쳐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다." (SGK)

봉준호 감독은 지난 2004년 겨울, 홍대 만화방에서 프랑스 SF만화를 발견했다. 그는 영화화를 결심했다. 그리고 2006년, 판권 계약을 완료했다.    

이 작품이 바로, '설국열차'다. 단, 원작만화와 영화는 전혀 다르다. 유일하게 공유되는 설정은, <빙하기 살아남은 인류가 설국열차에 탑승해 살아간다>는 내용. 

"원작의 핵심 아이디어만 따왔을 뿐, 인물과 사건은 완전히 다릅니다. 1년 넘게 시나리오에 매달렸습니다." (봉준호 감독, 2011년 동아일보 인터뷰) 

원작 만화가 장 마르크 로셰트도 크게 만족했다. "영화가 만화 원작보다 개선됐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재창조됐다. 결말도 낙관적으로 바뀌었다"고 호평했다.

봉준호 감독은 왜 원작 판권을 샀을까? '설국열차'의 아이디어가 그 만화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가 없었다면, '설국열차'도 없었다.

[반론보도] 「[단독] "누가 '심해'의 주인입니까"…시나리오 논란의 전말」 기사 관련

본보는 지난 2월 27일자  「[단독] "누가 '심해'의 주인입니까"…시나리오 논란의 전말」 제목의 기사에서 최윤진 대표의 김기용 작가 시나리오 관련 의혹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윤진 대표 측은 "김기용 작가가 온라인 저작권 등록을 문제 제기했을 때, 공동 등록을 제안했음에도 김기용 작가는 이를 거절하고 제작할 수 있는 권리의 근간인 재산권을 요구하였다. 또 김기용 작가에게 계약서에서 크레딧을 보장하였고 저작권을 양도받았음으로 김기용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작가 조합은 트리트먼트와 시나리오 집필 경위를 조사하지 않고 김기용 작가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판정을 진행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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