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여자친구가 몰카 라이브 방송의 제물이 된다. 남자친구는 우연히 충격의 '라방'을 보게 된다. 사이버 범죄로부터 연인을 구하려 협상에 나선다.

솔직히, 불편한 이야기다. 흔히 말하는 상업적 주제도 아니다. 온라인을 배경으로 펼치기에 이렇다할 영상미도 없다. 자칫 자극적이란 비판에 부딪힐 우려가 있었다.

주변 만류는 당연했다. 유쾌하고 대중적인 장르가 낫지 않겠냐는 것. 투자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2~3년은 거절만 당했다.

최주연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말했다.

"제가 봐도 참 불편한 내용입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멈추기도 했고요. 그런데 라이브 방송을 통한 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이야기 아닐까요?" (이하 최주연)

주제는,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최 감독이 하고싶은 이야기는 명확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랬기에 '라방'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매니저에서 감독까지

최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배우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지난 2012년엔 제작사를 차렸다. 영화 '공모자들'(2012)과 '날, 보러와요'(2016) 등을 만들었다. 

저예산 영화였지만, 성공이었다. 두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자신감이 생겼다. 연출가에 대한 꿈이 커졌다. 대학교를 들어갔고, 영화를 공부했다.

그가 감독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 감독은 지난 2018년 공론화된 N번방 사건을 짚었다. 사이버 범죄에 큰 관심이 생겼고, 그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

"앞으로 이런 일들은 더 많아지겠죠. 수위는 더 높아지고요. 직접적인 범죄자들도 나쁘죠. 하지만 그런 영상물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모두 범죄에 가담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실, 최 감독은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그 관심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공모자들'. 장기 거래를 소재로 했다. '날, 보러와요'로는 강제입원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지적했다.

그 다음으로, '라방'. 사이버 범죄를 비판했다. 

"주변 사람들이 '왜 첫 작품부터 어려운 길로 가냐'고 만류했어요. 불편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주제를 먼저 꺼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사회에 질문하고 싶었거든요."

◆ '라방'의 탄생

물론 순탄치 않았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고난이었다. 자료 조사부터 불편한 사실을 계속 접해야 했다. N번방만큼 심각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었다.

최 감독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건들이 더 심하더라. 마음이 괴로워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나도 이렇게 불편한데, 보는 사람들은 어떨까. 전달에 대한 고민도 컸다"고 털어놨다.

강한 의지 없이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불편하면,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하나요? 내 친구나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도 모른척 할 건가요? 용기를 내 다가가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미 '날, 보러와요'에서 영화를 통해 법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과거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 소견만 있다면 누구든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날, 보러와요'는 이 법을 악용해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냈다. 파장이 컸다. 영화 개봉 한 달 뒤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그때 영화가 잘 되면서 법이 개정되는 희망을 목격했습니다. '라방'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죠. 세상을 완벽히 바꿀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 '라방'을 완성한 사람들

불편한 이야기를 전할, 배우들도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게, 영화의 90%가 협상을 그린다. 동주(박선호 분)와 젠틀맨(박성웅 분)의 치열한 심리전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다.

동주는 여친을 구하기 위해 울고, 호소하고, 화내고, 어쩔 줄 몰라한다. 젠틀맨은 악랄한 범죄자다. 동주를 협박하고 회유하며 밀고 당긴다.

최 감독은 "현장이 편해야 최대치의 역량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연기하고 싶은지 물어보며 함께 만들어 나갔다"고 말했다. 

동주와 젠틀맨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소통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촬영 내내 서로의 연기를 보지 못했다. 마치 원맨쇼를 하듯 모든 신을 소화해야 했다. 

최 감독은 박성웅에게 공을 돌렸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는 것.

그는 "(박성웅) 선배님이 하루를 통으로 빼 연기를 쭉 녹화해주셨다"며 "박선호가 혼자 장면을 소화하기 쉽게 가이드 라인을 잡아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박성웅 선배님은 연기도 여러 버전으로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번엔 이 감정으로 해 볼게', '다음엔 이렇게 해볼게' 하시면서 다양하게 보여주셨어요.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쓰라 하시더군요. 감탄했습니다."

◆ "첫 영화, 그리고 시작"

첫 작품이다.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투자 역시 쉽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2주 만에 촬영을 끝내야 했다. 열악한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역시,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최 감독은 "촬영하면서 문제가 안 생길 순 없다. 감독인 제가 최대한 영리하게 움직여야 했다"며 "핑계 대지 말자는 마음으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라방'이 탄생했다. 러닝타임 90분. 단시간에 승부를 본다. 전개도 빠르다. 한정된 공간과 대화 위주로 흐르는 스토리의 단점을 보완한 선택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도 긴장감을 살렸다. 돌발 상황도 삽입했다. 마지막 회심의 반전으로는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다만, 메시지에만 치우쳤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 감독은 "라방은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가벼운 이야기를 찾기 마련이지 않냐"며 "그럼에도 선택해 주신 분들이 계시다. 관객 분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그의 다음 스텝은, 또 다시 공부다. 올해 대학교를 졸업했고, 하반기엔 대학원에 진학한다. 영화 공부에 매진하고 싶어서다. 그는 "더 공부해서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는 이야기를 만드는 거잖아요. 관객들에게 슬픔, 감동, 즐거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지금처럼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최주연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이제 시작이다. 

<사진=정영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