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다은기자] “얼떨떨했고, 벅차올랐죠. 관객들의 기립 박수, 함성, 외신 인터뷰 요청.. 현장의 모든 것들이 아직 마음에 크게 남아 있습니다.” (전우성 감독)
지난달 19일 한국 OTT 작품이 칸 뤼미에르 대극장 스크린에 최초로 올랐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현지 팬들의 기립 박수, 환호가 3분 넘게 쏟아졌다.
프랑스를 뜨겁게 물들인 작품은 바로 티빙 오리지널 ‘몸값’(극본 전우성·최병윤·곽재민, 연출 전우성). 지난달 제6회 칸 국제시리즈 페스티벌에서 장편 경쟁 부문 ‘극본상’을 수상했다.
K콘텐츠의 역사가 새로 써지는 순간이었다. ‘몸값’은 한국 드라마, OTT 시리즈 최초로 칸 시리즈 수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K콘텐츠 중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지난 2021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우성 감독을 필두로 곽재민 작가, 최병윤 작가가 머리를 맞댔다. ‘몸값’의 출발점이었다.
‘디스패치’가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감독, 작가들 모두 칸 수상을 이뤄냈다는 사실에 꿈을 꾸는 듯했다. 전 감독은 “유서 깊은 대극장에서 상영한 것조차 신기했다”며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 핑크카펫의 열기 그리고 한국의 이야기
전 감독은 이날 칸 시리즈의 상징, 핑크카펫에 선 소감부터 밝혔다. “관객들이 상영 후 실제로 기립 박수를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니까 뜨거운 관심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트로피 주인공으로 호명됐을 때의 감정을 꺼냈다. 전 감독은 “얼떨떨하고 신기했다”며 “현장이 아직 마음에 크게 남아 있다. 그곳에서 들은 박수, 목소리가 생생하다”고 돌이켰다.
두 작가는 스케줄상,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다. TV와 뉴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접했다. 전 감독은 “작가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곽 작가는 “어디에 있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며 “현장에서 작가들의 이름도 크게 불러 주셔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고 감격의 순간을 회상했다.
수상의 공은 배우, 스태프들을 향해 돌렸다. 곽 작가는 “우리가 영광스러운 각본상을 받았지만, 각본으로 받은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작품 덕이었다”며 “스태프, 배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최 작가 또한 “살면서 이렇게 많은 연락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이야기했다.
수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새로움”을 언급했다. 전 감독은 “심사위원들이 ‘새로움이 많다’고 하더라. 보기 힘든 이야기와 소재, 끊어지지 않는 형식, 예상치 못한 전개를 잘 봐준 것 같다”고 자평했다.
◆ 철저한 악인들의 ‘몸값’ 전쟁
“저희 작품은 인간이 ‘몸값’을 두고 흥정하는 이야기죠. 악한 자본주의, 거짓말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의 처절한 욕망이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전우성 감독)
‘값’. 대게 물건의 가치나, 이를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을 뜻한다. 하지만, 그 앞에 사람의 ‘몸’이 붙으면, 새 의미가 생긴다.
‘몸+값’. 사람의 몸을 담보로 받는 돈, 사람의 가치를 돈에 빗대어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작품의 모든 이야기가 농축된 단어다.
‘몸값’은 총 6부작으로 구성된 재난 스릴러 드라마다. 장르는 피카레스크로, 주인공 모두 악인이다. 형수(진선규 분), 주영(전종서 분), 극렬(장률 분)은 예상치 못한 대지진으로 한 건물에 갇힌다.
세 사람은 바깥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 속에 벗어나고 살아남기 위해 광기 어린 사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이기심을 드러내며 인간의 욕망과 밑바닥이 어디까지 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전 감독은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인간의 거짓말과 욕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살며 ‘혹시 나는 이런 모습을 가진 적은 없었나’ 생각했으면 싶었다”고 밝혔다.
곽 작가도 “악인만 나오는 시리즈를 만들면 큰 도전이 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며 “주인공이 다 악인인 점이 우리 작품의 재미 요소”라고 칭했다.
◆ 칸을 관통한 원테이크, 궁극 목표는?
원작은 동명의 단편 영화(이충현 감독)다. 원작을 장편화하는 아이디어는 제작사 대표로부터 나왔다. 이후 전 감독은 곽 작가, 최 작가와 함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곽 작가는 “장편이 워낙 완결성이 훌륭해 부담도 있었다”면서도 “몸값을 흥정하는 두 주인공의 역학관계를 뒤집어, 그들이 저글링 하듯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으로 쾌감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완결성을 가져가되, OTT 시리즈만의 재미를 담고자 결심’한 순간 창작의 고통이 시작됐다. 전 감독은 “안 풀리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함께 해결할 때 쾌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최 작가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고 했고, 곽 작가는 “원테이크 신이 있어서 동선도 중요했다. 이질감 없이 장면을 배치하는 방법 하나하나도 서로 토론하며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전 감독은 원작의 러닝타임 14분에서 주는 몰입도를 그대로 살리고자 각 회차를 모두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했다. 제작진들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전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테이크로 가야겠다고 여기고 시작했다”며 “자세히 보면 주요 인물들 주변을 카메라가 떠나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카메라가 유영하는 식의 움직임도 넣었다”고 요약했다.
원테이크 형식 또한 칸을 매료시킨 지점이었을까. 전 감독은 “해외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를 알아봐 줬다는 생각”이라며 “심사위원이 구성에 신선함을 느꼈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몸값’을 제작하며 추구했던 목표는 “재미”라고 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관객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오락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 감독)
<사진제공=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