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김수지기자] 음악이 '고독'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흔히 '네가 없어서 쓸쓸해'라는 답을 내리곤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곁에 없기에 외롭다는 것. 그래서일까. 애절한 발라드는 주로 헤어진 이후의 아픔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적이 말하는 고독은 낯설다. 그 흔한 남녀 간의 사랑에 안주(?)하지 않았다. 실연의 아픔으로 시작해 인생의 쓸쓸함까지 확장시켰다. 5집 앨범에 수록된 10개의 노래에서, 이적은 고독을 묻고, 탓하고, 단념하고, 마지막으로 삶의 본질에 다가간다.
"지금까지 전 사랑을 모토로 삼았었어요. 사랑이 있어 '다행이(다)'었고, 사랑이 없어 '그땐 미처 몰랐(지)'기도 했죠.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상투적인 느낌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나이에서 오는 고독, 그리고 인생에서 느끼는 고독을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겐 혼자 남은 쓸쓸함이며, 누군가에겐 외면받는 외로움이던 고독. 이적이 새롭게 정의한 고독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디스패치'가 물었고 이적이 노래로 답했다. 이번 앨범처럼, 때로는 담담하고 때로는 애잔하게 고독을 읊조렸다.
★ Track 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정규 5집 '고독의 의미' 타이틀곡. 묵직한 피아노 사운드 사이로 흐르는 이적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다시 돌아올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거라고 했잖아' 등의 가사로 누군가에게 버러진 이의 상실감과 원망을 담았다.
▶ Dispatch(이하 D) listen : 명불허전, 음유시인이다.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등의 가사가 가슴을 파고 든다. 버려진 이의 아픔이 멜로디로 전이된다.
▶ LEE JUCK(이하 L) SAY : "놀이공원에 버려진 아이를 생각했다. 돌아온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가만히 서 있는 아이 말이다. 그 감성을 헤어진 남녀에 입혀봤다. 녹음할 때는 엄마와 아이, 이별한 남녀를 함께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도 듣고 싶은 노래로 남았으면 하는 곡이다."
★ Track ② 누가 있나요=인생의 불안함을 담은 곡이다. '이 넓은 세상 위를 하루하루 비바람을 맞고 걸어요/ 혼자서 가는걸까 외쳐봐요/ 누가 있나요' 라는 가사로 공감대를 이끌었다. 공허함을 나타내기 위해 허공에 내지르는 듯한 창법을 택했다.
▶ D listen : 이적의 거침없는 보컬 스타일을 그리워한 리스너라면 100% 만족할 만한 곡이다. 기교없이 정직하게 뽑아내는 고음이 돋보인다. 쓸쓸함, 외로움, 두려움, 불안함이 공존하며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L SAY : "인생을 살면서 녹록지 않았던 감정들을 담았다. 광활한 황야를 홀로 걷는 것 같은 막막함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약간 후렴구에서 애원하고 절규하는 듯 노래를 불렀다. 이번 앨범에서 기념비적인 사운드 곡이 아닐까 싶다."
★ Track ③ 사랑이 뭐길래 (feat. Tiger JK)=이적과 타이거JK가 만났다. 록, 힙합, 일렉트로닉이 조화롭게 섞여 재미를 줬다. 특히 점점 고조되는 A파트에서 클럽 뮤직 스타일의 B파트로 전환되는 과정이 이채롭다.
▶ D listen : 이적표 실험 음악이다. 전매특허 발라드 장르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새롭다. 타이거JK와 대화하는 식으로 구성한 것도 흥미롭다. 이적이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묻고, 타이거JK가 답을 주는 형태였다. 이적의 음악도 트렌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L SAY : "데뷔 후 처음으로 트렌디한 사운드에 도전했다. 이런 음악도 내 방식대로 풀 수 있는지 시도해 봤다. 싸이가 탐을 내더라. 사실 이 노래에서는 타이거JK가 랩을 잘해줬다. 사실 먼저 피처링 제안이 들어와서 호흡을 맞췄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 Track ④ 이십년이 지난 뒤=비틀즈의 오마주다. 피아노와 드럼 만으로 소박한 사운드를 재현했다. 메시지는 인생이다. 이적이 지난 20년 음악 인생을 돌이켜 봤다. '어릴 때는 삶이 아주 길 것 같았지 / 이젠 두려울 만큼 짧다는 걸 알아' 등으로 자기고백을 했다.
▶ D listen : 멜로디도, 가사도, 대놓고 슬픔을 말하지 않는다. 노래를 하는 이적도 담담하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먹먹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인생의 허탈함과 남은 인생의 고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적이 말하고 싶은 고독의 의미 중 하나였다.
▶ L SAY : "20년 전 음악을 시작한 이후 빠르게 달려온 인생과 앞으로의 미래를 담아봤다. 눈 깜빡하면 60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곡이다. 내가 60살이 된 그 때,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담은 노래다."
★ Track ⑤ 비포 선라이즈=제목처럼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감성을 표현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남녀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곡은 보컬리스트 정인이 합류해 완성도가 높아졌다. 남자 키(Key) 노래에 합류에 고음을 쏟아내는 보컬이 놀랍다.
▶ D listen : 하이라이트는 이적과 정인이 하모니를 이루는 부분이다. 두 사람 모두 시원하게 내지르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서로의 목소리를 배려, 균형을 맞췄기 때문. 두 사람의 목소리에 취해 19금 가사도 편안하게 들릴 정도다.
▶ LEE SAY : "성숙한 듀엣곡을 하고 싶었다. 언젠가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이 서로를 못내 그리워하지만 함께 할 수 없음을 노래했다. 사실 여자가 소화하기에는 힘든 곡인데 정인이 정말 잘 해줬다. 둘이 소리를 밀어내는 방식이 잘 맞았던 것 같다."
★ Track ⑥ 뜨거운 것이 좋아=업템포 록 음악이다. 더운 여름을 정면돌파 하자는 기개를 담았다. 단순한 편성이지만 독특한 곡 진행이 인상적이다. 록 페스티벌에서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적합한 곡이다.
▶ D listen : 가사만 보면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더워 미치겠구나 사람들 한숨을 쉴 때 너무 더워' 등의 가사는 여름 노래같다. 하지만 이 곡은 이번 앨범에서 꼭 필요한 트랙이다. 우울한 감성의 노래 사이에서 유일하게 청량감을 주는 노래다.
▶ L SAY : "지난해 여름 록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얻었다. 야외 모인 관객들이 광적으로 점프를 하면서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가사도 여름 시점이다. 제목 '뜨거운 것이 좋아'처럼 지친 여름 열정을 불태우자는 내용을 담았다."
★ Track ⑦ 뭐가 보여=단조로운 사운드에서 악기 구성이 확장해가는 방식이 묵직하다. 기존 한국 음악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던 방식이다. 차분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앨범을 압도하고 있다.
▶ D listen : '뭐가 보여'는 이적이 말하고 싶은 고독이 무엇인지 대변해주는 곡이다. 마치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닫으려는 듯한 독백으로 채워 넣었다. 이적표 다크 음악을 사랑했던 리스너들이 찾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 L SAY : "디지털 싱글로는 낼 수 없는 곡이다. 단독으로 내기에는 무모한 감이 있다. 하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볼 때는 고독의 느낌을 이어갈 수 있는 곡이라서 필요했다. 어둡고, 장중한 노래인데 사운드적으로 새로운 형태라 만족스럽다."
★ Track ⑧ 숨바꼭질=댄서블한 비트와 록 음악이 만났다. 장난기 있는 리프로 시작해 신나게 리듬이 펼쳐지는 곡이다. 떠난 연인이 마치 숨바꼭질할 때처럼 다시 나타났으면 하고 바란다는 가사가 이어졌다.
▶ D listen : 이적이 노래하면 뻔한 이별 노래도 새롭다. 경쾌한 멜로디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슬픔을 담았다. 이를 어린 아이들의 숨박꼭질에 비유한 것도 이색적이다. 이적의 실력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 LEE SAY :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는데, 숨바꼭질 하는 것처럼 나타나줬으면 좋겠다는 가사를 썼다. 그 가사에 빠른 멜로디를 넣어봤다. 가사는 슬픈데 곡은 신난다. 이런 구성이 더 슬플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어봤다."
★ Track ⑨ 병='사랑이 뭐길래'에 이은 실험 뮤직이다.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와 음침한 가사 등으로 파격을 노래했다. 전위적인 편곡은 묘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또 한번 확장시키는 야식잠으로 꼽히고 있다.
▶ D listen : 투박하고 불친절한 노래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듯 쏟아내기도 한다. 예전 패닉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가사 역시 '사람들은 내게 다 병자라 하네 / 헐떡이는 숨결이 병이라 하네' 등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강조했다.
▶ L SAY : "패닉 2집에 담긴 곡들처럼 음산하고 기괴한 멜로디가 담겨있다. 패닉의 멜로디를 그리워 하는 골수팬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일각에서 말하는 '이적이 나이 먹더니 유해졌다'는 지적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 Track ⑩ 고독의 의미=마지막 트랙이자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노래다. 일렉트릭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이적의 쓸쓸한 보컬을 얹혔다. 여기에 철학적인 가사를 덧입혔다.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닌 곱씹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 D listen: 앨범의 문을 닫는 곡인 만큼 무게가 있다. '험한 파도에 휩쓸리는 배처럼 / 나는 그대와 멀어져만 가네요 / 그댄 아나요 내 고독의 의미를' 등의 가사는 시적이다. 이적에게 고독의 의미는 마침표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영원한 물음표라는 것을 말해줬다.
▶ L SAY :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독의 본질적인 의미를 풀어 봤다. 이 설명만 들으면 거창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려운 노래가 아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조차도 그 고독의 의미를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를 담으려 했다."
<사진제공=뮤직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