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나지연·김수지기자] '이센스 vs 개코', '쌈디 vs 스윙스'
대한민국 힙합이 '디스(Diss)'에 빠졌다. 개코, 쌈디(사이먼 디), 이센스, 스윙스 등 유명 랩퍼들이 서로 물고, 뜯는 디스전을 펼치고 있다. 모두 '컨트롤'이라는 곡을 다운받아 MIC를 잡았다. 욕설, 비하, 공격, 폭로 등 거침없는 가사로 주목을 끌고 있다.
'디스'(Diss)란 '무례' 혹은 '결례'을 뜻하는 '디스리스펙트'의 약자다. 상대를 비판하는 힙합 문화 중 하나다. 대중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힙합 마니아들은 '힙합은 역시 디스'라며 환대했다. 반대로 갑자기 일어난 격한 랩 배틀에 당황하는 대중도 많다.
사실 '디스'는 한국 힙합신에서 낯선 장면이 아니다. 최소 1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김진표(1998년)→유승준, DJ우지(1999년)→조PD·드렁큰타이거, 디지(2003년)→MC스나이퍼, 이하늘(2004년)→베이비복스, 타블로(2005년)→스컬, 마스타우(2006년)→드렁큰타이거, 60ROW(2007년)→조PD, 조PD(2008년)→지드래곤, DJ DOC(2010년)→강원래 등이 서로를 디스했다.
하지만 이번 디스전은 스케일부터 다르다. 단순 비난보다는 폭로에 가까운 내용이 많다. 이쯤되면 디스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어디까지가 디스고, 어디까지가 폭로일까. 디스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뜻과 종류, 형태, 표현 방법을 짚었다. 디스로 인한 부작용도 살폈다.
◆ "너희가 디스를 아느냐?"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직역하면 무례 혹은 결례다. 힙합계에서 상대 래퍼를 폄하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의 랩을 할 때 쓰는 용어다. 언뜻 보면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의 랩 실력을 경쟁하는 배틀 문화 중에 하나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8년 김진표가 먼저 시작했다. '진표생각2'를 통해 유승준을 디스했다. 유승준이 외치던 '웨스트 사이드'를 두고 '얼어죽을 웨스트 사이드만 외치지 말고 제대로 해봐'라고 비난했다. 이에 유승준은 2000년 '스로우 유어 핸즈 업'에서 '너희가 말하는 진짜 M.C. MIC 만 들면 너도나도 M.C. (중략) 난 랩 안해도 잘먹고 사네 JP'라고 받아쳤다.
세월이 지나며 디스곡 발표 형태도 달라졌다. 최근에는 SNS를 적극 활용한다. 디스곡 공개도, 감정 표현도 SNS를 이용한다. 예를 들면 이센스가 개코의 맞디스 곡을 받고 트위터에 "오케이. 성격 나오시네"라고 말하는 식이다.
SNS 디스곡이 앨범 디스와 다른 건 표현의 수위다. 심의가 없기에 거침없다. 욕설은 기본, 상대를 돼지, 개, 여우, 오리 등에 비유하거나 사기꾼, 약쟁이, 싸이코패스, 위선자, 양아치, 거지 등으로 낮춰 부르는 일도 허다하다.
결국 디스전의 승패는 가르는 건 실력이다. 리스너가 라임, 플로우, 랩 스킬 등을 비교하며 승자를 가린다. 한 힙합 레이블 관계자는 "디스는 랩퍼들이 자신의 주관을 즉흥적으로 표현하하는게 매력이다"며 "디스를 하는 과정에서 랩퍼의 스킬이 향상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 누구를 향해 디스하나?
디스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힙합 레이블간의 디스다. 아이돌 및 대중가요를 향한 비난도 랩퍼들의 단골 소재다. 사회적 부조리를 거론하는 디스도 있다. 마지막으로 2013년, 서로에 대한 폭로를 담은 디스전도 추가됐다.
"어떤 놈은 시를 읊듯 랩을 재미없게 go, 태극기 휘날리며 민족혼을 자극해, 아 근데 그 놈은 일본회사, 음반수익의 일부는 일본에 가" -TBNY, 차렷(최자 Part) 가사 中-
가장 흔한 디스는 힙합 레이블 간의 디스다. 최근 스윙스가 '두메인크루(어글리덕·테이크원)', 이센스가 '아메바컬처' 소속 랩퍼 개코를 디스한 것도 레이블간 디스에 포함된다. 이때는 주로 메이저 래퍼를 공격한다.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과거 사례도 마찬가지. 랩퍼 김디지는 조PD를 '디피디'라고 비유하며 디스했다. 'DJ 우지'는 드렁큰 타이거를, 'CB MASS'는 윤희중을 공격한 바 있다. 크루(Crew)간 디스전이 발발한 경우도 있다. '무브먼트' 크루의 TBNY는 '붓다베이비'의 MC 스나이퍼를 디스한 바 있다.
"SG워너비, 동방신기, 빅뱅같은 쓰레기가 trendy? 자꾸만 잘못가고 있는 한국 가요계" -60row, Stop ya music 가사 中-
아이돌 디스도 많다. 지난 21일 랩퍼 '야수'는 '선배님 안녕하세요'라는 스윙스 디스곡을 발표했다. 그중 '빅뱅' 태양의 신체 특정 부위를 언급하며 스윙스를 깎아 내렸다. 지난 2008년 조PD는 'we bigger bang than big bang' 이라며 지드래곤과 빅뱅을 디스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아이돌 가수와 대형 기획사는 단골 디스 대상이었다. 'god'와 박진영을 때린 박삿갓, 문희준을 공격한 김디지, 빅뱅·동방신기·손호영 등을 비난한 '60row'가 대표적인 예다. 'CB MASS'는 SM엔터테인먼트와 싸이더스 등 대형 기획사를 디스하기도 했다.
"성역화된 어떤 정보기관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말에 반대해온 국민들의 절반을 반체제 또는 빨갱이에 놀아난 꼭두각시로 봤단 사실에 분노할 것임" - 제리케이, 시국선언 가사 中-
부조리한 사회 고발도 디스의 한 종류다. 지난 18일 랩퍼 제리케이는 '시국선언'이라는 곡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를 비판했다. 랩퍼 일리닛은 2011년 '학교에서 뭘 배워'로 교육현실을, 랩퍼 팻두는 2011년 11월 '법을 바꾼 강아지 소망이'에서 동물학대 문제를 꼬집었다.
앞서 DJ DOC는 '포조리'를 통해 사회비판을 한 바 있다. 경찰을 낮춰 부르는 은어인 '짭새'를 가사에 사용해 부패 경찰에 대해 꼬집었다. 김디지는 '매드 불'이란 곡을 통해 광우병 사태를 비난했고, 박삿갓은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라는 곡을 통해 여성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 10억을 빚져, 니네 엄마 니네 누나 버는 돈 다 뺏기면서 살기 싫으면 닥치고 말 들으라는 니년, 내 가족 입에 또 담으면 그 땐 진짜 뒤져" - 이센스, 트루 스토리 가사 中-
이제는 서로에 대한 폭로도 디스의 새로운 방법이 됐다. 이센스는 지난 22일 '유 캔트 컨트롤 미'라는 곡을 통해 전소속사 '아메바 컬처'가 요구한 위약금, 계약 해지 사유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상대방 실력을 디스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폭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 "비판에서 폭로, 부작용 심각"
한국에 힙합이 뿌리 내린지 20여년이 됐다. 힙합이 성장하면서 힙합 문화인 '디스'도 함께 발전했다. 하지만 이번 디스전엔 심각한 부작용도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위약금, 계약위반 등 폭로가 주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랩퍼들의 발전을 위한 '디스'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야 보라색 돼지머리가 락이네 뭐네 어쩌네저쩌네 (중략) 내 입에 욕밖에 안나네" -김디지, 크게 라디오를 켜봐 가사中-
지난 2003년 김디지는 문희준 디스곡 '크게 라디오를 켜봐'를 내놨다. 하지만 비판 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보라색 돼지머리' 등의 가사는 충분히 상대방이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힙합의 문화인 디스보다는 악의적인 비난에 가깝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한 힙합 평론가는 "디스는 서로 랩 실력을 겨루고, 비판적인 수준에서 이뤄질 때 순기능이 발현될 수 있다"며 "단순 폭로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법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거론하는 건 상식 밖이다. 이는 상대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난' 밖에 되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언급했다.
"불편한 진실? 너흰 환희와 준희 진실이 없어, 그냥 너희들 뿐임 너에게 불편한 진실은 바로 나야" - 스윙스, 불편한 진실 가사 中-
단순히 유명세를 위한 디스도 경계 대상이다. 지난 2010년 스윙스는 '불편한 진실'이란 노래에서 故 최진실의 아이들 이름을 사용해 충격을 줬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가사였다. 당시 네티즌들은 '유족 폄하는 있을 수 없는 마케팅이다'라며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이센스, 쌈디, 개코, 스윙스가 참여한 이번 디스전도 마찬가지다. 데드피, 지백, 뉴올, 노지, 너티벌스, 솔키, 제이문 등 20팀이 넘는 랩퍼가 '컨트롤'을 이용해 앞다퉈 디스곡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디스전과 아무 관련이 없다. 유명세를 위해 숟가락만 얹은 셈이다.
결국 '디스'가 '디스'답기 위해선 '발전'을 위한 '디스'라는 게 선행 되어야 한다. 힙합이 가진 디스 문화의 본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상대의 실력을 꼬집고, 디스를 하며 실력을 함께 발전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흙탕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