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미겸기자] 처음에는 김태희의 연기력이 발목을 잡았다. 눈만 동그랗게 뜨는 연기와 과장된 사극톤이 질타의 대상이었다. 데뷔 초부터 발목잡던 연기력 논란이 다시 대두되면서 드라마는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김태희만 탓할 수 없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회를 거듭하면서 당초 기획 의도는 자취를 감췄다. 조선의 패션디자이너 장옥정의 삶은 사라졌고 요부 장희빈의 악행만 남았다. 기존의 악녀 이미지만 학습하고 있는 꼴이다.
설상가상 스토리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우연의 연속이었다. 개연성이 없는 전개로 힘이 빠지고 있다. 그 탓에 역사 드라마도, 멜로 드라마도 아닌 장르가 애매모호한 드라마가 돼버렸다.
SBS-TV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 논란의 드라마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연기력 논란이 묻힐 정도로 작가의 상상력 및 역사인식 부재 탓이 컸다. '장옥정'을 위기에 빠트린, 김태희보다 심각한 문제점 3가지다.
◆ "스토리, 이런 우연 또 있을까"
반복적인 우연이 계속되고 있다. 이순(유아인 분)과 장옥정(김태희 분)의 첫 만남이 그렇더니 장옥정의 복수까지 우연을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갈등이 해결되는 것도 우연이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극중 인물이 귀신처럼 나타나 엿듣고 대처하는 식이다.
장옥정과 대비 김씨(김선경 분)의 신경전이 대표적인 예다. 12회 대비 김씨가 장옥정에게 불임약을 먹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14회 장옥정이 임신한 상태로 말을 탔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그 때 마다 이순은 장옥정 편에 서서 대비 김씨에게 맞섰다.
로맨스 역시 수차례 우연의 만남으로 이뤄졌다. 4회 장옥정은 갑옷을 만들기 위해 동평군을 따라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길을 잃고 산을 헤매던 중 이순을 만났다. 이후 역적에게 습격을 당해 실신한 이순을 우연히 발견한 것도 장옥정이었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지나치게 우연에만 스토리를 끼어 맞추다 보니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설득력없는 전개 탓에 작품의 재미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쉬운 부분이다.
◆ "캐릭터, 전형적 요부로 급변"
극 초반만 해도 장옥정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옷에 대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新여성으로 그려졌다. 조선에선 유례가 없던 패션쇼를 기획했다. 갑옷을 만들기 위해 남장도 불사하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였다.
하지만 지금, 더이상 패션 디자이너 장옥정은 없다. 10회부터는 전형적인 요부로 급선회했다. 야심가 장현(성동일 분)과 손았고, 이내 중전 자리를 탐냈다. 초반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서로 동떨어진 인물로 보일 정도였다.
악행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15회에서는 인현이 만든 연잎밥에 몰래 독약을 탄 후 직접 먹는 자작극을 벌였다. 인현을 폐위시키기 위해서였다. 13회에서는 대비 김씨에게 모욕을 듣자 대비의 지밀상궁 뺨을 때렸다. 표독스러운 성격을 보여준 예였다.
이는 기획의도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당초 제작진은 "강인하고 현명한 장옥정을 그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존 드라마에서 숱하게 그려졌던 장희빈과 다른 점이 없었다. 재해석이 실종되면서 신선함도 떨어졌다.
◆ "시대배경, 역사 왜곡 무리수"
'장옥정'은 팩션 사극을 지향하고 있다. 시대와 배경, 인물은 역사에서 그대로 따왔다. 대신 경신환국 등 굵직한 사건에는 상상력을 덧붙였다. 하지만 상상력이 지나쳤다. 호칭, 신분 등 기초적인 역사 상식에서 벗어난 과한 연출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시호를 실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시호는 왕족, 고관대작, 유현 등이 '사망'한 후 내려지는 이름. 생전에는 불리지 않는 호칭이다. 그러나 '장옥정'은 인경왕후와 인현왕후를 각각 인경 아가씨와 인현 아가씨로 지칭하고 있다.
실제 역사와 어긋나는 무리수 전개도 잇따랐다. 장옥정이 편전으로 가 대소신료들 앞에서 호령하거나, 영의정이 이순을 회갑연에 초대해 역모를 벌이는 장면 등 납득하기 힘든 스토리를 이어갔다.
이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이어졌다. 제작진은 "시대적 배경과 극중 인물의 특성을 배려한 설정"이라고 해명했지만, 납득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한 시청자는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는 사극이다. 기본적인 호칭 정도는 정확히 파악하고 불러야되지 않겠냐"고 질책했다.
◆ "위기의 장옥정, 해결책은?"
사실 '장옥정'은 기대작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익숙한 장옥정을 또 다시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결과는 기대이하다. 허술한 스토리와 과장된 연출 등으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교수는 "또 장희빈을 다루는 만큼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수없이 리메이크됐던 인물들이 아니냐"면서 "'장옥정'에서는 재해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장희빈을 다룬다고 했지만 안일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제 필살기를 보여줄 때다. 월화 드라마 2위 자리를 놓고 KBS-2TV '상어'와 경쟁하는 중. 지난 달 27일 가까스로 동시간대 2위를 선점했지만, '상어'가 3일부터 성연 연기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 교수는 기획의도에 주목했다. "왜 장옥정을 타이틀로 걸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장옥정의 인생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흔한 궁중암투가 아닌 당시 봉건질서의 한계를 다뤄야 한다. 이 점이 이뤄진다면 멜로 드라마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