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오명주기자] 배우 김혜수는, 도도하다. 영화 '타짜'의 정마담이 그랬다. 그녀는 관능적이다. '도둑들'의 펩시처럼…. 그리고 매혹적이다. '관상'의 연홍, 그 자체였다.

사실, 그녀의 매력은 한 단어로 정의하긴 힘들다. 명백한 건, 어떤 옷을 입어도 김혜수라는 것. 김혜수처럼, 김혜수답게, 소화한다. 그것이 바로 이 배우의 아우라다.

김혜수는 이번 영화에서도 대체불가의 매력을 선보인다. 국가 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그녀는 IMF를 막으려는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으로 분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김혜수의 시작은, 분노였다. 흔한 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 20년 전, 그때(IMF)가 그랬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냉정했다. 때로는 무력감을 전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 (최국희 감독, 이하 '국부도'), 김혜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누가 입은 옷은 어때', 혹은 '누가 멋있더라'는 등의 후기를 나누잖아요. 그런데 '국부도'는 달랐죠. 경험이나 생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 처음은, 호기심

"그래, 그때 무슨 일이 (또) 있었지?"

김혜수는, 20년 전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IMF, 정리해고, 명예퇴직, 파산신청, 그리고 금모으기….

그는 당시에도 '잘나가는' 배우였다. 영화 '복수혈전'과 드라마 '미스&미스터'를 찍고 있었다. 1998년에는 토크쇼 '김혜수의 플러스유'를 이끌기도 했다.

"당시 저는 20대였고, 배우였습니다. 전 여전히 작품을 하고 있었고. 위기를 피부로 체감하진 못했습니다."

김혜수의 IMF는, 그야말로 간접경험이었다. 주변 지인의 변화를 목격하거나, 뉴스에서 실업의 고통을 전해듣거나, 그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가 알고 있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시나리오를 받았습니다. IMF 일주일 전의 상황이었죠.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몰랐던, 그 일주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김혜수는, 호흡을 잠시 가다듬었다.

◆ 그 다음은, 분노

"그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김혜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분노 지점은, '무지'가 아니라 '무시'였다.

당시 정부는 외환 위기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IMF 협상 또한 비밀리에 진행했다. 그 사이, 뉴스는 장미빛 1998을 예고했다. 경기가 곧 회복될거라는 희.망.고.문.

김혜수는 단숨에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녀가 알던 IMF가 아니었다. 생소했다. 아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심장이 뛰었다. 분노했고, 또 먹먹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러다 자세를 바로잡고 정독했습니다. 마지막엔 화가 나서 잠을 못 잘 정도였죠."

‘국부도’는 외환 위기 당시 <비공개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를 모티브로 삼았다. 김혜수가 맡은 역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로, 당시 국가 부도를 예측한 그룹도 있었다. 그러나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였다. 알리지 않았을까, 알릴 수 없었을까.

"이 영화를 할 수 있을까,를 판단하기 전에 결심했습니다. '이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요." 

김혜수는 준비했다.

◆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7년, 정부는 (미리) 알리지 않았다. 그 사이, 어느 아버지는 어음을 받았고, 어느 아버지는 보증을 섰다. 경기가 곧 반등할 거라는 경제 부처의 말(뉴스)에 기대를 걸었다.

2018년, 김혜수는 (미리) 알려야 했다.

"이런 영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잘 준비하고 싶었어요. 과거의 일로 잊혀질 건 아니니까요." 

김혜수는 전문가를 찾아 다녔다. 경제 지식이 필요했다. 강의도 부탁했다. 당시 배경을 알아야 했다. 그렇게, 스스로 경제인이 되어야 했다.

"단지 대사만 숙지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상황에 대해 알아야 했죠. 경제 용어 자체가 어렵잖아요.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뱅상 카셀과의 협상 장면. 김혜수는 전문용어가 가득한 대사를 영어로 소화해야 했다. 이때 김혜수는 연기가 아닌 연습을 반복했다. 

"말이 부담스러우면 연기를 할 수 없어요. 번역을 하고, 단어를 바꿔보고, 톤을 연구하고,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말이 입에 붙을 때까지요."

◆ 그렇게, '한시현'이 됐다

그렇게 한시현이 탄생했다. 아니, 그녀가 한시현이 됐다.

한시현은 가공의 인물이다. 당시 한국은행에는 '그녀'가 없었다. (일부 언론은 "한국은행 팀장이 IMF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말이 안된다"며 팩트 체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시현의 실존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가상의 캐릭터가 말하는 것들…. 김혜수가 설명했다.

"한시현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단지,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죠.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김혜수는, 할 말은 하는 한시현을 만들었다. 그는 한보 사태를 꼬집는다. 관치금융의 폐해를 일갈한다. "빌린 돈을 갚을 생각없이 펑펑 쓰다 이 꼴이 났다"고 지적했다.

물러서지 않는 한시현도 만들었다. IMF 총리의 무리한 요구에 당당히 맞섰다. 재정부 차관(조우진 분)을 향해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며 분노도 터뜨렸다.

한시현은 막지 못했다. 바꾸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막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이 헛수고는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배우의 옷이나 미모가 아닌, 과거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면 어떨까요. 영화의 메시지는 현재에도 유효하니까요."

<사진=영화 스틸컷, 호두앤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