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오열

이미, 검증된 눈물입니다. (토마토, 1999)

눈빛 연기

17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와니와 준하, 2001)

걸크러쉬

진작에 터뜨렸고요. (미스터Q, 1998)

기절초풍

한두 번 놀란 게 아닙니다. (신의, 2012)

폭풍열연

언제나 몸을 사리지 않았고요. (앵그리맘, 2015)

   

깨발랄

   

흥희선은 공식입니다. (품위있는 그녀, 2017)

[Dispatch=박혜진기자] “제9의 전성기”, “또 다른 발견”, "발전된 연기", “물오른 연기력”…

배우 김희선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가 브라운관에 복귀할 때마다, '재발견'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하지만 다소 야박한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김희선은 늘 연기를 '잘' 해왔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한 것뿐. 그녀의 얼굴만 쳐다본 게 사실이다.

물론, 김희선의 시작은 얼굴이었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로 'X세대'의 아이콘이 됐다.

당시 그녀는 외모로 연기했다. (브라운관에) 얼굴만 보여주면 됐다. 가장 예쁜 얼굴, 가장 슬픈 얼굴, 가장 발랄한 얼굴, 가장 어두운 얼굴. 그것이 연기였다.

'세상 끝까지' (1998년)

'해바라기' (1998년)

'안녕 내 사랑' (1999년)

그때는, 그걸로 충분했다. 김희선이 얼굴을 내밀면, 시청률은 30%를 뚫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8편의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켰다.

(세상 끝까지-30%, 웨딩드레스-32%, 안녕 내 사랑 34%, 프로포즈-35%, 해바라기-38%, 미스터Q-45%, 머나먼 나라-47%, 토마토-52%)

그래도 김희선은 목말랐다. 일종의 연기에 대한 갈증….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화 '와니와 준하'다. 그녀는 얼굴이 아닌 감정으로 스크린을 적셨다.

'와니와 준하' (2001년)

시련도 있었다. 자기 복제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 2003년 '요조숙녀', '슬픈연가', '스마일 어게인'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슬픈연가' (2005년)

'스마일 어게인' (2006년)

김희선은 '트렌디'한 연기자다. 그러나 유행은 쉽게 바뀐다. 반복은 식상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더는 그녀의 연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드라마가 실패하자, 비난도 쏟아졌다.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얼굴만 예쁜 배우'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김희선은 지쳤고, 결혼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김희선이 돌아왔다. 더 정확히, 김희선이 (다시) 도전했다. 드라마 '신의'(2012년)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시간을 겪었다. 결혼의 시간, 출산의 시간, 육아의 시간…. 이 시간들은 경험을 만들었다. 그 경험들은 내공으로 연결됐다.

"선택할 수 있는 역할은 좁아졌죠. 아줌마 배우니까요.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은 넓어졌습니다. 아줌마 배우니까요." (김희선)

김희선은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하지 않았던 것, 하지 못했던 것에 도전했다. '참 좋은 시절'에서 참 구수한 사투리도 선보였고, '앵그리맘'에선 화난 엄마로 분했다.

'참좋은 시절' (2014년)

'앵그리맘' (2015년)

김희선은 더 이상 자신의 연기를 답습하지 않았다. 참신한 이야기,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 나섰다. 장르를 넓혔고, 감정을 조절했다.

'품위있는 그녀’(2017년)에선 절제의 멋을 선사했다. (감정의) 폭발보다 자제가 무섭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신을 죽이면서 상대를 살리는 법도 알려줬다.

 '나인룸'에서는 변신의 맛을 선보였다. 변호사와 사형수, 1인 2역에 도전한 것. 완벽히 다른 두 삶을, 완전히 다른 두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어느 기사의 댓글이다.

"김희선은 그래도, 꾸준히 연기해서 좋다. 매년 다른 드라마에 나오고, 매년 다른 연기를 한다. 이제 얼굴이 아니라 연기가 보인다." (어느 네티즌)

김희선은 늘, '도전'했다. 그렇게, '발전'했다. '발견'하지 못한 건, 우리다.

"완전히 다른 두 여자의 삶을 동시에 연기하는 건 처음입니다. 무조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니까요." (김희선)

<사진=디스패치DB, 방송사 드라마 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