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 알고보니 그녀는 베프를 짝사랑한다. 이 남자, 여자를 얻기 위해 작업(?)에 들어간다. 순조롭게 일이 풀려가던 중, 한 고등학생이 찾아온다. 아들이란다. 이 남자, 아들을 위해 여자를 포기할 것인가?
어느 로맨틱 코미디의 시놉시스다. 뻔하다 못해 진부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률 20%를 넘으며 순항했다. 식상하다는 평가는 없었다. 오히려 갖가지 신드롬까지 만들었다. 출연배우는 하나같이 주목받았고, 대사는 곧 유행어가 됐다.
이 뻔한 이야기가 어떻게 펀한 드라마로 재탄생했을까. 결국, 김은숙의 품격이었다. 해묵은 소재도 색다른 느낌으로 풀어내는 그의 화법이 시청자를 사로 잡았다. 거기에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 김하늘, 김정난, 윤세아, 윤진이까지, 누구 하나 버릴 캐릭터가 없었다.
SBS-TV '신사의 품격'(이하 '신사')이 남긴 로코의 품격을 되짚어봤다.

◆ 발상전환 = 기존 로코 공식을 180도 뒤집었다. 불혹의 로맨스부터가 역발상이었다. 사실 로코는 2030 세대의 전유물. 역대 40대의 사랑 이야기는 없었다. 이때 '신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꽃중년에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발칙한 로코가 만들어졌다. 로코의 영역을 확장시킨 셈이다.
짝사랑 주객전도도 인상적이었다. '짝사랑=가슴앓이'로 통했던 로코 공식을 깨트렸다. '신사'에서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갑'이다. 짝사랑을 선전포고할 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하다. 주도권 파괴로 진부한 짝사랑을 남다르게 표현했다.
신파도 역이용했다. 주인공의 아픔을 코믹으로 승화시켰다. 김도진의 기억상실증이 대표적인 예. '신사'는 로코의 해묵은 소재인 기억상실을 역이용(?)했다. 반복된 프로포즈에 대한 짜증에 "내가 그랬나"하고 넘기는 무기가 됐다. 예상과 빗가나는 재미를 주는 요소였다.

◆ 生캐릭터 = 개성만점 캐릭터의 향연이었다. 주인공부터 조연까지, 버리는 캐릭터가 없었다. '꽃다운 그' 김도진, '윤리여신' 서이수, '청담동 마녀' 김민숙 등 캐릭터별 고유명사가 있을 정도였다. 귀요미 임메아리부터 섹시 홍세라 등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도 눈에 띄었다.
캐릭터가 살아나니 배우도 주목받았다. 재발견의 대표주자는 장동건. '신사'로 이미지 변신에성공했다. 한결 유쾌하고 재기발랄해졌다. 김민종, 김정난, 윤세라 등도 재조명받았다. 캐릭터 맞춤형 연기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신인들은 스타로 발돋움했다. 윤진이는 '신사' 단 한 편으로 안방극장 블루칩이 됐다.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씨엔블루' 이종현의 경우 연기돌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기력 논란없이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거뒀다.
◆ 명품대사 = 명대사 퍼레이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걸로체' 등 유행어는 기본. 대사 하나로 코믹부터 감동까지 넘나들었다. 김은숙표 쫄깃한 대사가 여지없이 힘을 발휘한 셈. 김은숙 작가 특유의 풍부한 표현력은 남녀노소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명대사가 가장 많이 등장한 캐릭터는 김도진. 단순 유행어 뿐 아니라 깊이있는 대사도 선보였다. "난 그저께보다 어제가, 어제보단 오늘이 젤 성숙하니까",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다만 나이 들 뿐이다", "짝사랑을 시작해보려고요" 등으로 매회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19금 대사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나랑 잘래요?", "어떻게 다른 여자랑 잘 수 있냐?" 등의 대사는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성인 남녀의 지지를 받았다. 발칙한 로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