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나지연·김수지기자] 저는 아이돌 그룹 S의 팬사이트를 운영하는 임원입니다. 제 역할은 '조공' 운영진입니다. 쉽게 말해 '조공녀'라고 하는데요. 조공비 모금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조공'이 뭐냐고요? 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스타에게 선물하는 걸 말합니다. 주로 아이돌 가수의 컴백, 막방, 촬영, 방송,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맞춰 이루어지죠. 그냥 대충 선물 하나 사서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조공의 하이라이트인 '탄신일' 조공을 예로 들어볼까요? 다른 때보다 화려한 선물을 준비해야하는 날이죠. 우선 저를 포함한 조공 운영진을 선정해야 합니다. 조공비를 받을 수 있는 전용 계좌도 만들어야 하죠. 게다가 회원과 오빠 모두가 만족할 선물을 고른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은 조공을 '빠순이'의 호들갑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음악, 멋진 연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조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좀 더 교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요. 조공의 세계가 좀 더 궁금하다고요? 지금 공개합니다.
◆ "총알 좀 주세요"
조공의 첫 시작은 총알 모으기입니다. 아, 총알이 뭐냐고요? 바로 조공을 위해 팬들이 모으는 돈을 일컫는 말이죠. 총알이 있어야 조공도 푸짐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은 명품 옷이나 가방이 기본이에요. 오빠가 직접 쓸 의미있는 선물을 해야 하니까요.
각 회원들의 조공비 지원 금액은 천차만별입니다. 초, 중, 고교 학생들은 알바비를 모아 내는데요. 적게는 1만원~3만원까지 입금 하는게 보통입니다. 이모 팬들은 조금 더 화끈합니다. 10만원에서 50만원가량 지원하는데요. 가끔 100만원을 쾌척(?)하는 이모들도 있어요.
한류열풍이 분 후, 해외 팬들의 조공 참여도도 높아졌는데요. 이메일로 송금할 수 있는 '페이팔'을 통해 조공비를 입금합니다. 금액은 이모 팬들 수준으로 보내주고 있어요. 이렇게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조공비는 대략 200만원을 훌쩍 넘는답니다.
◆ "조공템, 무엇을 살까요?"
조공비가 마련됐다면, 다음은 조공템 선정이에요. 얼마전 모 아이돌 팬클럽에서는 억대의 외제차를 선물했다고도 하더군요. 인기 절정의 그룹이라 팬들도 많고, 총알은 든든했겠죠. 반면 아직 우리 오빠는 신인급에 가까워요. 그렇다고 질 수는 없죠. 대신 아이템 선정에 신중 또 신중을 기울였답니다.
조공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의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이번 조공템은 백팩과 옷으로 결정했어요. 오빠의 '간지'를 한단계 업 시켜줄 유행 아이템인데요. 현빈, 장동건이 공항에서 맸다던 가죽 백팩과 유명 디자이너와 캐쥬얼 브랜드가 콜라보레이션한 티셔츠를 샀어요. 여기에 오빠 얼굴이 그려진 양말, 수건, 모자는 기본으로 세팅 했죠.
메인 조공템이 확정되면 도시락과 케이크를 주문해야 해요. 요즘은 도시락 조공이 조금 흔하죠? 그래서 우린 새로운 메뉴와 포장을 내세운 신흥 도시락집을 찾았죠. 케이크 역시 특별한 것으로 골랐는데요. 컴백 때는 오빠의 새 앨범 재킷에서 본 뜬 피규어를 기본으로 넣을 예정입니다.
◆ "선물, 그 때 그 때 달라요"
언제 조공을 하느냐고요? 컴백, 생일, 제작 발표회, 촬영 현장 등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요.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사항. 오빠만 챙기면 안되요. 주변에서 힘쓰고 있는 스태프들까지 챙겨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오빠 '왕따' 안되요.
제작 발표회나 기자 간담회 등 공식행사에서는 기자들을 위한 물품도 챙깁니다.우리 오빠 기사 잘 써달라는 의미로 선물을 하는거죠. 이럴 땐 현장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음료수나 쿠키 등을 준비합니다. 오빠의 얼굴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는 센스도 잊지말아야죠. 그래야 기억할테니까요.
밥차를 대동할 때도 있어요. 드라마 촬영 때 자주 이용하는데요. 촬영장은 대기 시간도 많고, 분량도 많아요.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 힘들죠. 미리 밥차 아저씨에게 오빠가 좋아할 반찬과 디저트를 준비시킵니다. 스태프들과 함께 맛있게 밥을 먹는 오빠를 상상만 해도 너무나 뿌듯하네요.
◆ "우리가 기다리는 건, 짹짹이"
기다리던 조공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준비해 둔 아이템을 정성스럽게 옮깁니다. 아침에 소속사 관계자와 다시 한 번 연락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오빠들의 스케줄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관계자와 만나서 조공을 전달할때 인증샷 올리는 것도 부탁해야겠죠?
드디어 오빠의 '짹짹이'가 터졌어요. 아, 짹짹이가 뭐냐고요? 오빠가 조공템을 직접 들고 찍은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려주는거죠. 이번 오빠의 인증샷에는 도시락과 케이크를 먹는 모습까지 담겨있네요. 이 정도면 조공에 참여한 모든 팬들도 만족했겠네요.
오빠의 짹짹이가 터졌으니 이젠 제가 조공떼샷을 공개할 차례에요. 선물을 사는 과정에서부터 배달까지 조공의 전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둬서 팬들에게 공개하는 건데요. 여기에 선물을 선택한 이유를 덧붙이는 건 필수입니다. 그래야 팬들도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알테니까요.
◆ "조공, 먹튀 조심하세요"
조공 떼샷도 올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산 내역을 공개하는 일입니다. 먹튀와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서인데요. 과거 T 팬클럽 회장이 조공비를 모아 먹튀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는 팬클럽마다 영수증을 전부 공개하는게 원칙입니다.
간혹 해외 팬들의 먹튀 사례도 있는데요. 지난해 모 그룹의 중국 팬들이 그랬다고해요. 일반팬들에게 조공비를 거둔 뒤 명품을 사고, 인증샷만 올린 뒤 다시 반품해 돈을 가로챈거죠. 피해 금액은 1,000만원이 더 넘었을 거라고 하던데요.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래서 정산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회원들이 입금한 계좌 내역을 캡처하고 총액, 사용한 돈, 남은 돈을 빠짐없이 공개하죠. 한 치의 의심도 남겨서는 안되니까요. 물품 영수증도 날짜별로 첨부해야 하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어요. 제가 조공을 위해 사용한 운반비, 간식비는 공제할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오빠를 위한 일이니, 이 정도는 참아야겠죠?
◆ "빠순이니까? 조공도 문화"
조공 떼샷과 정산 내역을 게시판에 올리면, 수많은 팬들의 댓글이 달립니다. 그런데 그 중엔 꼭 이런 댓글이 있어요. "부모님에게나 한 번 이렇게 해봐라"라는 충고들이죠. 물론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 그렇지만 색안경은 끼고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응원해주고, 힘을 북돋아 주려던 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요즘은 조공 문화도 많이 변했어요. 돈으로만 조공하는 시대는 지났거든요. 먹튀, 명품 조공 논란 이후 팬클럽들의 자세도 많이 달라졌답니다. 돈을 모아 불우한 곳에 쌀 화환을 기부하기도 하고요. 팬들끼리 자발적으로 헌혈증을 모으기도 해요. 삼삼오오 모여 봉사활동을 펼치는 팬클럽들도 많아졌어요.
앞으로 조공도 문화로 자리잡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나의 트렌드가 되는거죠. 요즘엔 연예인들도 팬들을 위해 역조공을 하기도 하는데요. 스타가 직접 준비한 초콜릿과 부채, 음료 등을 받아본 적이 저도 있어요. 서로서로 배려하고, 작은 것 하나도 챙겨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팬과 연예인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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