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강내리기자] 서울 미아리에 사는 김성한(45·가명) 씨. 그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24시간 동안 일해 손에 쥔 돈은 8만 원이다. 근로기준법상 시간당 최저임금 4,580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당초 계약서와 달랐지만, 따질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물어보면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응수, 면박만 당할 뿐이었다. 다음에 또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드라마 보조 출연자다. 행인1, 포졸3, 손님7 등을 맡았지만 그마저도 통편집 당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문제는 방송 분량이 아니었다. 극 중 배역만큼 촬영장에서도 소외됐다. 촬영 스케줄부터 출연료까지 배려받지 못했다.
비단 김 씨 만의 일이 아니었다. 드라마 보조 출연자 상당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 "30분 만에 다시 촬영장 집결"
촬영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대부분 보조 출연자들이다. 그때부터 무조건 대기 모드다. 먼저 제작진이 도착해 촬영 세트를 준비할 때까지 기다려야하고 자기 이름이 불리기까지 상시 대기해야한다.
"보조 출연자들은 최소 1시간부터 많게는 무한정 기다려야해요. 헤어와 메이크업 등 촬영 준비를 다 마친 후에도 말이죠. 그때까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는 없어요. 우리는 소모품이니까요."
촬영 일정도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다. '각시탈' 보조 출연자 A씨의 경우 지난 17일 합천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연결신이 걸려 다시 합천에 와야한다는 통보를 받고 30분 만에 다시 합천행 버스에 탔다. 그리고 사고를 당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보통 하루 전날 급히 연락을 받고 촬영하는 식이었다. A씨와 함께 사고를 당한 B씨도 "연결신에 걸리는 경우 부르는 즉시 촬영장에 가야한다"며 "지방 촬영의 경우 이동거리도 짧지 않아 무리가 가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덧붙했다.
◆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
그에 따른 보수도 최저 중의 최저였다. 여러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C씨는 모집 광고와 다른 출연료를 받아왔다. 종편 채널A '불후의 명작' 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9~10만원, 7시 이후는 야간수당 추가지급, 자정이 지나면 하루치 일당을 준다'는 모집광고를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당시 C씨는 약 20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촬영에 투입됐다. 하지만 7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세금 3%를 제하고 당일 출연료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10%를 다시 뗀 금액이었다. 또 식대비 역시 별도였다. 계약 당시에는 듣지 못한 조건들이었다.
"오전 4시 30분에 여의도에 집합해 지방 세트장으로 갔어요. 아침부터 촬영을 시작해 오후 11시가 끝났어요. 한데 지역 유지가 나오는 신이 필요하다고 해 저같은 50대 이상은 더 남았죠. 그렇게 촬영은 새벽 2시에 끝났어요. 한데 그 댓가가 7만원이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드라마 제작 구조 때문이었다. 방송국 자체 제작이 아닌 경우 외주 제작사가 담당한다. 하지만 보조 출연자는 용역업체에서 따로 관리한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다보니 임금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그 마저도 기준이 불명확해 인지하고 있는 출연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 "가족 생각에 그만둘 수 없어"
열악한 환경이지만 쉽게 그만 둘 수도 없었다. 물론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에 촬영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생업 때문인 사람이 많았다. 엑스트라 출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비정규직으로 단기 알바를 뛰는 식이었다.
한 엑스트라는 "보조 출연은 단기 계약이 가능하고 특별한 기술을 필요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도 한다"며 "그 중 남자 보조출연자의 경우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보조 출연자들이 이 일은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계기는 각기 달랐다. 또 목표도 달랐다. 하지만 녹록치 않았던 근무 환경은 이들의 꿈까지 일시정지시켰다. 그 누구 하나,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기억 못하는 엑스트라였지만 드라마 곳곳에는 그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해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또 보조출연자들의 실상을 알게 되니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생업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제공=사고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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