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강내리기자] "잠자리에 누우면 사고 당시의 꿈을 꿔요. 그러다 깜짝 놀라 일어납니다. 하지만 깨어있을 때도 괴로워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마냥 기다려야하거든요. 우리는 촬영장에서도 그러더니 다쳐서도 늘 대기 상태네요."
서울 대방동의 한 병원에서 만난 A씨. 그는 KBS-2TV '각시탈'(제작 팬엔터테인먼트) 보조 출연자다. 서울과 합천을 오가며 약 한 달동안 촬영했고, 지난 달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골절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보다 아픈 건 마음에 입은 상처다. 물질적인 보상은 보험절차를 통해 받기로 했다. 단, 사고에 대한 사과는 아직 듣지 못했다. 해당 드라마 작가와 감독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위로는 했지만, 정작 드라마를 제작하는 '팬엔터' 관계자가 찾아온 적은 없다.
사고 발생 이후, '각시탈' 사고 피해자들을 병원에서 만났다. 그들에게서 사고 경위 및 후속 조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조 출연자들은 사고 후 후속 조치 과정에서도 소외되고 있었다.
◆ "촬영 스케줄 맞추려고…무리한 주행, 사고"
4월 18일, 새벽 5시 30분 경상남도 합천의 산비탈길. 남자 보조 출연자 30명이 탑승한 버스가 전복됐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했고, 3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가 밝힌 사고 원인은 제동장치 이상.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촉박한 스케줄이 사고를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시간 및 거리를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운행했다는 것. 보조 출연자 A씨는 "새벽 1시에 여의도에서 출발했다. 촬영 시간에 쫓기다보니 평소 다니던 길 대신 지름길로 가다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도로는 평소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이다. 사고버스는 T자 도로를 빠른 속도로 주행하던 중 급히 좌회전을 하면서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즉, 시야확보가 안된 새벽 시간 운전이라면 상당히 주의가 요구되는 도로라는 설명이다.
A씨는 "각시탈 촬영을 위해 합천을 수십 번 오갔지만 사고가 난 그 길은 처음 본 도로였다"면서 "좀 위험해도 약 30km 정도 절약된다고 들었다. 여기에 새벽길을 100km 이상으로 달린 것 같다. 초행길에 과속을 하다보니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사람이 다쳤는데…사고처리 보상, 늑장대응"
사고 직후 부상자들은 합천 인근 병원에서 임시 치료를 받았다. 중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보조 출연자들은 다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고, 대방동의 한 병원에 도착했다. 사고 발생 7시간이 지나서야 수술 및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사고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B씨는 "사고가 일어난 직후에는 다들 정신이 없었다. 치료를 받는 게 우선이었다"면서 "하지만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났고, 제작사 측에선 연락도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고 발생 후 병원을 찾은 사람은 하청업체인 '태양기획' 관계자, '동백관광'에서 보험을 처리하는 직원 등이 전부였다. 병원에서 만난 C씨에 따르면, 용역을 맡은 태양기획 측에서 치료비 및 입원비에 대한 보장만 하고 간 게 전부다.
"당연히 교통사고가 났으니 버스회사 측에서 인사사고에 대한 책임은 지겠죠. 하지만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팬엔터 측에서는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얼굴 한 번 비춘 적 없습니다. 그 회사 드라마를 찍다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데…."
◆ "제작사, 말로만 보상…사고 이후 보도자료만"
'각시탈'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사고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치료와 후속 조치에 심혈을 기울여 더이상의 피해와 상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은 지난달 24일 공식적으로 재개됐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제작사의 태도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팬엔터테인먼트'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감을 표출했다. 보상문제는 제쳐두고라도, 피해자에 대한 위로나 사과 등 진심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
이는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의 구조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보조 출연자 섭외가 하청에 재하청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팬엔터가 태양기획에 하청을 주면, 태양기획이 또 다른 용역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식이다.
보조 출연자 A씨는 "이런 사고가 나면 서로 책임 떠밀기에 급급하다"면서 "심지어 하청에 하청을 받으면 고용 계약서 자체를 안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사고가 나면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떠민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도의적으로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몸보다 마음 상처…일자리 안줄까 두려워"
향후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동백관광' 측의 보험회사 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보조 출연자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교통사고 후유증은 얼마나 될지, 또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지…. 모든 게 미지수다.
게다가 보조 출연자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나 다름없다. 보상 협의 과정에서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B씨는 "제작사의 위로금은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그냥 보험회사가 지급하는 치료비와 합의금만 제대로 나오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는 제작사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했다. 실제로 '디스패치'가 보상 문제 등을 취재하는 동안,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들이 받은 제 3의 불이익을 두려워했다. 보조 출연자의 현실이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련 보도 이후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때문이다.
"몸이 받은 상처보다 더 큰 건 마음이 받는 상처입니다. 그들은 단지, 일당 8만원 짜리 보조 출연자로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요. 단 1초가 나오더라도 드라마에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성의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그것 밖에 없어요."
<사진제공=사고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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