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사실 고백하건데, 정려원을 만난다니 덜컥 겁이 났다. '김구라식' 질문을 던졌다간 오히려 내가 당하지 않을까? 머리 속에 그녀의 반응이 훤히 그려졌다.
"What? 지금 이 기자 뭐라는 거니? 이런 시베리아 허스키~"
게다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친구와 영어로 통화 중이었다. 그것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또한 검지 손가락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Oh my Godness! 솰라 솰라 솰라~"
표정과 손짓, 말투까지 영락없는 여치였다. 기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손한(?) 자세로 '인터뷰이'를 맞았다. 그리고 '칭찬모드'로 여치, 아니 려원의 기분을 맞췄다.
"어쩜 연기가 그렇게 리얼하세요? 원래, 쪼~옴 거칠죠?"
▶ "려원은 소심한 여자…여치를 닮고 싶었다"
이렇게 욕을 맛깔스럽고 사랑스럽게 했던 여배우가 있었던가. 정려원이라면 가능하다고, 여치와 닮았으니 당연할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정려원의 말을 빌리자면 려원과 여치의 싱크로율은 0%. 전혀 공통점이 없는 극과 극의 성격이란다.
"못믿겠지만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있었어요.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삶이 최선이라 여겼습니다.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밖으로 풀지 못하고 안으로 삭이는 스타일 알죠? 그렇게 혼자 속만 태웠습니다."
그래서일까. 정려원은 자신과 다른 '백여치'에게 끌렸다. 너무나 달랐기에, 너무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뼛속까지 여치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비웠다. 빨갛게 물을 들였고, 인터넷에서 욕을 찾았다. 겉부터 속까지, 철저히 '여치'로 빙의했다.
"초한지와 여치는 제게 힐링이었어요. 담아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됐죠. 때로는 직설적인 감정표현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보듬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 "가수에서 배우로…텃세에 상처 받았지만"
사실은 소심한 성격,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 놓는다. 솔직히 의아했다. 적어도 연예계에서 그녀는 굴곡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지난 2000년 그룹 '샤크라'로 데뷔해 스타덤에 올랐고,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연기자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3년의 시간을 꺼냈다. 정려원이 연기자로 데뷔한건 지난 2002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위 말하는 '배우 텃세'를 겪었다. 오디션에서 연기가 아닌 노래를 불러야했고, 캐스팅 후에도 현장에서 소외를 당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어요. 한없이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럴 만도 했다. 그때 정려원은 고작 21살.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렸고, 겪어보지도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도 본인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그때는 어려서 더 그렇게 느꼈나보다"라고 하지만, 그때는 "나 나 때문이야"라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 "부도수표가 되더라도…나는 정려원"
자책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마침내 려원은 '김삼순'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이후 확실한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 드라마 '가을소나기', '자명고'는 굴욕이었고, 영화 '두 얼굴의 여친', '김씨표류기', '네버엔딩스토리'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늘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쉽지는 않냐고 질문했다.
"배우에게 작품은 나이테와 같다고 생각해요. 한겹 한겹 감싸는거죠.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배운게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정말 내 머리가 기억을 못해도 몸은 기억하더라고요. 연기할 때 큰 재산이에요. 성적만 아쉬웠던 것 같아요."
흥행배우라는 타이틀, 얻고 싶지는 않았을까. 계속되는 질문에 정려원은 쐐기를 박았다. 그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 끝이 허무하다"며 "돈 때문에 인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운 작품을 하는 것보다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행복한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재정비 마친 30대…나는 강해졌다"
다시 한 번 고백하건데, 그녀를 만나기 전 일종의 '선입견'에 빠져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개성있는,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인…. 그런 여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정려원에 대한 고정관념은 하나씩 지워졌다.
그 첫번째가 착한여자 컴플렉스다. 그는 상처를 입을 때마다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소심쟁이였다. 여치로 산지 4개월. 정려원은 착한 컴플렉스를 버리고 여치를 품었다. 남들의 시선에 움추리지도, 혼자서 삭이지도 않으려고 한다.
노력하는 스타라는 것, 도전하는 배우라는 것도 알게 됐다. 캐릭터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스타일이었다. 연기를 돈이나 인기의 수단으로 생각지도 않았다.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늘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려원은 이제 강해지려고 한다. 지금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다. 희망적이다. '사고뭉치' 여치가 마지막 천하그룹의 주인이 되었던 것처럼, 려원은 또 한번 대중에게 강펀치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려원으로 살았다면, 이젠 여치처럼 살려고 해요. 당당하고, 자신있게!"
<글=서보현기자, 사진=김용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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