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척 잘하고 있고,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게 청춘이든, 우리 부모 세대든,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도 '잘 살고 있으니 힘내라'고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불현듯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대사로 히트쳤던 광고가 떠올랐다. IMF 때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북돋웠던 그 말 한마디의 위력은 거셌다.

지난 11일 끝난 KBS 2TV 월화극 '쌈, 마이웨이'도 같은 효과를 냈다. 지친 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슴을 쫙 펴라고 응원했다. "못 먹어도 고(GO)!"를 외쳤고, "사고 쳐야 청춘"이라고 대차게 말했다.

12일 여의도서 만난 작가 임상춘은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전거에 바람을 넣는 것처럼 사람들을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임 작가는 '쌈, 마이웨이'의 '설희'와 같은 모습이었다. 여리고 하늘하늘한 소녀. 그런 그가 대본에서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필력을 과시했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이게 첫번째로 쓴 16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다. 방송가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미니시리즈 하나 썼는데 인터뷰를 하면 너무 건방질 것 같다"며 주저하던 임 작가는 그러나 막상 마주하자 흔들림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상춘'이 필명이다. 이 이름만 보고 아저씨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도 안 찍겠다고 하고,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나.

▲작가가 작품 앞에 있는 게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작가로서 주변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머물고 싶다. 성별과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면서도 너무 필명 같아 보이지 않게 지으려 했다. 몇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생각할 '상'에 넉넉할 '춘'자를 골랐다. 30대 초반의 여성 작가라는 사실은 제작발표회 때 어쩔 수 없이 알려졌으니 거기까지만 말하고 싶다.

--격투기 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게 특이하다. 임 작가를 직접 만나니 더욱더 놀랍다.

▲추성훈-야노 시호 부부를 보며 격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야노 시호가 남편의 경기를 보면서 우는 모습에 많이 '찡'했다. 격투기 선수들의 가족에 주목하게 됐고, 어설프게 다루면 안될 것 같아 취재를 많이 했다. 격투기 선수들이 으레 여자 좋아하고 술도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은 되게 순박하고, 몸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도승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고 싶었다. 경기장도 많이 갔고, 경기 영상도 많이 보면서 연구했다. 경기를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선수 가족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펐다. 경기에서 진 선수가 링에서 나오면서 우는 모습, '닥터 스톱'이 선언되니까 '안된다'며 울부짖는 모습 등이 모두 '짠' 했다.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에 이어 '쌈, 마이웨이'에서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재벌 이야기보다는 내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다. 나하고 비슷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백화점 안내데스크 언니('애라'역)들을 보면 되게 예쁘고 목소리도 좋다. 그 언니들을 보면서 꿈이 뭐였을까 궁금했다. 전화 상담원('설희'역)의 경우, 내가 점심을 먹다가 고장 수리 전화를 하게 됐는데 전화를 끊을 때 "고객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언니두요~"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수화기 너머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상담원이 "고객님 고맙습니다"라고 하더라. 그 말이 정말 '찡'했다. 꿈의 언저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나 '쌈, 마이웨이'의 '애라'는 모두 '걸크러시' 매력을 발산한다.

▲사실 현실에서는 걸크러시를 발산하는 분들이 별로 없지 않나. 대부분 나처럼 말도 잘 못하고 수줍어한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라도 그런 인물을 그려냈다. 하지만 예의 없는 걸크러시는 싫다. 꼭 필요할 때, 지켜야 할 사람이 있을 때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아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와 '쌈, 마이웨이'에서 진희경이 연기한 '복희'가 오버랩되는 등 두 작품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부러 백희와 비슷한 복희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 '쌈, 마이웨이'에는 '백희'라는 개를 등장시켰다.(웃음) 청춘의 이야기를 해도 가족의 이야기를 같이 쓰고 싶었다. 가족을 항상 중시한다. 복희를 통해 미스터리도 넣고 가족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극중 고등학교 이름이 '천방고'다. 애들이 천방지축인 게 좋다. 앞으로도 고등학교 이름은 '천방고'라고 쓸 거다.(웃음) 동만(박서준 분)의 이름도 아이 '동'자에 천진난만의 '만'자를 붙여서 지었다. 애들은, 청춘은 좀 막 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모습이 내게는 예뻐 보인다.

--30대 초반 여성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의 넓이와 깊이가 남다르다. 특히 '백희가 돌아왔다'는 상당히 '걸쭉'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랑 많이 지냈는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음식장사를 하셨는데 같이 장도 보러 다니고 마실도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굉장히 따뜻한 분이셨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셨다. '백희가 돌아왔다'를 보시고 돌아가셨는데 손녀가 쓴 작품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다.

--혜성같이 등장했다. 어떻게 드라마 작가가 됐나.

▲나도 '쌈, 마이웨이' 주인공들처럼 그냥 흘러가듯 살았다. 회사 생활 비슷하게 하다가 20대 후반에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정말 드라마를 많이 본다. 늦은 밤 버스를 타면 다들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딴 거 필요 없고, 그저 좀 유쾌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교육을 받지 않아 대본을 많이 구해서 혼자서 공부를 했고 MBC 드라마 공모에 응모한 게 인연이 돼 단막극 '내 인생의 혹'으로 데뷔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 주변의 '달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이 사실은 엄청난 일이다. 그런 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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