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더 글로리'의 어린 이사라, '무인도의 디바'의 톱스타 은모래, '환혼'의 도화.
이 배우가 그 배우였다. 얼굴은 낯익은데, 이름은 아직 낯설다. 배우 배강희다.
그는 작품마다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얻었다. 매번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한 걸음씩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첫 스크린 데뷔작 '최종면접'으로 관객을 만난다. 더는 낯선 얼굴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으로 스크린에 선다.
'디스패치'가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강희를 만났다. 첫 영화에 담은 열정과 배우로서의 다음 얼굴을 들었다.
◆ 그 배우, 배강희
배강희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 배우가 됐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3년간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 2년간 일을 쉬기도 했다.
그는 "정확히 어떤 거라고 형용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며 "그때 인생의 쉼표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 시기 우연히 만난 영화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는 "인간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창동 감독님의 '시'다. 그 영화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떠올렸다.
영화가 건넨 위로는 그를 연기의 길로 이끌었다. tvN '환혼'(2022년), 넷플릭스 '썸바디', '더 글로리', tvN '무인도의 디바'(2023년), 넷플릭스 '사마귀'(2025년)까지. 굵직한 작품마다 얼굴을 비췄다.
그는 "작품마다 흥행을 예상하지 못하고 오디션을 봤기 때문에 결과가 더 신기하다"며 "그런 경험들이 배우로서 점점 더 욕심을 내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다"고 바랐다.
◆ 오디션, 오디션, 오디션
지금까지 맡은 배역은 모두 오디션으로 따냈다. 한 번도 그냥 주어진 자리는 없었다. 그는 "낙방도 많이 했다. 준비한 만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늘 임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얻은 역할들은 주로 차갑고 도도한 얼굴이었다. 작품이 쌓일수록 '냉미녀'라는 이미지도 함께 쌓였다. 하지만 한 가지 얼굴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tvN 단막극 연작 시리즈 '오프닝 2023 - 나를 쏘다'에선 사격 선수로 분해 불안하고 절박한 청춘을 연기했다. 도도한 이미지와는 다른, 흔들리는 내면을 보여줬다.
그는 "간절함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방향성은 늘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떠올렸다.
배강희는 자신의 이미지가 다음 기회를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다양한 작품에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장난기와 밝은 에너지들이 내재되어 있어요. 이제는 그런 모습들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첫 스크린
'최종면접'은 최종면접장에 모인 지원자 6인이 각자의 폭로가 담긴 의문의 봉투를 발견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강희에게는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그는 "큰 화면으로 제 얼굴을 본다는 게 너무 낯설고 떨린다. 저희 진심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강희는 극 중 '차주원' 역을 연기했다. 주원은 직설적인 '팩폭'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빠른 눈치로 지원자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먼저 알아챈다.
단 한 명만 합격하는 상황 속에서 연이은 폭로까지 시작되자,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며 단호한 선택을 이어나간다.
이번 배역도 오디션으로 따냈다. 그는 "신승호(백승빈 역) 배우와 대립하는 신이 많은데,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는 신 위주로 오디션을 봤다"며 "감독님께서 저는 그 기세에 눌리지 않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 차주원의 주인
김정훈 감독은 차주원을 그에게 맡겼다. 큰 디렉션을 주기보다 그의 해석을 존중했다. 배강희 역시 주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주원이 저와 비슷한 점도 많았어요. 또 제가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인지 날것의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감독님께서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조이현, 김재원(한진우 역), 신승호, 강유석, 곽동연(전요한 역) 등과 호흡을 맞췄다. 대부분 또래였지만, 연기 경력에서는 배강희보다 한참 앞선 선배들이었다. 배강희는 그 안에서 한 자리를 확실히 채웠다.
영화의 백미는 30분 넘게 이어지는 면접장 대립신이다. 6명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수 싸움을 한다. 신승호와 연기로 맞붙을 땐 온도를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신승호 선배의 에너지가 굉장했어요. 눈을 보면서 그 온도를 따라가려 노력했습니다. 데시벨을 맞추려고 저도 함께 소리 지르다 보니 목이 붓기도 했었죠."
긴장감이 이어지는 촬영 속에서도 동료들과의 케미는 완벽했다. "쉬는 시간에도 서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농담도 치며 놀았다. 조이현은 저보다 어린데도 잘 챙겨줘서 의지를 많이 했다"며 "저는 아재 개그 담당이었다"고 귀띔했다.
◆ 다음 면접
배강희가 바라보는 다음 단계는 연기의 깊이다. 다양한 인물을 경험한 만큼, 이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까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다.
"살다 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게 설득되면 좋겠어요. 제 연기를 보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좋고요. 모호한 감정을 섬세하게 잘 다루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기를 시작하고 삶도 달라졌다. "연기를 하기 전엔 몰랐던 감정들을 크게 느끼고 있다. 삶이 여명으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라며 "제가 이렇게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배강희는 자신이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그 위안을 연기로 돌려주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다시 문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남들에게 위안을 주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직 저를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최종면접'을 통해 저에게 궁금증을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