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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지탱하는 건, 사랑"…이창동, '가능한 사랑'의 8년 (보고회)

[Dispatch=정태윤기자] 이창동 감독은 10여 년 전 대기업의 집단 해고 노동자를 다룬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내가 이 영화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멈춰 있는 이야기에 두 부부의 관계가 더해졌다.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는 사랑과 계급, 욕망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됐다.

그리고 질문이 남았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조건이 달라져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창동 감독은 그 답을 사랑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사랑' 측이 2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제작보고회를 열었다. 이창동 감독, 배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다.

# 8년 만의 이창동

이창동 감독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그 안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탐구해 왔다. 이번에는 십여 년 전 벌어진 대기업 대규모 집단 해고와 총파업 사건을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와 엮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10여년 전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준비하다 마지막에 엎었다"며 "내가 이 영화를 왜 해야 하나.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2022년 단편영화 '심장소리'로 먼저 만들었다. 그때도 전도연과 설경구가 목소리로 작품에 참여했다. 그러다 '버닝'을 함께한 오정미 작가가 다른 부분의 이야기와 겹쳐서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감독은 "해고 노동자 이야기에 다른 부부 이야기를 겹치면, 다른 겹이 생기면서 영화가 더 풍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두 분을 다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에 사로잡혔을까. "우리는 모두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필연성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 가능한 '사랑'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하지만 그 중심 메시지는 사랑이다. 그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이 삶을 옥죌수록, 오히려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감독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든, 이를 지탱하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나가게 하는건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라고 전했다.

"영화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그 사랑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겁니다." (이창동)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 제64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베니스에서 이 영화를 최초로 공개하게 됐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최초의 반응이 궁금하다. 세계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 전도연·설경구, 어게인

전도연과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과 오랜만에 재회했다. 전도연은 '밀양'(2007년)으로, 설경구는 '박하사탕'(2000년)과 '오아시스'(2002년)로 함께했다.

이창동은 두 사람과의 재회에 대해 "20여년 전에 같이 일했을 때는 감독과 배우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다 보니 현장에서 공기가 부드러워졌다"며 "촬영이 끝나고 아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도연이 '미옥'을 연기했다. 미옥은 해고 노동자인 호석의 아내다. 자신도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총파업이 가족에게 남긴 후유증 속에서도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영화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을 담아내는 영화의 화면과 예지의 카메라 속에 기록되는 다큐멘터리 화면을 교차시키며 시점을 오간다.

그만큼 리얼리티가 중요했다. 전도연은 "만들어낸 인물을 감독님 '오케이'하지 않으신다. 최대한 마음과 생각을 열어놓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설경구가 '호석'을 맡았다. 호석은 해고 노동자로 총파업과 강제 진압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케줄이 도저히 안 맞는데, 너무 하고 싶었다. 3일을 잠을 못 잤다"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박하사탕' 때에 버금가는 긴장감이 오더라.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 조인성·조여정, 첫 만남

조인성과 조여정은 이창동 감독과 처음 만났다. 조인성은 '상우'로 분했다. 상우는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 해고 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아내 예지를 옆에서 응원하고 돕는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조여정이 '예지'를 소화한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감독으로 고등학교 동창이자 미국 유학 시절 연인으로 발전한 상우의 아내. 작품 완성을 위해 미옥, 호석 부부와 진심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람 역시 작품 선택의 이유는 이창동이었다. 조인성은 "배운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갔다. 감독님 작품 안에선 저희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간 마음이었다"며 "긴장하고 디렉션을 놓치지 않으려고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떠올렸다.

조여정은 "일분일초가 아깝고 소중했다. 현장에서 그 인물 그 자체로 있으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이창동 감독은 두 사람의 캐스팅에 대해 "상우는 보이지 않게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잘생기고 매력적이고 모든 것에 능한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인성 외에는 떠올릴 수 있는 배우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지는 영화에서 저의 시각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며 "조여정 배우가 가진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예지의 내면과 굉장히 가까웠다"고 밝혔다.

# 넷플릭스 行

이창동 감독은 한국 예술 영화의 최전선을 지켜온 감독이다. 그런 그가 OTT 플랫폼을 선택했다. 그의 넷플릭스 행에 대해 여러 목소리들이 나왔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해 "당시 한국 영화 산업이 가장 약화할 시기였다. 어떻게 회복될지 의구심이 있을 때였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우리 모두 느끼고 있듯, 영화 산업의 구조는 바뀌어가고 있고, 변화의 추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극장용 영화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창동)

그럼에도 '가능한 사랑'은 다음 달 23일 극장에 약 2주간 상영될 예정이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극장 개봉을 약속했고, 지켜줬다"며 "이 변화 속에서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봐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저희 영화가 OTT 서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와는 성격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가능한 사랑'은 다음 달 23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이후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사진=이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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