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뉴데이'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전작 '노웨이홈'이 3명의 스파이더맨을 불러 모았다면, 이번엔 그 반대다. 관계를 지우고, 기억을 끊었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 분)는 친구도 연인도 없는 완벽한 혼자가 됐다.
그런데 이 선택이 의외로 영리하다. 무작정 세계관을 확장하는 대신, 스파이더맨을 다시 피터 파커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빌런과 히어로, 멀티버스를 거친 시리즈가 다시 붙잡은 건,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다.
모두에게서 잊힌 남자가, 그럼에도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영화는 리셋 이후 4년을 건너뛴다. 파커는 뉴욕의 범죄율을 크게 낮춘 히어로가 됐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텅 비어 있다. 화려한 영웅의 모습보다 혼자 빨래하고 장비를 손보는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노웨이홈'에서 스스로 선택한 희생이 어떤 대가를 남겼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저 달라진 파커의 삶을 보여준다.
가장 아픈 순간은 네드(제이콥 배덜런 분)와 MJ(젠데이아 콜먼 분)를 다시 마주하는 장면이다. 파커는 두 사람을 지켜보지만, 그들의 삶에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때 리셋은 설정이 아니라 감정이 된다. 기억을 지운다는 건 과거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과거를 홀로 짊어지는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이 흥미로운 건 이 고립을 파커의 능력과도 연결한다는 점이다. 4년간 쌓인 변화는 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계 웹슈터 없이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고,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프레데터 모드'까지 등장한다. 강해진 스파이더맨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액션도 이 변화를 따라간다. 웹스윙과 맨몸 격투는 한층 거칠고 속도감 있게 변했다. 새롭게 얻은 능력을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파커의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한다.
'힘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오래된 스파이더맨의 명제가, 이번에는 '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변주된다.
그래서 진 그레이(세이디 싱크 분)의 존재도 단순한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인물. 파커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외로움을 공유한다.
파커가 진을 쓰러뜨리는 대신 구원하려는 선택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타인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는 순간이다.
복수와 힘에 잠식돼 스스로를 잃어가는 진을 보며, 파커 역시 스파이더맨으로 남기 위해 '피터 파커'를 지워왔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스파이더맨을 성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능력이나 더 거대한 적을 꺼내는 대신, '피터 파커가 왜 필요한가'를 되묻는다.
스파이더맨의 힘은 거미줄이나 초인적인 근력이 아니다. 상처를 입어봤기에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 결국 피터 파커를 지우고서는 스파이더맨도 완성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세계관의 빈틈이나 몇몇 설정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V-MAX를 둘러싼 미스터리도 인물의 감정만큼 깊게 파고들지는 못한다.
캐릭터에 집중한 만큼 서사의 디테일을 덜어낸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마블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노웨이홈'까지 달려온 스파이더맨이 다시 한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온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리셋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톰 홀랜드가 피터 파커를 연기한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소년이었던 파커는 이제 상실과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아는 어른이 됐다.
홀랜드 역시 그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탄생보다, 10년을 살아낸 피터 파커의 얼굴이다.
'브랜드뉴데이'는 과거를 되돌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파커를 남긴다.
앞으로의 10년을 새롭게 꿈꾼다면, 이보다 좋은 출발은 없다.
"브랜드 뉴 피터" (★★★☆)
<사진출처=소니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