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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의 별달린다] "살아남은 자의 가장 긴 고백" (오디세이 ★★★★)

[Dispatch=정태윤기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전을 건드리는 건 양날의 검이다. 특히 '오디세이아'처럼 수천 년 동안 해석되어 온 신화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흑인 헬레네 캐스팅과 성전환 배우의 기용.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적잖은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지점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시작부터 빠르게 밀어붙인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도입부를 쇼츠처럼 압축해 편집했다.

트로이 전쟁과 그 전후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관객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제로 핵심 이미지만 던지고,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과감한 생략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다. 이 영화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이다. 덕분에 영화는 초반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에 훨씬 더 많은 밀도를 할애한다. 관객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이 아닌 귀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붙잡는 건 신화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괴물과 모험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전쟁 이후 인간이 어떤 상태로 남겨지는가'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으로 남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인 동시에 그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채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여정 자체가 밋밋한 건 아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사는 동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의 섬, 저승에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는 장면까지.

글로만 상상해오던 신화 속 이미지들이 스크린 위에 구현된다. 이 영화가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신화, 그 자체의 질감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준다.

이 화려한 여정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지탱하는 건 맷 데이먼이다. 흔히 '맷 데이먼이 고생하면 영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 바닥까지 밀어붙인다. 영웅이 아닌 소모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피로와 집착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서다.

여성 캐릭터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는 더 이상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다.

20년 동안 왕비의 자리를 지켜온 주체적인 존재로서,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와도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 모든 흐름이 가장 압축적으로 터지는 지점은, 마지막 재회 장면이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활시위를 걸어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고, 이후 페넬로페와의 '침대 시험'을 통해 서로를 확인한다.

반면 영화는 이 과정을 훨씬 내면적인 방식으로 바꾼다. 두 사람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페넬로페는 그의 말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던 시간의 이유다.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에는 죄책감이 묻어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과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트로이 전쟁은 처음엔 위대함과 승리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러나 후반부 회상에선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죽어간 병사들,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짊어진 채 살아남은 자의 시선. 같은 사건이지만, 기억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이 영화에서 귀환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직면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신화를 새로 쓰기보다, 원래 그 안에 있던 인간의 균열을 끝까지 파고든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오디세우스가 청혼자들과 맞붙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쌓여 있지만, 액션 연출 자체의 쾌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텔레마코스의 캐릭터는 극의 긴장을 끌어올리기보다 답답함을 유발할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처음에 걸렸던 요소들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 긴 여정이 단순히 한 영웅의 귀환 서사가 아닌, 내면의 항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전쟁과 모험, 신들의 개입이라는 거대한 외피를 걷어내고 나면, 이야기 중심에는 끝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집요한 의지가 남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선택했는지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중요한 건 이야기를 정확히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작동하느냐다.

낯설지만 설득력 있고, 거칠지만 끝내 남는다. '오디세이'는 고전을 어떻게 현재로 끌어올 것인가에 대한 꽤 유효한 답이다.

(P.S. 이번 작품은 전체를 아이맥스(IMAX) 필름으로 촬영한 최초의 장편 영화다. 아이맥스는 화면비가 일반 상영관보다 위아래로 훨씬 넓게 트여있다.

거대한 트로이 목마나 폴리페모스 같은 존재의 스케일이 훨씬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가 주는 몰입감만큼은 아이맥스가 아니면 반쪽짜리로 느껴질 것 같다.)

'오디세이'는 오는 5일 개봉한다.

"살아남은 자의 가장 긴 고백" (오디세이 ★★★★)

<사진출처=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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