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시청자들이 좋아할까?”
시원한 액션도, 통쾌한 권선징악도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한 남성의 지질하고 저열한 여정을 다룬다.
최민식은 “(시리즈) 공개를 앞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가 좋아할까?', '여름에 보기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여름 시즌엔 ‘참교육’이나 ‘김부장’처럼 시원시원하고 악을 박살 내는 게 딱 좋잖아요. (근데 우리 작품은) 지질의 대환장이니까요.(웃음) 좀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였다. 그의 광기 어린 눈빛이, 정주행을 불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역시 ‘다음 화’를 재생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8위에 올랐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전 세계 6개 국가/지역 톱 10을 차지했다.
‘디스패치’가 최민식을 만났다. ‘맨 끝줄 소년’ 허문오 역으로 또 다른 맞춤옷을 입고 나타났다.

◆ 허문오의 민낯
‘맨 끝줄 소년’은 심리 스릴러다.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최민식은 “책(대본)을 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 클래식한 느낌이 있었다”며 “요즘 트렌드와 달랐던 것이 (오히려) 좋았다”고 떠올렸다.
“(요즘에는 주인공이) 날아다니거나 권선징악적 결말이 있는 게 대세잖아요. 물론 그것도 좋지만 (시청하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있었으면 했어요.”
오락적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탐구를 가능케 하는 작품을 기다렸다는 것. 그는 “(‘맨 끝줄 소년’은) 불편한 진실을 다 벗겨서 고깃덩어리 자체를 보게 한다”고 부연했다.
“학창 시절부터 단편 소설을 즐겨 읽었어요. 짧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하거든요. (그 소설처럼) 허문오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리는 지점이 와닿았죠.”

◆ 구업을 향한 경계
이 드라마의 매력은, 이야기 그 자체에 있다. 진실과 허구를 오가는 반전, 각각의 인물들을 옭아맨 관계의 굴레 등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쉼 없이 달리게 만든다.
묵직한 주제 의식 또한 돋보인다. 폭력의 정의를 새롭게 썼다. 물리적 폭행뿐 아니라 말과 글 역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최민식은 이를 ‘구업’(口業)이라고 표현했다. “무심코 뱉은 말이 이강(최현욱 분)에게 상처를 남겼다. (결국) 이강이 글을 수단으로 삼아 복수한다”고 했다.
“말과 글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작품이죠. 글이 긍정적인 자극을 줄 때도 있지만, ‘맨 끝줄 소년’처럼 폭력이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작금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최민식은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견을 밝혔다.
“폭력의 순환이랄까요. 말과 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불신을 넘어 증오하기까지 하죠. 이런 것들이 현실 사회에서의 구업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호불호, 그럼에도
다만 호불호는 나뉜다. 주인공 허문오가 비호감을 넘어 악질적 면모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 탓이다. 관찰과 관음의 경계에 선 제자의 글에 매혹된 꼰대, 급기야 선을 넘어버리고야 마는 비정함이 씁쓸함을 안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악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마주칠 법한 인간이라는 점도 소름 끼치는 대목이다.
최민식도 공감했다. 허문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나도 정말 싫다. 옆에 있으면 ‘왜 그러고 사냐?’ 한 소리 할 것”이라고 질색했다.
그럼에도, 허문오를 이해해야 했다. 최민식은 “이해 못 하면 어떻게 연기하겠나. 그 인생 속에 날 몰입시켜 누구보다 든든한 변호사가 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측은지심마저 들었어요. 열패감을 안고 본인을 들들 볶으면서 살잖아요.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본인은 얼마나 더 괴로울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 최민식과 최현욱
캐릭터의 ‘불호’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최민식과 최현욱에 있다. 두 사람은 팽팽한 사제관계를 완성했다. 40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밀도 있는 연기 합을 선보였다.
최민식은 “(내 역할은) 탁구로 치면 리시브”라며 “이강이 짜놓은 부비트랩에 여지없이 걸리지 않나. 최현욱의 연기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고 말했다.
“(최현욱이)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예뻤죠. ‘어떻게 저렇게 찰떡같이 나를 쳐다보지?’ 놀랄 때가 많았어요. 대만족이었습니다.”
특히 1화 강의실 독대 장면. 허문오가 이강을 따로 불러 문학 수업을 제안하는 신이 대표적이다. 이강은 “김세윤이 부럽냐?”는 허문오 물음에 되레 질문을 던진다.
최민식은 “선후배가 아닌 동료로 카메라 앞에 섰는데 ‘교수님도 아세요? 그런 마음?’ 할 때 한 방 먹는 것 같았다. (그 대사가) 팍 꽂혀서 진짜 도둑이 제 발 저린 연기가 나왔다”고 감탄했다.

◆ 대표 배우의 목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산 세월이 45년이다. 최민식은 연극 무대와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박한 시골 총각(서울의 달)부터 깡패 같은 검사(넘버 3), 복수에 눈먼 사내(올드보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악마를 보았다), 역사적인 영웅(명량), 기이한 일을 겪는 풍수사(파묘)까지.
매 작품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장르도, 배역도 가리지 않았다. 작품이 좋다면, 거리낄 것이 없었다.
“좋은 작품 만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는 것 같아요. 표현의 한계에 부딪혀서 괴롭기도 한데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제겐 의미가 있죠.”
업계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더 좋은 연기를 꿈꾼다. 최민식은 “여태 이 일을 하면서도 아직도 원하는 작품이 많다.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고 고백했다.
“나이를 점점 먹으니까 아버지 역할을 (주로) 하라고 하는데…. (웃음) 천사도 악마도 못 할 게 없어요. 사랑, 애정, 분노, 정의 등 살다가 겪은 것들을 취합해서 작품 안에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사진출처=넷플릭스>